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칼이쓰 Jun 08. 2020

제주스러운 주말

부산스러운 우리




금요일 밤, 부모님 전화가 왔다. 당장 토요일 오전 비행기로 제주에 오겠다는 연락이었다.

나는 신랑이 일하고 있는 세화에 가서 함께 저녁을 먹고 밤늦게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운전면허를 따고 부산에서 운전을 했었지만 모든 것이 세팅되어 있는 상태에서 직진만 하는 수준이었다. 제주에 오고부터 운전을 하지 않다가 결혼을 하고 출퇴근 길 버스가 잘 없어서 신랑에게 다시 배웠다. 다른 사람도 아닌 신랑에게 배우려니 괜히 더 서럽고 눈물겨웠는데 우여곡절 끝에 혼자 운전한 지 한 달 반쯤 되었다. 덕분에 편하게 출퇴근을 하고 신랑을 만나러 온 것이다. 그리고 다행히 공항으로 마중을 갈 수 있었다.


진작부터 딸의 신혼살림이 궁금했지만 마음을 먹어야 올 수 있는 거리이니 몇 번이나 망설였다고 했다. 다소 충동적으로 '가자!'하고 연락했는데 뜸 들일 이유가 없던 나 역시 '오세요!' 하는 바람에 당장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고. 전날 밤늦게 돌아와 세수만 겨우 하고 알람 맞출 정신도 없이 잠들었는데 새벽 여섯 시에 눈이 번쩍 뜨였다. 집구석 구석을 청소하고 빨래를 널고 공항으로 갔다.




부모님을 만나자마자 여행을 시작했다. 동쪽으로 갔다. 부모님이 분명 좋아할 것 같았던 우럭 정식을 점심으로 먹고 식당 근처를 산책했다. 해당화와 분홍 찔레꽃과 수국이 한데 어우러져 피어난 곳을 보고 한참 동안 사진을 찍었다. 동남쪽으로 향해 수국이 가득한 곳을 걷고 김영갑 갤러리에 갔다. 가는 곳마다 새들은 노래하고 이름 모를 작은 꽃들이 지천에 피어 한들거렸다. 예쁜 바다를 보고 회를 떠 와 드디어 집으로 온 부모님은 아늑하고 행복해 보인다고 안심하셨다. 저녁을 먹은 후엔 집 근처 해안 산책로를 걷고 다 같이 눕자마자 잠들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함께 예배를 드렸다. 사두었던 고사리육개장을 조리해서 아침으로 먹었다. 어제는 동쪽을 갔으니 오늘은 서쪽을 가자 하고, 숲과 바다와 오름을 두고 고민하다가 길이 험난하지 않고 분화구와 말이 있는 금오름(금악오름)으로 갔다. 산길과 아스팔트 길이 있어 우리는 산길을 올랐다. 새의 소리가 영롱했다. 땀을 흠뻑 흘렸지만 산이 주는 기분 좋은 기운으로 개운했다. 말에게 다가가다가 회색 개구리가 발 앞에 있어 깜짝 놀랐다. 아빠는 '쥐색', 혹은 '비둘기색'이라고 했지만 나는 그냥 회색이라고 하고 싶다. 그러는 중에 말똥을 살짝 밟았지만 역시 기분이 좋았다. 때 이른 무더위에 땀을 많이 흘렸더니 시원 새콤한 물회가 먹고 싶어 졌다. 금능해변 근처엔 사람이 너무 많아 조용한 곳을 찾았다. 별다른 정보 없이 찾아갔지만 사장님이 매우 친절했고, 바다가 보이는 테라스에서 신선한 물회를 먹었다. 




사실은 유난히 부산에 가고 싶은 주말이었다. 컨디션이 안 좋아 다음으로 미루고 축 처져있을 예정이었다. 제주에 사는 동안 부모님이 오실 때마다 차도 없고 주머니 사정도 여의치 않아 제대로 대접해드린 적이 없다. 맨 처음 노형동에 살 땐 기숙사 생활을 해서 집으로 초대할 수 없었고 서귀포 이중섭거리 근처에 살 땐 공항에서 집까지 공항리무진을 타고 와야 했다. 부산에서 제주로 오는 비행시간보다 더 긴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와서 또다시 버스를 타고 하루에 한두 군데 갈 수 있었다. 그마저도 버스시간에 쫓기고 오히려 받기만 하면서. 처음으로 차로 편히 모셔 다니며 유명하지 않아도 나의 취향이 가득한 예쁜 곳을 가고,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을 수 있었다. 부모님이 다녀가실 때면 늘 아쉬웠는데 오늘만큼은 조금도 아쉽지 않았다. 아빠와 엄마는 그저 막내딸이 어떻게 사는지 보러 왔다가 뜻밖에 아주 행복한-제주스러운- 여행을 했다고 하셨다. 하지만 나야말로 부모님 덕분에 생각지도 못한 여행으로 꽉 찬 주말을 보냈다.




약 열흘간 심한 편두통에 시달렸다. 매일 오후 두 시 삼십 분쯤 시작되어 잠들 때까지 고통스러웠다. 부산에 가고 싶은 주말이었지만 컨디션이 안 좋았던 이유였다. 일 때문에 떨어져 있어 함께해주지 못한 신랑이 모처럼 집에 와서 아픈 나를 꼭 안아주었다. 품에 안겨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혹시 아기를 가지게 되면 약을 함부로 못 먹는데 임신 중에도 머리가 이렇게 아프면 어떡하지?


임신하면 안 아플 거야.


우리 엄마도 아직 두통을 안고 살고 나도 이런데 나중에 우리 아기도 아파서 나 원망하면 속상하고 마음 아파서 어떡하지?


그땐.. 이노무시키 어떻게 혼내줄지 생각해.


나는 너무 미안해서 울 것 같으니까 당신이 대신해줘.


그래그래.


매거진의 이전글 핑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