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왔으면 하는 vs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살아가는데 굳이 이유가 있어야 사는 건 아니지만, 삶에 이유가 있다는 건 사람을 움직이는 중요한 연료가 되는 것 같기는 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다. 하지만 모든 연료가 소진된 지도 모른 채 몇 개월을 지내고 나서 좋지 않은 모습으로 망가져 있는 나를 발견하니, 지금껏 너무나 많은 문제를 무시한 채 앞만 보고 달려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술 한잔을 하며 깊은 고민을 털어둘 때 항상 듣는 말이 있었다. "넌 너무 기준이 높아." 그러게 말이다. 나는 항상 분에 넘치는 일을 이리저리 벌리고 다니길 일삼았다. 아침 6시에 일어나 3시간 안에 먹고, 씻고 운동하고, 공부하고, 독서하고를 반복했고, 못하면 스스로를 심하게 질책하길 멈추질 않았고, 돈을 아껴야 한다며 씩씩거리며 밥을 지어먹고, 7시간의 수면을 채우지 못하면 이리저리 시간표를 뜯어보며 하루의 문제점을 분석해 댔으며, 가지고 있는 물건을 병적으로 당근을 했고, 비워가는 만큼 나는 채워진다며 계속 스스로를 속이기 바빴다. 쉬지 않고 달리는 삶은 주말에도 계속되었으며, 영상들을 분석하고, 음악을 공부하고, 술자리와 공연도 참석하며 긴긴 몇 개월을 보내왔다. 나에게 하는 모진 투자라며, 지난 10 몇 년을 버려온 나를 다그치는 그 어떤 것이라며 스스로에 대한 기준은 뒤떨어진 현재를 금방 끌어올리기 위한 목표라며 그런 1년 몇 개월을 보냈다.
그러고 나서 나는 번아웃이라는 놈을 겪었다. 몇 일간을 초점이 풀린 눈으로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기 일쑤였으며, 식재료 봉투도 뜯지 못한 채 냉장고에 넣어두고 썩히길 몇 번씩 반복했으며, 짐을 풀었다, 쌌다가를 되풀이하며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지 깨닫지를 못했고, 잠을 자다가 불현듯 깨기를 반복했다. 그러면서도 쌓여가는 자기혐오는 멈출 줄을 몰랐고, 내팽개쳐놨던 기록들과 작업물들을 하나 둘 건져 올렸을 때는 이미 유통기한이 지나버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들이 되어있었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육성으로 배어 나온 한 마디는 "끝이 나긴 하는 걸까?"였다. 너무나 많은 일들을 하려고 했던 까닭은 빚을 갚기 위해서였다. 계속해서 힘을 내려고 했던 이유도, 주말에도 일들을 벌려놓고 계속 프로젝트를 쌓아두고, 지치면 안 되니까 강도 높은 운동을 반복하며, 조언을 들으러 다니고, 공부했다. 그 모든 게 하찮은 숫자 때문이었다는 게 분했다.
나에게 주어진 하루에 감사하기를 멈추니 신기하게도 세상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 것들 투성이었다. 대학생들이 평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술을 마셔대며 후식으로 탕후루를 싹쓸이하는 통에 길거리 쓰레기 봉지에 꼬치들이 빈틈없이 꽂혀있는 광경은 마치 쓰레기 시점 슬레셔 무비를 보는 생경함을 느끼게 했고, 전단지가 빈틈없이 뿌려져 있는 땅바닥을 하염없이 쓸고 있는 미용실 아줌마의 표정에는 내가 전에 본적 없는 여유로움이 보이는데 이루 말할 수 없는 괴리감을 느꼈다. 시선이 삐뚤어지고 뇌가 삐뚤어지니까 모든게 보기 싫어지는 것이다.
'갈 때까지 갔어. 진정으로 미쳤나 보다.' 싶었을 때 다시 정신을 차리기 시작하니, 내가 벌려놓은 일상들이 나를 불쌍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안 되겠다 싶어 이제 뭔가 하루하루 이유를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하루 10분 나에게 하루를 살아가는 이유를 적어보려 한다. 내일이 오기 싫은 이유는 하루에도 10개씩 쌓여가는데, 내일은 기다려지지 않는 어린애 같은 마음을 어찌해 보기 위해 오늘도 내일도 살아야 할 이유를 적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