남자가 원하는 여성상에 대한 비평
이 글은 브런치의 <남자를 끌리게 하는 여자, 쫒아내는 여자>에 대해 여성의 시각에서 본 리뷰입니다. 각 문단 처음의 회색으로 처리된 문장들은 비평 대상글의 본문 중 일부를 의역(paraphrase)한 부분들임을 밝힙니다.
남자는 '엄마 같은 여자'에게 끌린다.
자식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어머니의 신체의 일부로 40주의 시간을 보낸다. 그 긴 시간만이 아니라 적어도 유전자의 반을 공유한 사이이다 보니 엄마의 입장에선 자식을 지극정성으로 대하는 건 당연하다. 남자가 애인이나 아내에게 엄마의 무한한 이해심과 사랑만을 요구한다면 반대로 여자도 연인이나 남편에게 아버지의 무조건적 지원을 관계 유지의 필수조건으로 내세울 수도 있다. 하지만 바로 다음 대목에서 남자는 아버지가 아니란 점을 분명히 했다.
남자는 데이트 비용이 많이 드는 여자와는 연애만 하고 돈을 안쓰게 배려하는 여자와 결혼한다.
이는 애인과 아내에게 엄마의 역할을 요구하면서 남자의 사랑엔 아버지의 역할을 당연스러운 듯 제외시키는 모순과 함께, 돈의 지출과 관계의 지속이라는 결코 사랑스럽지 않은 연애 공식을 내포하고 있다. 한 가지 분명히 할 것은 여자도 자신의 수입보다 많은 돈을 써대는 대책 없는 남자를 결혼상대로 보진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선물 접대를 노골적으로 원하는 여자와 애써 연애를 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 이런 식으로 관계를 이어가야 하는 대상이라면 '애인'이란 단어도 어울리지 않는다. 그 안에 사랑이 있긴 한걸까? 그냥 서로의 필요에 의해 공허한 만남이 지속되는 건 아닐런지.
여자들은 남자의 전부를 소유하길 원하고 남자의 외모와 행동에 대해 잔소리를 하며 길들이려 한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집착을 '여자들'에게만 일반화시킬 순 없다. 애인이나 아내의 하루 일과를 감시하고 아이에게 야단치듯 잔소리를 하는 남자들도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상대가 나를 신뢰하지 않고 인격적으로 무시한다면 그 사람의 인성의 결함일 수도 있지만 내가 평소에 하는 행동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어떤 판단을 내리기에 앞서 그러한 집착을 야기시킨 세부적인 정황을 먼저 되짚어보고 상대방에게 비친 나의 모습을 대화로 먼저 확인해보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남자가 빠져들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여우같은 여자'의 의미와 특성
남자들이 여우 같은 여자를 좋아하지만 넘어가지 않으려고 나름 방어기제를 쓰다가 결국엔 그 여우를 사랑하게 된다는 얘기인데 '여우'로 칭해지는 여자에 대한 정의가 명확히 언급되지 않았다. "자기 의사를 정확히 밝힐 줄 아는", "'호적수'로 느껴지는 여자", "가끔은 '한방씩 주고받으며' 자존감 있게 행동하는 여자"라고 묘사되어 있지만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심지어 남자들도) 이러한 수식어가 '여우'의 특성이라고 수긍할까? 또한 얼마나 많은 남자들이 '여우 같은 여자'의 조건에 대해 의견의 일치를 보일런지 자못 궁금하다. 세상의 남자들이여, 진짜 여우는 꼬리를 드러내지 않는다오.
남녀 관계의 주도권을 여성이 휘두르지 말아야 하고, 원만한 관계 유지를 위해 남성의 정체성과 자존심을 존중해야 한다.
우선 주도권이란 갑과 을의 구분을 말한다. 조용하건 세상이 다 알건 남녀의 관계에 양쪽 무게의 평형을 처음부터 배제했다는 것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아인슈타인의 예에서 집안의 큰 일은 남자가 결정하고 세부적인 일은 여자가 처리한다고 구분지었지만 가정에서 행해지는 모든 결정에서 가족 구성원(자녀까지 포함해서) 누구의 의견도 소외되지 않도록 해야 나중에 닥칠지도 모를 갈등을 막을 수 있다. 다음으로 연애와 결혼생활이 원만하게 지속되기 위해 남자의 정체성과 자존심만 중요한 건 아닐 것이다. 전업 주부는 24시간이 일터인 집에서 아이와 남편을 뒷바라지하지만 경제적으로 공헌하는 바가 없다 보니 자신의 자존심을 내세우지 못하기 십상이고, 일하는 여성은 주부, 아내, 엄마, 며느리, 직업인이란 다수의 identity를 저글링 하면서 살아가는데 과연 여자들의 결혼은 무엇으로 행복하고 즐겁게 만들어 줄 것인가?
남자를 끊임없이 칭찬하고 실수를 하더라도 자존심이 상하지 않게 배려해야 여자에게 이롭다.
연인이나 남편이 정말 자랑스러워서 '최고'라는 칭찬을 하는 게 아니라 단지 남자의 자존심을 위해 칭찬을 남발하란 의미는 아니길 바란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책에서 칭찬을 자존감을 붇돋우는 지름길로 주장하고 있지만 이미 심리학계에선 praise lovers (공부 자체에 흥미를 느끼는 대신 부모에게 칭찬을 받기 위해 성적에 집착하는 아이들) 라는 부작용에 대한 연구 결과들이 발표되고 있다. 연인과 부부는 사랑이란 진심을 전제로 한 관계인데 역할극의 배우처럼 마음에 없는 말의 힘을 빌어 '외식'과 같은 이득을 챙겨야 한다는 건 서글픈 일이다.
마지막으로, 진짜 여우들은 남자의 도움을 얻기 위해 애써 물개 박수를 날린다거나 연약한 척 머리 쓰지 않는다.
"너는 도대체 꼬리가 몇 개야?"
남자가 여우에게 물었다.
그녀는 뜻 모를 미소만 지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