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년 차 교육행정 공무원 된 '역사 덕후'의 회고록 제0편
'프란츠 카프카'라는 이름을 들어 보았는가? 전혀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면, 보통은 <변신> 등을 집필한 '유명 소설가'의 모습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사실 카프카의 직업은 소설가가 아니었다.
그는 우리로 치면 '근로복지공단' 내지 '산업안전보건공단'에 해당하는 곳에서 무려 14년 가까이 근무한 ‘직장인’이었다. <변신>과 같은 명작은, 평범한 직장인 카프카가 퇴근 후 밤마다 잠깐씩 소설가로 ‘변신’하였기에 비로소 탄생한 것이다.
카프카는 직장에서 성실하게 근무했고 승진도 순조로웠으나, 그의 일기장에 적힌 내용을 보면 자기 직업을 늘 마음에 들어하지는 않았던 듯하다.
아래 내용은 영어로 번역된 카프카의 일기 일부를 내가 다시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다. 상당 부분 의역하였고, 일부 오역이 있을 수 있다. 일기라고는 하나 본디 어느 어른께 보내려던 편지 내용이라는 말이 있어 경어로 번역한다.
"저는 제 직업을 견딜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제 유일한 욕망이자 유일한 사명인 문학과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저라는 사람은 문학을 빼고는 아무것도 아니고, 문학을 빼고는 아무것도 될 수 없으며 또 되기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중략) 제가 왜 이 직업을 포기하지 않는지, 왜 문학으로 생계를 해결하려 하지 않는지 물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물으신다면 저는 그저 제게 그럴 힘이 없다는, 그리고 이 직업이 저를 파괴할 것이라는, 빠르게 파괴할 것이라는 비참한 답을 내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카프카가 유럽에서 백 년 전에 남겨 놓은 이 일기가, 2026년 대한민국 모 지방에서 n년 차 교육행정 공무원으로 살고 있는 나의 심금을 울렸다.
만일 카프카가 문학을 사랑했던 만큼 당신이 무언가를 사랑해 본 일이 없다면, 그의 괴로움을 진정으로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만큼 사랑하는 일이 당신에게 있다고 해도, 생계를 이유로 그 일로부터 격리당하는 아픔을 직접 겪어 보지 않았다면 그 감상 또한 여전히 피상적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일기에 담긴 카프카의 심정을 이해한다고, 그의 입장을 몸소 겪어 보았노라고 감히 자부한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한다.
"저는 제 직업 ‘교행 공무원’을 견딜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제 유일한 욕망이자 유일한 사명인 역사학과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저라는 사람은 역사학을 빼고는 아무것도 아니고, 역사학을 빼고는 아무것도 될 수 없으며 또 되기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 제가 왜 이 직업을 포기하지 않는지, 왜 역사학으로 생계를 해결하려 하지 않는지 물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물으신다면 저는 그저 제게 그럴 힘이 없다는, 그리고 이 직업이 저를 파괴할 것이라는, 빠르게 파괴할 것이라는 비참한 답을 내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카프카가 ‘문학’을 사랑한 나머지 자기 자신을 곧 ‘문학’으로 정의한 것처럼,
나는 평생 ‘역사학’을 사랑하였으며 나 자신을 정의할 때에 결코 ‘역사학’을 빼 놓을 수 없다고 늘 믿어 왔다.
그러나 인생의 풍파가 카프카에게 전업 작가의 꿈을 이루기를 허락하지 않았듯, 나 또한 자타가 공인하는 역사학도의 신분을 결국 얻어내지 못하였다. 100년 전 유럽의 이 작가에게 나는 어떤 동병상련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불쌍한 카프카와 불쌍한 나를 한번 비교해 보고는 삶의 책장을 곧바로 덮어 버릴 것인가?
아니, 그렇지 않다. 나는 평범한 직장인 카프카에게서 그보다 많은 것을 원한다. '정답'이 안 되면 '희망'이라도 주기를 바란다.
사랑하는 일과 무관한 직업을 가지고도 무언가를 해 낼 수 있다는 희망.
그의 삶을 좀 더 살펴보자.
카프카는 글쓰기에 방해되는 직장생활을 14년 이상 해 내면서도 모두가 잠든 밤에 조용히 집필을 이어나가 결국 역사에 길이 남을 걸출한 작품을 여럿 남겼다. 뿐만 아니라 직장생활에서도 효율적이고 모범적인 근무 태도로 빠른 승진가도를 달렸다. 소설가로서도 직장인으로서도 그는 성공적인 삶을 산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밤에 소설을 쓰면 낮에 피곤해서 집중을 못 하지는 않았을까? 밤에 즐겁게 소설을 쓰는 ‘진짜 나’의 모습을 맛보고 나면, 낮에 그와 무관한 업무를 하는 ‘가짜 나’의 모습이 더욱 미워지지는 않았을까?
비슷한 상황임을 자부하는 입장에서 추측하건대, 그런 어려움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카프카가 소설을 쓴 것이 그의 직장생활에 방해가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큰 도움이 되었을 거라 믿는다. 전업 작가로 살기 위해 당장이라도 직장을 그만두고 싶은 그 억눌린 마음을 카프카는 소설 속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조금이나마 해소했을 것이고, 결국 이러한 승화 과정이 그 직업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데에 일조했을 것이다. 반대로 카프카의 직장 생활이 그의 작품 활동에 도움이 된 측면도 있다. 그가 산재 실태 파악 업무 처리 과정에서 접했을 노동자들의 고된 생활상은 그의 소설 군데군데에 그대로 녹아 있다.
그의 이러한 삶은 나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역사학에 대해서든 아니면 그 무엇에 대해서든 읽고 쓰고 사유하는 삶을 갈망하면서도, 마치 이를 방해하는 듯한 직업의 존재에 짓눌려 살아온 지 벌써 몇 년인가.
글을 쓰기로 했다. 카프카가 그랬듯 퇴근 후에, 밤의 어두움을 벗 삼아서.
카프카가 문학 작품 속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억눌린 자신의 마음을 세상에 고백하였듯이,
나 또한 자신의 뒤틀린 생각을 글로써 풀어내어 치유와 성장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이 글은, 어느 '역사 덕후'가 삶에서 생각지도 못한 일들을 겪다가 갑자기 교행 공무원이 되어 몇 년 동안 감정의 소용돌이를 헤매는 이야기의 프롤로그이다.
"나와 역사, 나의 역사"
이 이야기를 쓰는 과정이 나를 역사학도로서도, 교행 공무원으로서도 조금씩 성장시켜 주기를 바란다.
이 시리즈의 내용은 신상 특정을 방지하기 위해 각색을 거칩니다.
https://brunch.co.kr/@myeun27/353
https://wordandsilence.com/2016/09/26/kafkas-diar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