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정상에서 인왕산을 향해 시선을 옮기다 보면 안산과 인왕산을 오갈 수 있는 길을 잇는 다리가 보인다. 언제부터 한 번 가보자고 마음먹고 있었지만, 발을 실제로 옮기지는 못하고 있었다. 지난밤 달리지 않기로 정한 일요일, 마실을 나간다 생각하고 가보자 마음먹고 잠들었다.
그러나 출발하기로 한 새벽 다섯 시까지도 뭉그적거렸다. 결국 아침 9시 좀 못 되는 시간에 출발했다.
인왕산을 향해 가는 길은 안산 둘레길을 따라 놓여있었다. 이 길은 이전에 새벽마다 달린 적이 있어서 익숙한 길이었다. 특별히 높은 언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많은 공을 들여 평평하게 잘 놓은 길이라 걷기에 수월했다. 기온이 높지 않으면 땀도 잘 나지 않을 정도였다. 게다가 올해 유난히 강한 해를 두터운 그늘이 가려주니 몸으로 느끼는 온도도 그리 높지 않아 제법 시원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안산 둘레길을 지나 인왕산으로 이어지는 무악재 하늘다리를 건너니 몸과 마음을 가볍게 했던 거의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 그늘이 얕아졌고, 올라야 할, 낯선 길들이 계단으로 또 언덕의 모습을 하고 이어졌다. 표지판에서 정상까지 1킬로미터 남짓의 거리일 뿐이라고 알려 주었으므로 내가 걸어야 할 거리가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고소공포증이 심한 내게 부담스러운 구간이 군데군데 있었고, 내 걷는 동작과 어울리지 않아 피로감을 쌓기만 하는 돌계단으로 이어지는 구간이 있어 제법 힘들게 느껴졌다.
정상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속도를 냈지만, 그 뒤에 진짜 정상이 이어져있음을 알고 피로감은 더 커졌다. 고비를 넘고 진정 정상을 앞두고 공복상태 때문에 힘이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약간 어지럽고, 팔다리가 저려서 멈출까 생각하기도 했다. 다행히 더운 날에 모르는 길 걷기를 우려해서 챙겨간 빅파이 두 봉지와 보냉병 가득 채운 물이 있었다. 그것으로 컨디션을 약간 회복할 수 있었다.
정상까지 얼마 남지 않은 길을 마저 걸어 산을 올랐다. 오르는 길에 슬리퍼를 신고 양산을 든 사람을 만났다. 이미 지쳐있는 나와 대조되는 그 사람을 보며, 사람마다 삶에서 경험하는 난이도가 다르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아이스케키를 팔러 온 한 사람도 만났다. 최선의 삶을 사는 것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생각하게 했다. 몇몇의 사람을 더 지나친 후에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종종 오른 적이 있는 안산에서 본 인왕산은 돌산의 모습이었고, 실제로도 그랬다. 정상에는 그늘을 내어줄 한 그루의 나무도 서 있지 않았다. 약간은 황량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뙤약볕에 버티느라 기운을 더쓸 수 없어서 가장 높은 곳에 몸을 올려 파노라마로 주변 풍경을 찍고서는 서둘러 산에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산은 가볍게 생각하고 들어선 나와 같은 사람에게 수월한 길을 허용하지 않았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경사를 오르며 어느 정도 견뎌야 한다는 것을 산은 상기시켰다. 그리고 진정 포기하고 싶을 때 정상이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또한 경험하게 했다. 근래 지나치게 힘이 빠져있다는 생각을 하고, 가끔 여기서 멈출까 생각도 했다. 그러나 인왕산의 정상을 꾸역꾸역 오르며, 멀지 않았구나 생각하게 됐다. 산은 겸손과 의지를 산에 오는 사람에게 내어주기 위해 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왕복 세 시간, 10킬로미터 정도의 거리였다. 마실 나간 것 치고는 꽤 많이 걸었고, 힘들게 걸었다. 땀으로 온몸이 젖어있었다. 찬물로 샤워를 하고 나니, 산에 오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더 걸어보기 위해서 트레킹화를 하나 주문했다. 트레커는 아니지만, 이따금씩 산에 가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