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첫날 시작해 102일째 꾸준히 달리고 있다. 길게는 마라톤 하프 거리, 짧게는 5킬로미터 거리를 달렸다. 평균 킬로미터당 7분 페이스, 10월에는 6분 페이스로 달리고 있다. 달릴 때마다 거리에 관계없이 한 번씩은 힘든 때가 찾아오지만, 이제 더 이상 10킬로미터를 도전이라 여기지 않고 페이스를 조절하며 달릴 수 있게 됐다.
달리기를 시작한 여름에는 더위 탓에 밤 시간에 달렸다. 그러나 더위가 물러난 가을에는 생활의 루틴에 맞춰 새벽 시간에 달리고 있다. 쌀쌀해져 제법 한기를 느끼게 되는 새벽 기온에 달리고 싶은 의지가 조금씩 줄어드는 것 같지만, 빼놓지 않고 달리고 있다. 아주 늦은 밤과 이른 새벽으로 이어진 공부의 흐름을 끊는 것이 걱정될 때도 있다. 그러나 달리기에는 인색해지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는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다음과 같이 썼다.
"만약 바쁘다는 이유만으로 달리는 연습을 중지한다면, 평생 동안 달릴 수 없게 되어버릴 것이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삶을 추동하는 하나의 힘 혹은 계기를 갖게 되는 것은 아주 드문 경험 같다. 목표를 향하여 의지적 삶을 살아가는 삶도 있겠지만, 설령 그런 삶이라고 하더라도 목표를 향한 경로를 밟아 나가는 것은 가지 않아도 될 이유를 끊임없이 물리치는 작업과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하지 않아도 될 이유를 물리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의지적인 사람으로 바로 그 목표를 위하여 살았노라고 말할 수 있게도 그렇지 못하게도 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내게 달리기는 달리지 않아도 될 이유를 물리치며 '의지적인 사람'이 되는 연습과 같다.
어떤 목표가 있어서 달리는 것은 아니다. 더 빨리 달리고 싶고, 언젠가는 풀코스 마라톤을 달려보고도 싶다. 더 잘 달리기 위해서 사람들의 말을 듣고, 이따금씩 유튜브를 찾아보거나 자료를 읽기도 한다. 그러나 더 빨리, 더 멀리 달리기 위해서 훈련의 영역에 달리기를 묶지는 않는다. 새벽 달리기를 정신의 문을 여는 의식으로, 저녁 달리기를 정신의 찌꺼기를 털어내는 의식으로 삼으며 특별한 영역에 달리기를 두기보다는 생활의 일부로 놓고 오늘도 달리고 있는 것이다.
달리는 동안에는 달리는 것 이외에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다. 발이 지면에 닿는 느낌, 발을 옮길 때마다 느껴지는 리듬감에 집중한다. 신경 쓰는 것이 있다면 시선이다. 달릴수록 지면을 향하는 시야를 달려야 할 전방으로 고쳐 잡으려고 애쓴다. 길 위에는 숱한 사람들이 있지만, 내가 달릴 길은 오직 길을 달리는 나 자신뿐이다. 나는 달리는 길 위에서 오직 나를 만나고, 오직 내게 귀 기울일 수 있다. 일상을 채우는 복잡한 생각을 하지 않으므로 달리는 시간은 이완의 시간이기도 하지만, 달리는 단 하나의 행동에 집중하게 되기 때문에 긴장의 시간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 장면에서 "The only thing the road cares about is that you pay a visit once in a while."이라는 대사가 나온다. 길은 이따금 찾아오는 당신만을 신경 쓴다. 그것은 반대로 나는 숱한 길 위의 사람들 속에서 오직 길에 집중하며, 길을 달리는 자신에게만 정신을 기울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달리는 동안에 나는 나를 느낀다. 속을 편안하게 하는 음식을 넘치지 않게 적당히 잘 먹었는지, 피로가 쌓여 굳어 있는 몸을 살뜰하게 잘 보살폈는지, 신발끈을 묶고 오늘 달리러 나갈 수 있도록 마음의 우울을 얼마나 잘 다스렸는지, 스마트워치에 깔린 달리기 애플리케이션에서 "Start"를 누르고, 1킬로미터를 달리는 동안에 어제와 지금으로 이어진 나를 거짓 없이 보게 된다. 그리고 달리자 결정한 거리에서 멈췄을 때, 달려온 내 뒤의 길들을 복기하며 오늘도 멈추지 않아도 될 만큼 살아가고 있구나, 생각하며 나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보게 된다.
나는 달리기 위해 쉼 없이 발을 옮기며, 살아갈 수 있는 동력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나는 달리며 더 잘 살아가고 싶은 마음을 품고, 또 키우고 있는 것이다.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As Good as It Gets)>에서 주인공 멜빈(잭 니콜슨 분)이 자신을 변하게 하는 캐럴(헬렌 헌트 분)에게 "You make me wanna be a better man."이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다.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드는 대상을 향한 마음은 사랑일 것이다. 달리는 나는 살아가는 나에게 더 좋은 삶을 살아가라고, 더 잘 살아갈 수 있다고 다짐하듯 속삭인다. 그것은 나의 삶과 그것을 살아가는 나에 대한 진지한 사랑의 대화가 아닐까.
달리기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지만, 달리는 동안에 사랑의 순간을 마주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