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테스로 배우는 삶의 철학-17. 살려고 하는 운동

움직임은 생존이었다

by Karin an


오늘 《빅터 플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독서 후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아직 그 책을 두려움에 읽지는 않았지만,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그곳의 냉기와 절망이 전해지는 듯했습니다.


수용소에서는 건강해 보이는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병들어 보이거나 생기가 없으면, 가스실로 끌려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억지로라도 몸을 움직였다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조셉 필라테스가 떠올랐습니다.

몇년전 캐롤라의 제자인 질리안 허슬 선생님이 말씀 하신 부분이었어요.

조셉 필라테스 또한 전쟁 중 억류된 수용소에서 약 3년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와 함께 수용소에 있던 무용가 캐롤라 트라이어(Carola Trier) 는

훗날 그가 생전에 유일하게 자신의 이름을 걸고 스튜디오 운영을 허락했던 인물입니다.

그녀 역시 수용소의 이야기는 제자들에게 하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간략하게 자격증을 딸때는
수용소 안에서, 자신과 함께 갇힌 사람들에게 운동을 가르쳤다고 전해집니다.

왜 가르쳤나에 대해서는 추론하는 글 뿐이었습니다. 그저 조셉필라테스가 오랫동안 류마티스염을 앓고 있어서 그런것인가 정도의 추론밖에 없었어요.

아마 그 자리에서 그는 생존을 위해 운동을 했을 겁니다. 살아나가기 위해서 말이죠.


-건강해 보이지 않으면 어느순간 아무도 모르게 가스실로 갈 수 있다.


그 단순하고 냉정한 진리를 누구보다 깊이 깨달았던 사람이었을 겁니다.

저는 그 장면을 잠시 상상했습니다.


차갑고 축축한 공기,
빛이 거의 닿지 않는 좁은 방 안에서
그가 포로들과 함께 몸을 움직였을지도 모른다고.
그때의 움직임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몸짓이었을 것입니다.
그에게 ‘운동’은 건강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희망의 기술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필라테스가 평생을 바쳐 만든 ‘움직임의 철학’은
단순히 몸을 단련하는 방법이 아니라
삶을 붙드는 하나의 태도였던 것 같습니다.
그의 운동은 몸의 통제(Controlo­gy)를 넘어
혼돈 속에서도 마음을 세우는 연습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매트를 펴고 호흡을 맞추는 일,
그 평범한 하루의 동작 속에는
어쩌면 그들의 기억이 흐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움직인다는 것은 곧 살아 있다는 증거,
그리고 스스로의 존재를 잃지 않기 위한 가장 인간적인 행위이니까요.


운동은 몸을 위한 일이지만,
때로는 마음과 존엄을 지켜내는 일입니다.


조셉 필라테스에게 운동은
그 어떤 이론이나 테크닉보다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연습’이었을 것입니다.


움직임이 곧 생존이던 그 시간의 기록이
오늘 우리의 일상 속 호흡으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이
문득 경이롭게 느껴집니다.


그의 운동은 단순한 피트니스(fitness) 가 아니라

희망이자 생존이었고,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마지막 의지였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조셉 필라테스의 철학은
육체의 회복이 아니라 존엄의 회복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몸을 세우는 일은, 인간으로서의 자기 존재를 다시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그의 ‘운동’이 지금까지 생명력을 가지는 이유도
그 안에 생존과 희망의 본질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한 문장을 떠올립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니체-


그는 몸을 통해 정신을 일으켰고,
움직임을 통해 인간의 존엄을 지켜냈습니다.

그가 남긴 철학은 오늘의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 듯합니다.
“당신은 오늘, 어떤 움직임으로 살아가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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