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눈에서 악귀가 빠져나갔다
학원에 다녀온 아들이 안방에 들어오더니 한숨을 푹 내쉰다.
무슨 속상한 일이라도 있느냐 물으니
"나는 내가 왜 당구장 때문에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아야 되는지 모르겠다." 하며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속마음을 내뱉는다.
학원 마치고 친구들은 모두 당구장에 갔는데 아들은 학원차를 타고 집으로 바로 들어온 눈치였다. 친구들이 모두 당구장에 가는데 혼자 집으로 오려니 당구장 출입 금지 시킨 엄마가 원망스러웠을 게다.
내 앞에 앉아 불만을 토로하는 아들.
그런데 그 아들은 친구들보다 엄마를 선택한 거다. 열다섯. 누구보다 친구가 중요할 나이의 사춘기 절정을 달리고 있는 아들이 말이다.
"이야~ 친구들 다 당구장 가는데 집에 왔네. 대단한데!"
나의 반응에도 기분이 안 풀렸는지 아들은 방에 들어가 침대 위에 걸터 앉아서 밥 먹으러 나올 생각이 없었다.
똑똑. 방문을 두드리고 들어가 아들 옆에 나란히 앉았다.
"계속 기분이 나쁘냐?"
아들은 침대에 앉아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까는 그냥 화나서 아무 말이나 한 거다. 내가 잘못했다."라고 한다.
어이구 이놈 자식! 다 컸다.
아들 눈깔에서 악귀가 빠진 것 같아 나란히 앉은 채로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엄마 때문에 당구장 못 간 것 같지? 근데 못 간 게 아니고 안 간 거야. 예전처럼 거짓말하고 당구장 갈 수도 있고, 엄마 말 듣기 싫다고 반항하고 당구장 간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갔을 수도 있잖아. 못 간 거 아니고 안 간 거야. 엄마가 당구장에 가지 말라고 했지만 결국은 네 의지대로 행동한 거니까. 하고 싶은데 꾹 참는 거 진짜 어려운 거다. 네가 오늘 그 대단한 걸 해 놓고 뿌듯해해야지 왜 화를 내고 있냐?"
친구들 뿌리치고 집에 온 아들. 나는 한 번도 아들에게 강압적인 요구를 하거나 다그친 적이 없다. 당구장에 가지 말라 말했을 때도 경고나 명령이 아니라 권유였다. 애초에 우리 모자관계는 상하나 갑을 관계가 아니다. 혼날 걱정 없이 속마음을 다 나눌 수 있는 관계다.(이건 다음에 아들 이야기도 들어봐야 하겠지만.) 그러니까 나한테 혼날 것이 무서워서, 혹은 맞을까 봐 무서워서 행동에 제약이 있을 만한 관계가 아니라는 거다.
오늘 아들의 행동은 순전히 자기 의지에 따른 것이란 말이다.
자기 의지대로 능히 당구장에 가지 않는 대단한 선택을 해놓고 화가 나있는 아들이 안쓰러웠다.
"주원아, 놀고 싶으면 당구장에도 가고 친구들이랑 놀아도 돼. 학원에 안 다녀도 상관없어. 나는 네가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당구장에 다니든 말든 상관없어. 네가 행복하기만 하면 돼. 공부 잘해도, 못해도, 놀기만 하는 아들이라도 사랑하는 아들인 건 변함없어."
내 이야기를 듣던 아들이 눈물을 훔쳤다.
"그런데 너 학원 보내달라고 했을 때 생각나냐? 학원에 안 다녀도 되니까 다시 생각해 보라고 학원 간다는 너를 말렸을 때, 너 공부 잘해보고 싶다고 했잖아.
엄마는 중학교 때 누구보다 성실하게 공부했거든. 근데도 어른이 되니까 공부 좀 더 열심히 할걸, 그때 집안 형편이 좋아서 학원에라도 다녔으면 좋았을 걸 후회될 때가 많았어.
엄마는 네가 나중에 그렇게 후회할 일이 생길까 봐 마음이 쓰인다. 그래서 당구장에도 가지 말라고 했던 거고. 당구장에 안 가면 그 시간을 좀 잘 활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그런데 그것도 다 네 의지대로지. 자유롭게 놀면서도 걱정 안 하고, 자진해서 당구장에 안 가는 선택을 하고도 즐거울 수 있고. 엄마는 네가 그렇게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면 좋겠다."
한참 내 이야기를 듣던 아들이 눈물을 닦고
"배고프다. 밥 먹으러 나가자."
한다.
아들의 중2병이 지나가고 있다.
중3이 되려면 한 달 남짓.
올 봄방학엔 온가족이 같이 당구장 시즌권을 끊고 원 없이 당구를 쳐 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