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효율이 만들어내는 유일한 것들
요즘 자주 듣는 말이 있다.
“효율이 중요하다.”
MZ세대의 소비, 일, 관계를 들여다보면 효율성이라는 단어가 거의 모든 지점에 박혀 있다.
가성비와 시성비, 불필요한 감정 소모 줄이기, 최소한의 관계, 유연 근무, 빠른 의사소통.
겉으로 보면 합리적이고, 꽤 똑똑해 보인다.
시작점은 MZ였지만 최근 전체적으로 사회 분위기가 효율성을 중요시 여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는 가끔 생각한다.
“효율”이라는 말이 너무 많이 곳곳에, 또 너무 무겁게 쓰이는 건 아닐까.
특히 한국 사회에서 [효율성]이라는 단어는 이상하게 기울어져 있다.
효율은 원래 ‘더 나은 선택을 위한 도구’였는데, 지금은 ‘실패를 피하기 위한 방패’처럼 사용된다.
효율성에는 최적의 순간이 중요하다. 실패하지 않기 위해 행동을 줄이고, 한 번에 완벽하게 해내기 위해 몸짓을 멈추고, 시도를 아끼며 시간을 잰다.
심지어 감정조차 낭비로 계산된다.
효율이 과해지면 사람들은 경험을 멈춘다.
왜냐면 경험은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경험에서는 현실과 이론과 자신의 충돌이 일어나고 혼란을 겪게 된다.
돌아가고, 흔들리고, 실패도 하고, 그러다 길을 찾는다.
그 과정을 견디기 어려우니까, 우리는 훨씬 즉각적이고 계산 가능한 선택만을 남겨둔다.
하지만 그런 삶은… 너무 건조하다.
그리고 인간적인 성장이 멈춘다.
효율성에서 나보다 어른인 척했지만 실제로 중요한 선택 앞에서 도망치는 사람들을 난 몇몇 떠올리게 된다.
나는 이런 풍경을 보며,
효율성의 유행이 사실은 ‘두려움의 다른 이름’이라는 생각을 한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낭비에 대한 두려움.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어쩌면 나 또한 그 두려움 속에 있다.
아주 사적인 이야기지만
연애의 실패를 곧 결혼 실패로 연결시키며,
잘못 쓴 것 같아 억울해하고,
두 번 다시 효율성이 갖춰진 상황에선 선택하지 않으려 하지 않았던가.
얼마 전 TV에서 본, 요즘 MZ세대의 연애 회피 이유를 보면 더 선명해진다.
“감정낭비, 시간낭비, 돈낭비.”
연애가 아닌 효율을 선택한다.
효율적으로 상처받지 않는 방법을 고르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연애뿐 아니라 삶 전체로 번져간다.
나는 이 지점에서, 이상한 모순을 본다.
한쪽에서는 AI가 세상을 대체한다고 말한다.
그러니 더욱 효율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기술의 최전선에 서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반대로 말한다.
AI는 인간의 효율성을 대체하지, 인간의 ‘특별함’을 대체하지 않는다고.
따라서 변하지 않는 것, 기계가 따라갈 수 없는 능력—
경험, 통찰, 감정, 관계, 실패로부터의 성장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현실의 우리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기계를 닮기 위해 더 빠르고, 더 정확하고, 더 차갑게 변하고 있다.
효율성이 높아질수록 오히려 ‘인간적인 것들’이 사라지고 있다.
경험, 실패, 시행착오, 어색한 대화, 불편한 관계,
그 모든 비효율들이 사라진다.
그 비효율들이 사실은 우리를 단단하게 만들고,
나만의 개별성을 만들어내는 본질인데도 말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효율성은 삶을 돕는 기준일 수는 있지만,
삶의 방향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효율적으로 산다는 건 잘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덜 흔들리기 위한 삶’ 일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흔들려야 자란다.
돌아가야 보이는 길이 있다.
인생을 100년도 살지 못한다면,
유한한 인생의 시간을 완벽하게 쓰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나라는 존재를 조금씩 읽어가며,
내가 왜 실패했고 왜 다시 일어났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효율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나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들은 대부분 비효율 속에서 왔다는 것을 안다.
그 비효율이 있었기에 나는 지금의 내가 되었다.
그래서 오늘은 이렇게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