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년 차 교행 공무원 된 '역사 덕후'의 회고록 제1편
교행 공무원으로 일한 지도 벌써 몇 년이 지났다. 어느 겨울밤, 여느 때처럼 어둑어둑해진 학교에 홀로 남아 야근을 하다가 문득 생각했다.
‘어쩌다 이렇게 됐지?’
행정실 바깥 사람들은 존재조차 모를 온갖 서류가 책상 위에 어지러이 널린 모습이 새삼 낯설다. 무슨 수의계약이 어쨌고 청렴이 어쨌고 조세가 어쨌고 서약이 어쨌다는 서류, 교직원들이 되는 대로 꾸깃꾸깃 가져다 준 신용카드 영수증 한 무더기, 요즘 학생들은 배우는 것도 왜 이리 많은지 명칭도 다양한 강사 출근부에, 거기에 딸려오는 4대보험과 세금 신고 서류.
이런 게 내 삶의 일부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공무원’이라는 길도, ‘교육행정’이라는 길도 대학생 때까지는 아예 생각해 본 적조차 없었다. 이곳에서 사용하는 지식이나 요구받는 자질은 내가 평생 쌓고 길러 온 것과는 조금의 연관성도 없었다. 교행으로 일하기 전의 삶과 교행이 된 이후의 삶이 너무 달라서,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을 만큼 혼란스러울 때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 직업을 택했는가? 정말로,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나는 이 삶을 어떻게 느끼고 있으며, 앞으로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 걸까? 언젠가부터 내 삶은 이런 질문들로 가득 차고 말았다.
얼마 전, 삶의 물음표를 외면하지 않고 답하는 글을 쓰기로 다짐한 바 있다. 그렇게 하면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고마워할 거라고.
https://blog.naver.com/karku888/224062061838
그런 다짐을 하고서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 답을 위해 내 삶의 이야기를 공개된 공간에 풀어 놓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과연 무엇을 어떻게 써야 좋을지 오래 고민했다.
심사숙고 끝에 나름의 답을 내었다. 드디어 시작한다. 이제껏 내 삶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교행 공무원으로 일하는 과정이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 앞으로 차차 풀어내 보도록 하겠다.
‘꿈’.
‘진로’, ‘적성’, ‘사명’, ‘달란트’, ‘천직’.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학교에 다닐 때 어른들은 우리에게 이런 것을 ‘찾으라’고 했다. 중고등학교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이미 전공을 정해서 공부하고 있는 대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선생님이나 교수님, 사회에서 성공을 거둔 까마득한 선배님들은 마치 적성에 맞는 꿈이라는 게 누구에게나 하나씩 다 정해져 있기라도 한 것처럼, 우리더러 부지런히 탐색해 꿈을 찾아내서 그 길에 모든 걸 쏟아부으라고 했고 또 그런 삶의 사례들을 우리에게 모범으로 제시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런 이야기를 따분해하거나 또는 부담스러워했다. 적성에 맞는 진로를 찾아야 한다는 말을 익히 들어 알고는 있지만, 사실 꿈이라는 게 막 무턱대고 노력한다고 찾아지는 게 아니니 말이다.
대학을 졸업한 지 한참이 지난 지금 생각해도, 모두에게 특별한 적성을 강조하는 그런 교육에 과연 큰 의미가 있었을지 의심스럽다. 특정한 분야에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나, 필요한 경제적 지원을 온전히 받으며 그 길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건 운이 좋은 소수에게만 허락되는 행운 아닐까?
모든 학생에게 저마다의 낭만적이고 특별한 삶, 고유한 ‘꿈’에 대한 환상을 심어 줄 시간에, 차라리 정말로 누구에게나 필요했을 금융 교육이나 한 자 더 해 줬으면 어땠을까 싶다.
그러나 지금의 이런 생각과 달리, 십수 년 전의 나는 꿈을 찾으라는 이야기가 나올 때면 늘 의기양양, 자신만만해 신이 나던 학생이었다. ‘나만의 특별한 꿈을 찾았는가’라는 기준에서 내 삶은 더없이 성공적이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어른들의 말대로 이미 확고한 꿈을 찾은 지 오래였고, 그 꿈에 모든 것을 바쳐 인생을 빛낼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었다.
우리 세대 남자치고 초등학교 때 ‘만화 삼국지’ 한 번 안 읽어 본 사람은 드물 것이다. 왜인지는 몰라도, 신기한 무기를 든 장수가 말을 타고 춤을 추는 듯한 몸놀림으로 무수한 적병의 목을 베고 승리를 거두어 땅을 빼앗는 그런 이야기가 나를 비롯한 또래 남자아이들에게는 굉장히 인기가 많았다.
어린 나를 ‘역사’의 세계로 처음 이끈 것은 그런 만화들이었다. 서당 학생들이 훈장에게 한국사를 배우는 만화, 먼 나라와 이웃 나라의 역사를 다루는 만화, 세계 곳곳의 신화를 소재로 한 만화 등 온갖 종류의 역사 만화를 몇 번이고 읽었다. ‘꿈’을 찾은 계기로 소개하기에 이런 학습만화는 소박하고 평범하지만, 당시의 나는 만화에서 매번 새롭고 특별한 즐거움을 가득 느꼈다. 밥을 먹을 때도, 주말에 간식을 먹을 때도, 수업이 끝나고 집에 와서 시리얼을 한 그릇 타 먹을 때도 늘 역사 만화가 함께했다.
그냥 만화를 몇 권 읽었을 뿐인데, 그것만으로도 또래 초등학생에 비해서는 아는 게 꽤 많아졌다. 학교에서 역사에 관한 수업을 들을 때면 아는 체가 하고 싶어 몸이 근질거렸고, 때로 잘난 체가 과해 갈등이 생기기도 했다. 집에선 틈만 나면 동생을 상대로 지도를 펼쳐 놓고는 역사 이야기를 했는데, 거기에 꽤 재미를 붙였는지 한번은 동네 아이들을 몇 명 모아 놓고 아예 수업을 하듯 한 적도 있었다.
‘역사 만화를 많이 읽은 덕에’라고 할지 아니면 ‘맨날 역사 만화만 읽었는데도’라고 할지는 모르겠지만, 학교 공부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초등학교에서는 전과목 만점을 받은 적도 몇 번 있었고, 중학교에서도 학급 1등을 거의 놓치지 않았다.
취미를 물으면 ‘역사 공부’라고 답하는 아이가 성적도 좋으니, 어느샌가 어딜 가나 공부 잘하는 똑똑한 아이로 통하는 데에 익숙해졌다. 나중에 이야기하겠지만, 이런 익숙함은 나중에 교행 공무원이 되고서 자존감이 수직 하락하는 데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어쨌든 이때까지의 나는 단순히 역사를 좋아하는 어린 학생일 뿐, ‘역사학자’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잘 모르고 있었다.
나와 역사, 나의 역사 / 제1편 끝
이 시리즈의 내용은 신상 특정을 방지하기 위해 각색을 거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