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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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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n Nov 18. 2024

이후에, 겨울은

지난주는 사흘만 달렸다. 월요일에 달리고 나흘 동안 달리지 않았다. 마음의 여유를 다시 잃은 탓이었다. 하루만 넘기자 생각했지만, 나흘을 흘려보냈다. 이럴 때일수록 생각이 몸을 완전히 지배하기 전인 잠에서 깬 새벽에 달려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른 새벽의 냉기에 의지를 잃고, 달리 성실해야 한다는 생각이 새벽과 아침을 바쁘게 만들었다. 일어나 밥을 먹고, 도서관에 가서 수시간을 보내고 돌아와 늘어지며 끝내기를 반복하며 지냈다.


주말에는 10킬로미터씩 달렸다. 주말에 달리기로 한 계획마저 허물어뜨릴 수는 없었다. 하루는 아침, 또 하루는 오후에 달렸다. 토요일 달리기는 몸이 무거워 유난히 힘들었다. 610 페이스로 간신히 다짐한 거리를 다 달렸다. 일요일 달리기는 한결 나았다. 마지막 몇 미터를 남기고 힘이 빠져 더 이상 달리기 힘들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530 페이스로 10킬로미터를 달릴 수 있었다. 그렇게 26킬로미터를 달린 한 주로 마무리했다.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 혼자 있는 시간을 줄였다. 틈만 나면, 나로 살아가는 일이 지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홀로 생각에 빠져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자기 환멸을 끊어내려고 했다. 달리 생각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가급적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려고 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나의 좌표를 찾고, 흘러간 날들을 어둡게 기억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내 이야기를 하며, 부정적인 말들로 나를 채우는 것이 내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생각했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 조용히 나의 시간을 보냈다.


세상은 시끄러웠다. 옳은 것과 그른 것, 좋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에서 충돌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결코 건설적이라고 할 수 없는 갈등의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세상의 어떤 좋은 가능세계의 가능성을 빨아들이는 것 같았다. 아주 잠깐 읽은 한 민주주의의 이론가의 책이 시끄러운 세상을 정리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을 담고 있는 것처럼 생각됐다. 한 시간 남짓 책 읽고 생각하며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여전히 떠올릴 수 있던 시간이 이번 한 주 동안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그러나 금세 나는 지금 해야 할 일들로 돌아왔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정리해야 할 일과 생각이 너무나 많았다. 쌓여있는 것들이 길을 막고 있는 현실을 마주할 때마다 힘이 빠졌다. 다만, 포기하지 않았다. 절망이 끼어들려고 할 때 밥을 먹었다. 비탄이 스며 들어오려 할 때, 몸을 움직였다. 밀리지 않으려고, 잠기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언뜻언뜻 오지 않은 날들에 올지 모를 외로운 시간에 대한 전망이 공포를 수반해 들어 올리기 쉽지 않은 무게를 내게 던졌지만, 한숨처럼 뱉어질지언정 깊이 심호흡하며, 공포가 채운 공기의 무게를 덜어냈다.


이제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을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지만, 여전히 쉽지 않은 것이 삶이라는 생각을 한다. 언제쯤 다시 웃을 수 있을까, 편안해질 수 있을까. 회의적이다. 그러나 결코 성공적인 삶으로 만들어내지는 못하고 있지만, 힘들고 지치는 날이 와도 견디고, 버티며 살아온 덕에 지금 이 시간도 참아낼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래서 쉽지 않아도 내가 마주한 문제를 풀어낼 수 있으리라 믿을 수 있다.


입동을 지났다. 차갑게 식어버린 공기가 이제 날로 날로 냉기 짙어지고 있다. 찬 겨울에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시작된 겨울과 같은 내가 넘어야 할 시간도 아직 한참 많이 남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겨울은 언젠가는 봄의 뒤에 있게 된다. 쉽지 않은 하루, 그리고 한 주를 버텼다. 앞으로도 잘 버텨낼 것이다. 수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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