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년 차 교행 공무원 된 '역사 덕후'의 회고록 제2편
□□도 △△군 ◯◯읍의 한 작은 아파트, 매서운 추위가 점차 가시고 있던 어느 날, 거실에 놓인 컴퓨터 화면은 빼곡한 글씨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귀한 보물이라도 발견한 듯 숨을 죽이고 화면에 빠져들어 있는 것은 촌스러운 교복을 입은 한 중학생.
이제야 콧수염이 조금씩 짙어지던 앳된 나이, 나는 짧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운명의 한 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중학생이 되어서도 역사 학습만화에 대한 사랑은 여전했다. 그러나 이때 내 삶은 한 가지 중요한 전환점을 돌게 되는데, 바로 '인터넷 커뮤니티'였다.
태어나자마자 스마트폰을 만지는 요즘 아이들만큼은 아니지만, 우리 세대도 부모 세대에 비하면 어려서부터 다양한 신문물을 자연스럽게 다루어 온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라 할 수 있다. 이는 정보화 사회에서 이득이 되기도 했지만, 주변 많은 친구들이 컴퓨터 게임에 너무 깊이 빠지는 바람에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일도 흔히 볼 수 있었다.
다행히 우리 부모님은 컴퓨터 사용에 대해 꽤 엄격한 기준을 갖고 계셨다. 게임은 일주일에 딱 한 번, 한 시간씩만 할 수 있었고, 대신 다른 용도로 컴퓨터를 쓰는 데에는 별다른 제약이 없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어딘가에 빠지면 꽤 깊이 몰입하는 내 성격을 고려하면, 당시 부모님의 이런 지침은 내게 큰 도움이 되었으리라 본다.
당시만 해도 요즘만큼 맞벌이가 흔하지 않았고, 따라서 우리 세대 아이들은 요즘 아이들처럼 학원을 많이 다니는 편이 아니었다. 물론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었겠지만, 우리 △△군 ◯◯읍에는 어차피 따로 다닐 만한 학원도 마땅치 않았을 것이다.
덕분에 나는 하교 후에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컴퓨터를 사용하며 보냈다. 중학생이 되어 인터넷 쓰는 법에 더 익숙해지니 아무래도 책보다는 컴퓨터가 더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우리 집 컴퓨터는 거실에 놓여 있었다. 그래서 몰래 게임을 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했고, 따라서 나의 인터넷 사용은 꽤 건전한 편이었다. 그동안 다양한 역사 학습만화에서 접했던 인물이나 사건을 검색해 읽어 보거나, 당시에 운영하던 블로그에 내가 아는 역사 지식을 조금씩 되는 대로 적어 올려 보는 등의 일이 주를 이루었다.
내 운명을 바꾼 하루는 그런 과정 속에서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내가 이렇게 본격적으로 인터넷 세상에 빠져들기 조금 전, 새천년과 월드컵을 전후하여 인터넷 세상에는 한 가지 흐름이 형성되고 있었다. 바로 '동호인 문화'다.
편의성 측면에서 일반 대중에게는 다소 진입장벽이 있었을 법한 'PC 통신'의 시대가 저물고, 누구나 편하게 개인 홈페이지와 동호회 사이트를 만들 수 있게 되면서, 다양한 취미를 공유하는 애호가들이 저마다 모여들어 정보를 공유하는 모임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이러한 흐름이 어찌나 강력했던지, 이 시기에 형성된 커뮤니티 중에는 지금도 세를 유지하고 있는 서비스가 많다. '다음 카페', '오늘의유머', '디시인사이드'는 모두 99년도에 개설되었고, '루리웹'은 00년도에, '네이버 카페'는 03년도에 각각 개설되었다.
시간이 더 지나 □□도 △△군 ◯◯읍 시골의 중학생이었던 내게까지 이들 커뮤니티 사이트의 존재가 알려졌을 때쯤에는 이들이 이미 상당한 규모로 자리를 잡아 놓은 상태였다.
수많은 사람이 몰려 새 글과 새 댓글을 정신없이 써 대는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내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은 것은 이들 사이트 내부 곳곳에 형성되어 있었던 '역사 커뮤니티'였다.
역사를 좋아한다지만 그냥 혼자서 학습만화를 보거나 학교 수업을 듣는 게 다였던 내게, 다양한 연령대의 '역사 덕후'가 몰려들어 온갖 사료와 연구를 소개하고 수많은 주제로 열띤 토론을 펼치는 역사 커뮤니티 사이트의 모습은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 그 자체였다. 지금도 이를 처음 마주하던 그 순간이 눈에 선하다.
얼마 전 대통령의 언급으로 논란의 중심이 되었던 '환단고기' 이야기나, 신라 중심의 삼국 통일과 나당 전쟁에 관한 논쟁, 광해군의 '중립외교'에 대한 평가, 흥선대원군에서 고종으로, 다시 일제강점기와 광복, 분단과 전쟁, 독재와 산업화, 민주화로 이어지는 근현대 정치사 논쟁,
중국, 일본이나 유럽의 크고작은 역사적 사건 하나하나, '책봉'이나 '속방'의 의미와 같은 국제적인 문제로부터 평소 우리가 즐겨보던 사극의 고증 문제에 이르기까지,
역사 커뮤니티 멤버들은 어느 것 하나 가볍게 다루지 않았고, 학습만화와 학교 수업이 전부였던 어린 내게는 정말이지 거기서 접하는 모든 것이 신선하고 놀라웠다.
역사학을 전공한 사람들은 객관적이고 차분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든 사료와 논문을 인용했고, 그런 자료를 모르거나 오해한 채로 떠드는 비전문가에게는 가차없는 반박을 가했다. 나는 거기서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멋을 느꼈다.
역사 커뮤니티를 처음 발견한 그 날로부터 곧바로, 이유가 뭐랄 것도 없이 나는 무섭게 빠져들었다. 매일 수업이 끝나고 집에 오면 곧바로 컴퓨터를 켜서 역사 커뮤니티 사이트를 구경하는 데에 몰두했다. 대개 '눈팅'을 했지만 때로 질문과 답변에 참여하기도 했는데, 그 과정에서 창피한 경험도 많이 하고, 그만큼 배운 것도 많았다.
얼굴을 맞대지 않은 익명 공간이라 그런지, 어린 내가 바보같은 말을 할 때 짓궂고 무뚝뚝한 말투로 무안을 주는 사람을 흔히 마주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도 말투만 신경질적일 뿐 결국은 내가 어느 부분을 놓치고 있는지, 어떤 사건, 어떤 사료에 대해 더 알면 좋은지 알려주었고,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나눈 그런 대화 하나하나가 내게는 정말 귀한 자료가 되었다.
사이버 공간의 이름 모를 아저씨들과 나누는 토론에 나는 차차 '중독'되어 갔다. 역사에 대해 싸우듯 논쟁하고 새로운 사실을 배우는 데에 이유를 알 수 없이 끌리고 설레었다. 점점 학교에 있는 동안에도 역사 커뮤니티 사이트 생각을 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어제 나눈 대화를 복기하고 오늘 나눌 이야기를 구상하는 데에 몰두하게 되었다.
새로운 사료와 새로운 해석, 그로 인해 촉발되는 새로운 평가와 뜨거운 논쟁, 거기에서 낱낱이 밝혀지는 사실과 기존 논리의 오류.
이 모든 것을 경험한 나는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내가 있을 곳을 찾았다는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평생 이 세계에 속해 있겠다는 마음이 어느새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잡았다.
그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나의 생활기록부 '장래희망'란에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역사학자'라는 단어가 적히게 되었다.
이때만 하더라도, 나는 내가 이 세계와 그토록 뼈아픈 이별을 겪을 줄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나와 역사, 나의 역사 / 제2편 끝
이 시리즈의 내용은 신상 특정을 방지하기 위해 각색을 거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