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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annie Mar 31. 2023

내가 가르쳐도 괜찮을까?

병아리 교수의 번역수업 일기

회사에서 근무를 하던 중 모교 교수님께 전화가 왔다. 잠깐 사무실 밖 복도에 나가서 전화를 받았다. 교수님 번호만 뜨면 학생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나는 이상하게도 핸드폰을 공손히 두 손으로 들고 통화를 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번역수업을 맡을 교수를 한 명 충원해야 하는 상황인데 다른 교수들에게 추천받아서 연락을 하게 되었어요. 겸임교수로 수고해 줄 수 있을까요?"


학교에서 특강이나 비학위 프로그램 강의를 가끔 한 적은 있었어도, 학기수업은 내가 들어야 할 수업이지 가르칠 수업이라고는 생각한 적이 없었다. 감사함과 두려움이 교차했다.


"회사에서 겸직 허가가 되는지 한번 물어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회사에 내 결정을 유보했다. 그런데 까다로울 거라고 생각한 회사에서 순조롭게 겸직이 허용되었다. 물론 내가 할 의사가 있어도 학교의 정식 채용 절차를 밟아야 한다. 학교의 채용 절차도 부드럽게 진행되었다. 내 인생에 새로운 문이 열릴 때는 늘 이렇게 파도를 타는 것처럼 불가항력적인 힘과 나의 노력이 알맞게 조화를 이뤘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열리지 않는 문이 있는가 하면, 내가 머뭇거려도 파도가 밀듯 상황이 나를 미는 순간들이 있다. 지금이 그런 순간인 것 같아, 두렵지만 그 파도를 타기로 결심을 했다.


일단 결심은 했는데, 그때부터 내 머릿속에 큰 물음표가 떴다.


'내가 가르쳐도 괜찮을까?'


미국에서 활동한 레바논 출신 시인 칼릴 지브란(Kahlil Gibran, 1883~1931)은 "가르침"(Teaching)이라는 시에서 가르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The teacher... gives not of his wisdom but rather of his faith and his lovingness.

(선생은 자신의 지식이 아닌 신념과 사랑을 주는 사람이다.)


If he is indeed wise he does not bid you enter the house of his wisdom, but rather leads you to the threshold of your own mind.

(지혜로운 선생은, 학생을 선생의 머릿속에 들어오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자신의 머릿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알려준다.)



내가 부담을 느낀 이유는, 가르치는 사람은 수업하는 주제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그 지식을 모두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직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하지만 지브란의 시 대로라면, 내가 가르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다음으로 정리가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번역이라는 일에 대한 신념

내 경험이 학생들이 향후에 일할 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학생들에 대한 이타적 사랑, 그리고

내 머릿속 지식이 완전하지는 않아도 10년이 넘는 경력기간 동안 내 지식창고를 어떻게 최대한 활용하여 번역물을 생산해 냈는지를 알려주며, 학생들이 자신의 지식과 재능을 어떻게 이용할 수 있는지 가르치는 것


이거라면 가능하겠다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학기가 시작한 날 모교로 향했다.



(*본 글에 포함된 국문번역은 제가 직접 번역한 것이며, 다른 저작물에서 복사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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