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많이 자면 게으르다는 오해를 벗자.
나는 잠이 많은 사람이다.
학창 시절엔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만 봐도 그렇다. “잠만보.”
그때의 나는 그 말이 조금 부끄러웠다.
잠을 많이 자는 건 게으른 사람의 증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잠 줄여서라도 공부해야지.”
대학에선 “새벽에 일어나야 앞서간다.”
사회에 나오니 “4시간만 자도 돌아가는 사람이 진짜 프로다.”
그런 말들이 나를 따라다녔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조차 잠의 기준을 묻지 않았다.
그저 줄이고, 조이고, 버티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다 어느 시기, 투잡을 뛰면서 까지 돈이 필요할 때가 있었다.
하루 네 시간 반, 최대가 다섯 시간.
그게 내가 가진 ‘수면의 총량’이었다.
그렇게 몇 달을 살다 보니, 몸이 먼저 항의했다.
처음에는 풀리지 않는 피로, 예민해진 감정, 순간순간 터지는 짜증. 그다음엔 각종 염증과 시기마다 감기와 독감이 걸렸고 8개월 때쯤 되자, 계속된 긴장감이 결국 불면증까지 왔다.
잠이 모자라 생긴 문제들이 잠에 들지 못하게 만드는 아이러니였다.
그때 병원에서 선생님이 한 말이 아직도 선명하다.
“잠은 감정의 바닥을 받쳐주는 것”이라고.
기분이 흔들리는 날, 별 것 아닌 말에 상처받던 날,
그 모든 날의 뿌리는 사실 ‘감정’이 아니라 ‘수면’에 있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그 후 나는 내 몸의 리듬을 다시 측정하기 시작했다.
언제 잠이 가장 잘 드는지, 얼마를 자면 다음날 기분이 안정되는지.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나의 적정 수면시간은 8시간에서 9시간.
충분히 자야 비로소 나다운 하루가 시작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며칠 전, 정주영 회장이 생전 인터뷰에서
“네 시간만 잔다고? 다 거짓말이다. 나처럼 많은 일을 하는 사람은
여덟 시간은 자야 한다”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말이 참 묘하게 위로가 되었다.
평생 일을 앞에서 이끌어온 사람조차
잠을 버티기가 아니라 ‘기반’으로 보았다는 사실이.
한때 미라클 모닝이 유행하던 시절도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새벽 4시, 5시를 기준으로 삼았지만
원조 책의 ‘아침’은 사실 오전 7시였다.
누군가는 그걸 모르고 ‘부족한 나’를 자책하며 새벽을 찢어 넣었을 것이다.
그러나 몸은 시계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각자의 리듬, 각자의 파동이 있다.
지금의 나는 내 수면을 양보하지 않는다.
내가 충분히 잘 때,
나는 더 이타적이고, 더 유연하고, 더 따뜻하다.
반대로 잠이 부족한 날은
사소한 일에도 통제하고 싶고, 예민해지고, 마음이 좁아진다.
그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생리적 사실이다.
몸이 먼저 힘들면 마음은 울퉁불퉁해지는 법이다.
잠이 주는 진짜 가르침은 이것이다.
수면은 ‘실패한 하루의 낭비’가 아니라
다음날의 나를 살리는 가장 깊은 기반이라는 것.
나를 잘 자게 하는 시간은, 결국 나를 잘 살게 하는 시간이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잠을 줄여 하루를 늘리고 있나요,
아니면 잠을 채워 삶을 단단히 쌓아가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