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맛을 모르는 불행

by 재완


“맛이 느껴지지 않는 불행, 내가 산 거 그 거야.”

“뭐?”


말랑 말랑하고 빨간 떡볶이 떡을 심드렁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윤서가 말했다. 삶은 계란을 포크로 반으로 쪼갠 후 노른자를 떡볶이 국물에 풀고 있던 수정은 윤서의 말에 깜짝 놀라 포크를 내려놓고 고개를 들었다. 불행을 파는 가게에 다녀온 후 2주가 넘도록 윤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체 어떤 불행을 산 건지 몇 번이나 물었지만 대답 없는 윤서에게 수정도 지쳐 있던 오늘, 윤서가 먼저 떡볶이를 먹으러 가자고 말했다. 윤서가 초등학교 때부터 좋아했던 떡볶이 집이었는데, 먼저 가자고 해놓고서는 한 입도 먹지 않고 가만히 바라만 보다가 툭 하고 내뱉은 말이었다.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너도 알지? 내가 얼마나 살 빼고 싶어 했는지.”


원래의 윤서는 평범한 몸이었다. 특별히 뚱뚱하지도 마르지도 않은 그런 몸.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유독 통통하고 동그란 볼살 덕분에 친구들 사이에서는 ‘볼살통통’으로 불렸고, 그런 별명 때문인지 윤서를 ‘통통한 애’로 기억하는 친구들도 많았다.


“내가 이 볼살 빼려고 안 해본 다이어트가 없잖아. 아이돌 식단이랍시고 고구마 사과 한 개씩만 먹고 버티기도 하고, 스위치온 다이어트라고 단백질 셰이크만 먹는 것도 해보고. 근데 매번 오래 못 가고 금방 요요 왔지. 왜? 먹는 걸 포기하지 못하니까. 특히나 이 볼살까지 빠지려면 살이 지 이 이 이이인 짜 많이 빠져야 하는데, 거기까지는 빼지도 못했지. 왜? 이 먹는 걸 포기하지 못했으니까.”


윤서가 포크로 찍은 떡볶이 떡을 흔들며 말했다. 윤서가 좋아하는 밀 떡볶이라 떡이 탱글탱글 흔들렸다. 2주 전의 윤서라면 아주 사랑스럽다는 눈빛으로 떡을 바라보며 한 입에 다 넣었을 텐데, 지금의 윤서는 앞니로 떡의 끝만 살짝 베어 물고서는 여전히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근데 너랑 갔던 불행을 파는 가게 메뉴에 딱 그게 있더라고. ‘맛을 모르는 불행’. 내가 이 먹는 걸 포기하지 못했던 게 다 맛 때문인데, 맛을 모른다면 식욕도 사라질 거고, 그럼 살 빼기도 쉽겠지! 하고 그날 바로 산 거였어. 반쯤은 장난이었는데 가게 나오는 순간부터 진짜 아무 맛도 안 느껴지더라고.”

“진짜 아무 맛도 안 느껴져?”

“어. 아무 맛도, 아무 냄새도 안 나. 지금 이 떡볶이도 … 뭐랄까 되게 부드러운 고무…?”

“냄새도 안 나?”


놀란 수정의 말에 윤서는 떡볶이 접시에 코를 가까이 대고서는 강아지처럼 킁킁대는 흉내를 냈다.


“그거 알아? 맛의 대부분은 사실 냄새로 충족되는 거래. 이 집 떡볶이의 생명은 이 깻잎인데 깻잎 냄새도 안 나고 케첩과 고추장이 반반 섞인 맛도 하나도 안 느껴져. 더 신기한 건 뭔지 알아?”

“뭔데?”

“음식 냄새가 아닌 다른 냄새는 다 맡을 수 있어. 딱 음식 냄새만 못 맡아. 화장품 냄새, 화장실 냄새, 담배 냄새는 다 나. 이런 것도 못 맡으면 더 좋을 텐데. “

“진짜야?”

“야, 나 살 빠진 거 보면 모르겠어? 진짜야. 이게 아무 맛도 아무 냄새도 안 느껴지니까 뭘 먹기가 싫더라고. 식단 같은 거 할 필요도 없어. 그냥 먹기 싫고, 안 먹게 되니까 자연스럽게 빠지더라. 나 2주 만에 9킬로 빠졌어. 진짜 대박이지?”


윤서가 양손으로 얼굴에 꽃받침을 만들며 말했다. 윤서가 원하던 대로 살이 쏙 빠진 얼굴에서는 이제 통통한 볼 살도 찾아볼 수 없었고 갸름하다 못해 퀭한 얼굴선이 드러나 있었다. 차마 퀭하다는 말은 하지 못하고 수정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2주 만에 9키로면 좀 심한 거 같은데… 건강에 안 좋을 거 같아.”

“야, 너 아이돌 못 봤어? 컴백할 때마다 1,2주 만에 10킬로씩 매번 뺀다고 하잖아! 근데 다 멀쩡하고 건강하잖아. 이 정도는 별 거 아닌 거지.”

“그래도 먹는 행복이 꽤 큰 건데… 너 시험 끝나고 스트레스 푼다고 이 떡볶이 먹으러 오면 행복해했잖아.”


수정의 말에 윤서가 다시 물끄러미 떡볶이를 바라보았다. 시험 스트레스를 날려주던 매운맛과 단맛과 짠맛. 하지만 지금은 부드러운 고무가 치아에 달라붙는 느낌일 뿐이었다. 2주 전까지만 해도 사랑스러웠던 떡볶이를 바라보다 윤서는 갸름해진 자신의 턱선을 오른손으로 만지며 말했다.


“좀 아쉽긴 한데, 지금은 살 빠지는 게 더 행복해. 요즘은 화장해도 턱 쉐딩도 안 해도 되고 진짜 화장할 맛이 난다니까!”


정말 만족스러운 듯 환하게 웃는 윤서를 보며 수정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화장과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 윤서가 늘 자신의 볼살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었는 지 알고 있었으니까. 본인이 만족스러워하는데 더 뭐라고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심각해질 것 같으면 그때 멈추게 하면 되겠지 라는 생각만 하며 수정은 혼자 떡볶이를 먹었다.


“와, 미쳤다. 에이린 44킬로래. 이 키에 44킬로인데도 다이어트를 한다고?”

“아이돌 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지.”

“윤서랑 비슷할 거 같은데? 윤서야, 너 키 얼마야?”


책상에 누워있던 윤서가 반 아이들의 목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몸을 일으킨 윤서는 예전의 볼살은 모두 사라진 채 턱과 목뼈가 그대로 다 드러나 있었다.


“나? 163.”

“너 몸무게 얼마야? 넌 엄청 말랐으니까 그냥 말해줘도 되잖아.”


친구의 말에 윤서가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예전이라면 절대 몸무게는 묻지도 대답하지도 않았을 텐데.


“나 44킬로.”

“와, 지윤서 너 에이린이랑 똑같아? 진짜 대박이다. 아이돌이네 그냥.”

“아냐, 내가 무슨 에이린이야.”


반 친구들의 말에 윤서가 쑥스러운 듯 웃으며 귀 뒤로 머리를 넘겼다. 머리를 넘기는 윤서의 팔뚝은 한 줌도 안 되는 손목과 핏줄이 툭 튀어나온 깡마른 팔뚝이었다. 하지만 의자에 앉은 허벅지를 보자 다시 한숨이 나왔다. 섰을 때는 허벅지가 붙지 않을 정도로 가늘어졌지만 앉으면 푹 퍼졌다. 요만큼씩만 더 없어지면 좋을 텐데, 윤서는 자신의 허벅지 양쪽을 손으로 쓱 가르는 시늉을 했다. 몸무게가 같은 아이돌 에이린도 다이어트를 한다면 이 허벅지를 없애기 위해서 하는 걸까, 윤서가 핸드폰으로 에이린 다이어트 짤을 검색하자 [에이린 평소 몸무게 44킬로, 활동기에는 41킬로]라는 제목의 기사가 보였다.


“야, 너 더 빼지 마. 더 빼면 문제 생길 거 같아 진짜.”


옆자리에 앉은 수정이 윤서를 바라보다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수정이 바라보는 윤서는 예전 모습은 하나도 없어진 지 오래였다. 맛이 없다며 음식을 아무것도 안 먹더니 최근에는 급식실도 가지 않고 거의 영양제로만 버티고 있는 윤서였다. 체육시간에도 빈혈이 심해져 움직이지 않고, 걷다가도 자주 멈춰 서서는 어딘가에 앉아서 쉬었다 가기도 했다. 그런데도 아직도 만족하지 못하고 다이어트를 검색하고 있다니.


“봐봐. 에이린도 나랑 똑같은 키에 몸무게인데 컴백할 때는 다이어트 한대잖아. 나도 딱 여기까지만 해봐야겠다.”

“뭘 여기까지 해?”

“어차피 이렇게 살 빠져서 개 말라 인간 된 거, 진짜 아이돌이랑 똑같이 만들어보려고.”

“야, 아이돌이랑 우린 달라. 왜 아이돌을 기준에 맞춰?”

“나도 알아. 그냥 목표야. 탑급 아이돌은 어느 정도 말랐나, 나도 그 정도까지만 해볼까 하는. “

“윤서야… 나 진짜 요새 너무 걱정돼. 너 억지로라도 좀 먹어야 할 거 같아.”


걱정 어린 수정의 말에 윤서가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최근의 윤서는 맛을 느끼지 못하는 것뿐만 아니라 먹는 것 자체에 불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살이 너무 많이 빠졌다며 엄마가 만들어준 잡채는 미끄덩한 기름만 입에서 맴도는 느낌이었다. 버터가 잔뜩 들어간 유명 맛집의 소금빵은 퍼석거리는 식감만 느껴져 오히려 씹는 맛조차도 없었다. 맛이 느껴지지 않으니 식감은 오히려 불쾌하게 느껴지고 가뜩이나 없는 식욕을 더 떨어트렸다. 하지만 윤서는 적당히 먹는 척만 하며 엄마에게도 수정에게도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윤서의 만족감과 달리 다들 살이 너무 빠졌다며 걱정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윤서 역시 이제는 거의 본인의 몸매에 만족하고 있었기에 수정을 향해 씩 웃어 보이며 말했다.


“딱 여기까지만. 에이린 몸무게까지만 찍고, 나도 그만할 거야. 그거 하고 나서 불행을 파는 가게 다시 찾아가서 맛을 되돌려달라고 하면 되겠지, 뭐. “


“우리 가게는 환불이 안됩니다.”


춘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하며 윤서와 수정을 바라보았다. 깡마른 윤서는 혼자 서있지도 못한 채 수정에게 반쯤 기대어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춘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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