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지 않게둥글러 지는 연습

모든 것은 변한다는, 그 단 하나의 영원함

by Karin an

돌아보면 나는 20대 때 참 극단적인 사람이었다.
항상 O 아니면 X, 흑 아니면 백.
진실한 태도보다 가식적이고 거짓된 태도가 세상에서 더 잘 통하는 걸 볼 때마다 화가 났다.

나의 진정성이 세상에 이해받지 못한다는 생각을 오래 했다.

(지금생각해 보면 정말 사회성이 없었다.)


몇 번의 뒤통수를 맞는 일들이 반복뒤에는,
타인을 믿지 말고, 세상 밖 누군가에게 기대면 안 된다는 고집이 생겼다.

그 고집은 어떤 날엔 무너지는 나를 세워줬고,

또 어떤 날엔 나를 철저히 고립시켰다.


그런데 마흔이 지나고 나자, 정말 마법처럼 생각이 달라졌다. 뭔가 큰 산을 넘은 기분이었다. 20대에는 사회의 눈치를 배우는 단계라면 30대는 나와 세상을 조율하던 시기였던 것 같다.

그리고 마흔쯤 읽게 된 <세도나 메서드>(헤일도스킨)나 <삶이 당신보다 더 잘 안다>(마이클싱어) 책의 영향력일지도 모르겠다. 내 마음을 관찰하게 되자 오랫동안 엉켜 있던 실들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결국, 내가 가진 그런 똥고집들은 결국 지난날의 상처가 만들어낸 카르마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30대 서울로 올라올 때만 해도, 나는 궁지에 몰려 있었다.

여자 나이 앞자리 수가 바뀌면 여자 취급을 못 받는다는 말을 농담반 진담반으로 하던 친구들이 졸업 후 약속하듯 결혼생활을 시작할 때, 나는 집안의 가장이 되었었다.
그저 ‘언제든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는 막연한 희망,
‘ 일하면서 어떻게든 춤을 이어갈 수 있을 거야’라는 기대 하나로 올라왔다.


하지만 몸이 아프고, 무용을 멈추게 되면서
전혀 다른 세상의 길을 걷게 되었다.


지금 돌아보면, 내 방식대로만 버티려 할수록 고난이 깊어졌던 것 같다.
좋은 방향이든 그렇지 않든,
변함을 받아들이는 순간에야 비로소 평온을 얻는다는 걸 그때 배웠다.


나는 그냥 둥글러 진 게 아니다.
수많은 부딪힘과 깨짐 끝에,
부지런히 노력해서 둥그러워졌다.


그런데 최근 들어, 관계 속에서 또다시 뾰족해지는 나를 본다.
마치 기시감처럼, 옛날의 똥고집이 고개를 든다.

그래서 이번 가을, 추석 휴가 동안
나는 작정하고 ‘나의 사고의 양끝’을 잘라내는 연습을 했다.

일에서 한 발 물러나니,
그동안 일로 덮어두었던 감정들이 천천히 떠올랐다.


그리고 조금 더 멀리서 바라보니,
싫음도 영원하지 않고, 좋음도 끝없이 지속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모든 것은 흘러간다.

그 순간에는 좋았던 일도 나중엔 그렇지 않을 수 있고,
나빴던 일도 시간이 지나면 나쁘기만 한 건 아니다.


지나간 매번의 연애들은 이별은 당시엔 너무 힘들었지만,
돌이켜보면 결혼까지 가지 않은 건 오히려 다행이었다.


무용을 그만둔 일도 괴로웠지만,
덕분에 지금은 몸과 통증을 이해하며
타인의 회복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그 모든 ‘변화’들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그리고 그 모든 우여곡절들이 나를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결국 세상에서 유일하게 영원한 사실은,
“모든 것은 변한다.”는 아이러니함이었다.


우리는 흔히 변하지 않는 이상을 쫓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도 변하지 않는다.


내가 쌓아 올린 고집들은
결국 ‘흔들릴까 봐 겁먹은 나’의 방어였다는 걸 이제야 안다.


삶의 관점과 감정은 그 순간에만 존재한다.
좋았는지 나빴는지 판단은 어쩌면 언제나 시간이 흐른 뒤에야 가능하다.


변화의 물결 위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유연하게 흐르는 일,
그게 살아 있는 자의 의무일지도 모른다.


나는 요즘 그 연습을 한다.
좋음과 싫음, 옳음과 그름,
지나친 확신과 지나친 불안의 경계를 벗어나
흐름에 나를 맡기는 일.


그렇게 마음의 모서리를 다듬다 보면,
언젠가 그 사이에서 고요한 중심이 드러날 것이다.


누군가에게 휘둘리지도 않고,
자신을 잘 지키되, 누군가로부터 너무 벽을 치지도 않는 ‘적당한 거리감’.


그게 내가 요즘 배우는 균형의 모양이다.


변화는 잔인하지 않다.
그저 우리를 조금 더 유연하게 만드는 일이다.
변화를 거부하고 ‘안전’이란 이름 아래 숨어 있으면,
변화는 눈덩이처럼 커져 어느 순간 펑 터질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변하는 세상에서,
나는 오늘도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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