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세상은 평온하도다.
가벼운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지 못한 지 꽤 오래된 것 같다. 어제는 새벽까지 생각이 많아 잠을 쉽게 청하기 어려웠다. 두어 시간 간신히 자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 "빨간 머리 앤" 더빙판의 대사가 불현듯 떠올랐다. "God's in His heaven- All's right with the world."라는 로버트 브라우닝(Robert Browning)의 시 "피파의 노래(Pippa's Song)" 마지막 구절이었다.
빨간 머리 앤 50화는 이 구절을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세상은 평온하도다."라고 번역한다. 이는 원문을 신으로서 하나님이 그의 하늘나라에 계시며 세상을 주관하고, 그 덕분에 세상은 질서에 어긋나지 않게 '제대로' 있어서 평온하다는 의미를 지닌 하나의 이야기로 재구성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평온하다는 관념과 연결된 '평화'에 대한 사유는 근대적 세계로의 탈바꿈과 함께 변화된다. 곧 서구의 종교적 세계에서 진리가 평화를 만든다는 관념이 권위가 평화를 구현한다는 관념으로 대체된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브라우닝의 시와 그 시에 대한 번역에서 평화라는 평온의 분위기는 진리의 위치를 가늠하도록 만드는 관념의 단서를 인지하거나 느낌으로써 인식하게 되거나, 혹은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세상의 올바른 뜻, 곧 진리의 담지자인 신의 존재가 달리 어느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자리에 있고, 그로 인해서 진리가 질서를 지탱하며, 세상이 평온하다고 믿는 관념은 우여곡절 끝에 자기 삶의 터가 된 초록 지붕 집을 지키기 위해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것을 접은 앤의 선택을 이끄는 완결적 의미를 지니는 이유가 되며, 서사를 마무리 짓는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보건대 선택의 연속인 삶이 견뎌내는, 아주 오래된 방식은 열려 있는 숱한 길 가운데 답이 있다고 설정하는 것인 듯하다. 답의 존재에 대한 믿음 덕분에 과거와 현재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어 한정된 시간을 살아가는 인간의 근원적 불안에 수반되는 '무의미'라는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는 토대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방식 그것 말이다.
다만, 정답을 찾는 방식의 역할과 효과를 해석하려고 노력해도 삶을 꾸리는 것이 진정 평온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이마저도 답을 찾아야 한다고 믿는 것을 보면, 생각하는 구조가 틀 지워진 것 같다. 벗어날 수 없다면, 멈추지 않으려면 정답을 찾으려고 하는 방법 말고 현재는 선택할 방법이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