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30년을 어떻게 살 것인가
고령화의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시작되었다.
지금의 세대는, 아직 청년일 때부터
어떤 노년을 맞이하게 될지 고민한다.
예전처럼 결혼하고, 직장에 다니고, 은퇴하면 삶이 오래 남지 않던 시대가 아니다.
이제는 은퇴 이후에도 수십 년의 시간이 남아 있다.
그래서 많은 매체들은 젊을 때의 성공과 선택, 돈을
‘안전한 노후’의 필수 조건처럼 말한다.
일을 하지 못하는 장시간의 미래를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압박이
일상의 공기처럼 깔려 있다.
어머니와 이야기하다 보면
나는 다른 결의 노년을 본다.
정신은 놀라울 만큼 또렷한데,
몸이 먼저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이다.
육체가 조금씩 변하고 약해지며,
그 변화를 마음이 뒤늦게 받아들이는 과정.
나는 그것이 바로 노년의 실체라고 느낀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노년은
이렇게 단순히 ‘몸이 늙는 자연스러운 시간’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많은 분들이 건강 불안과 병원비 걱정에
남은 20년, 30년을 희망 없이 바라보며 살아간다.
나의 어머니도 역시 그랬다.
물건을 더 사지 않고, 새로운 계획을 세우지 않고,
‘이제 오래 살 것 같지 않다’는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한다.
삶이 어느 순간,
유지비 계산과 병원 예약만 남는 것처럼 느껴지면
노년은 더 이상 삶이 아니라
버티는 시간이 되어버린다.
마치 죽음을 두고 카운팅 하듯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기준을 둔다면 태어난 우린 모두 죽음을 약속받는다.
속된 말로 가는 순서를 누가 알까?
예전에는 지혜를 얻기 위해
삶을 길게 살아온 어르신들을 찾아갔다.
그들의 경험이 곧 지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 어르신들이 젊은 세대와 함께 경쟁하고,
뒤처지지 않기 위해 버티는 모습을 본다.
반대로 젊은 세대는 오랫동안 부의 시스템을 놓지 않으려는
앞세대로부터의 ‘착취당한다’는 감각을 익숙하게 말한다.
장수의 세대가 열리고부터 모두가 지치고, 모두가 불안하다.
앞으로 150세가 당연하고 어쩌면 부분적인 장기를 교체하는 형식으로 영생까지
준비하고 있다는 과학기사나 소식을 들을 때마다,
이 시대의 풍경 속에서 나는 다시 묻게 된다.
그렇다면, ‘나이를 잘 먹어간다’는 건 무엇일까?
성취와 성공은 물론 삶의 질을 높여준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나이를 ‘잘’ 먹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삶은 단순 계산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우리가 나이를 먹는다는 건
이론을 아는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실패를 만나고,
그 실패를 딛고,
또 다른 선택을 해왔다는 기록이다.
중요한 건
무엇을 성취했는가가 아니라
실패 이후 어떤 방향으로 걸어 나왔는 가다.
그 선택의 누적이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지금의 나를 만들고,
앞으로의 나를 지탱한다.
그리고 여기에
노년을 위한 하나의 조건이 더 있다.
몸이 버텨주는 삶.
남은 20년, 30년을
건강이 지탱해주지 않는다면
돈도 계획도 의미가 흐릿해진다.
하지만 건강이 조금씩 약해지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문제는 ‘쇠약함’이 아니라
쇠약함을 인생의 끝으로 오해하는 데 있다.
노년은
육체의 약함을 받아들이면서도
여전히 살아갈 이유를 찾는 시간이어야 한다.
물질과 건강, 정서와 관계가
적당히 버무려져야
비로소 평안한 노년이 완성된다.
그렇지 못한 노인들의 삶을
우리는 너무 자주 보아왔다.
그렇기에 지금의 우리 세대는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요즘,
‘선택의 기록’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 기록의 마지막 장을
충만한 삶으로 넘기기 위해서라도
노년의 시간은
건강과 받아들임, 그리고 작은 기쁨으로
천천히 채워져야 한다.
당신의 노년을 지탱할 선택들을
오늘도 있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