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에 불행을 파는 가게가 생겼어.”
“너네 동네에서 영화 찍냐? 누구 나오는데?”
수정의 말에 앞머리에 롤을 말고 거울을 보며 쉐딩을 바르고 있던 윤서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되물었다. 볼살이 통통해 아기 같은 인상인 윤서는 항상 턱과 볼에 쉐딩을 과하게 넣고는 했다. 쉐딩 같은 거 안 넣는 게 훨씬 예쁜데, 책상에 엎드린 채 윤서를 바라보며 수정은 생각했다. 하지만 윤서는 지금 쉐딩도 마음에 들지 않는지 더 진한 색상으로 턱과 볼 살을 칠하고 있었다.
“진짜라니까… 진짜 불행을 판대.”
“아, 그래. 어…”
수정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윤서가 쉐딩에만 집중하자 짜증이 버럭 솟은 수정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영화가 아니라 진짜 불행을 파는 가게라니까?”
“뭔 소리야. 불행을 어떻게 팔아?”
“내 말이! 근데 팔고 있대! 메뉴도 다양하고 가격대도 다양하대! 말이 돼, 이게?”
억울함에 흥분한 듯 수정의 목소리가 커지자 그제야 윤서가 거울을 내리고 수정을 바라보았다. 수정을 바라보는 윤서의 얼굴은 꽤나 시꺼메져있었다.
“말이 안 되지. 꿈꿨니?”
“꿈 아니라 진짜 있다니까! 내가 며칠 동안이나 봤다고! 골목 안에 얼마 전에 새로 생겼는데, 어떤 마녀같이 생긴 여자가 가게 주인이라면서 막 골목도 쓸고, 화분에 물도 주고, 생각보다 손님 많다면서 자랑도 하고 그런다니까?”
“생각보다 손님이 많다고?”
“몰라, 본인 말이니까 알 수 없지. 근데 … 진짜 그 가게 들어가는 손님 나도 보긴 했어. 그런 이상한 가게에 지 발로 들어가다니… 미친 거 아닌가 몰라.”
“ … 진짜 있다면 나도 가보고 싶긴 하네.”
“뭐? 가서 뭐 하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윤서의 말에 수정이 고개를 휙 돌리며 물었다. 하지만 윤서는 표정변화 하나 없이 앞머리에 말고 있던 롤을 조심스럽게 풀고서는 다시 거울을 들고 코랄색 틴트를 바르며 말했다.
“어떤 불행을 파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내가 원하는 게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불행을 원한다고 …?”
“뭐, 있을 수도 있다는 거지.”
새초롬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는 윤서를 보며 수정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유치원 때부터 친구인 수정과 윤서였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다 같은 학교를 다니면서 윤서에 대해 모르는 건 없다고 생각했는데 윤서가 불행을 원한다니, 수정은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 수정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틴트를 다 바른 윤서는 오늘의 화장이 마음에 드는지 씩 웃으며 수정을 돌아보았다.
“진짜면 나 좀 데려가줄래?”
딸랑.
가게 문에 달린 종소리가 명쾌하게 울렸다. 가게 한 구석의 소파에 늘어져 눈을 감고 있던 춘이 종소리에 눈을 떴다. 몸은 일으키지 않은 채 눈만 굴려 문 쪽을 바라보자 교복을 입은 여학생 두 명이 서서 춘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명은 가게 앞에서 몇 번 본 얼굴, 한 명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냥 평범한 카페 같은데?”
“너도 간판 봤잖아. 불행을 파는 가게라고.”
“그거야 어그로 끌려고 가게 이름만 그렇게 지은 거일 수도 있지.”
눈만 뜬 채 움직이지 않고 있는 춘을 보며 수정과 윤서가 속삭였다. 수정은 가게 앞을 지나다니며 몇 번 훔쳐본 적은 있지만 안으로 들어온 건 처음이었다. 날씨가 조금씩 추워지고 있는데 여전히 짧은 반바지와 크롭탑을 입고 야자수가 그려진 로브를 걸친 춘을 보며 수정은 윤서의 팔짱을 꽉 잡았다. 윤서는 그런 수정의 손을 같이 꽉 잡고서는 춘이 늘어져 있는 소파 쪽으로 한 발짝 다가섰다.
“여기가 불행을 파는 가게, 맞아요?”
윤서의 질문에 춘이 양팔을 쭉 뻗으며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서는 느릿느릿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 앞으로 가더니 수정과 윤서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어서 오세요, 손님. 불행을 파는 가게입니다.”
방금 전까지는 세상 귀찮은 사람처럼 느릿느릿 움직이더니 갑작스러운 친절모드에 수정과 윤서가 얼굴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춘은 여전히 생글생글 웃으며 수정과 윤서에게 한 손을 내밀며 의자를 가리켰다.
“주문하시려면 앉으세요.”
윤서가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서는 앞으로 나아가려 하자 수정이 윤서의 팔을 잡았다. 하지만 윤서는 자신의 팔을 꼭 잡은 수정의 손을 괜찮다는 듯 툭툭 두드리고서는 천천히 춘이 서있는 카운터 바로 향했다. 그런 윤서를 보며 수정도 어쩔 수 없다는 듯 함께 걸어갔다.
“메뉴판은 여기, 손님이 원하는 메뉴가 보일 거예요.”
“보고 여기서 고르셔도 되고, 특별히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하면 구해드려요.”
[ 오늘의 불행 (개별 판매) ]
- 수업 중 선생님이 내 번호만 부름 : 5,000원
- 교복 치마가 터짐 : 5,000원
- 친구가 나를 욕하고 다닌 걸 알게 됨 : 20,000원
- 모의고사에서 한칸 씩 미뤄쓰는 마킹 실수 : 5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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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메뉴판이 있네… 이게 다 진짜 진짜 진짜로 이뤄주는 불행인 거예요?”
춘이 내민 메뉴판을 보며 윤서가 헛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수정 역시 윤서의 옆에서 메뉴판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도대체 모의고사에서 마킹 실수 같은 걸 돈을 주고 누가 산단 말인가, 퇴치하는 부적이면 몰라도.
“그럼, 학생이 필요로 하는 불행도 다 이뤄주지.”
“제가 필요한 건 이 안에 없는데요?”
“아니, 있을 걸. 다시 봐.”
춘의 말에 윤서가 메뉴판을 다시 보자 맨 아래칸에 조금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글자가 나타났다. 그 글자를 보자 윤서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하지만 춘의 말을 듣고 같이 메뉴판을 다시 본 수정의 눈에는 메뉴판은 그대로였다. 윤서가 어떤 불행을 사고 싶어 하는 건지, 어떤 불행 메뉴를 보고 미소를 지은 건지 수정은 알 수 없었다.
“저 이걸로 살게요.”
“야, 너 진짜 사게? 뭐… 뭐 사게?!”
“이거.”
“그… 그게 뭔데? 거기 아무것도 안 쓰여있잖아!”
수정의 말에 윤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메뉴판을 다시 바라보았다. 윤서의 눈에는 보이는 7천 원짜리 불행이 수정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니. 윤서가 춘을 바라보자 춘이 윤서의 카드를 리더기에 꽂으며 말했다.
“한 사람에게만 필요한 특수한 불행은 그 사람한테만 보이지.”
“뭐야, 지윤서. 너 대체 뭘 산 거야…”
“별 거 아냐. 그냥 … 진짜 이뤄지나 궁금하잖아.”
결제를 끝낸 춘이 윤서의 카드를 돌려주고서는 카운터 안 쪽 냉장고에서 캔 두 개를 꺼내 두 사람에게 내밀었다. 수정은 경계하듯 뒤로 한 발짝 물러났고 윤서는 눈을 반짝이며 캔을 받아 들었다.
“이걸 마시면 이제 그 불행이 시작되는 건가요?”
“아니, 이건 그냥 콜라야. 학생들한테 주는 서비스.”
윤서가 캔을 받아보자 그제야 익숙한 콜라 로고가 보였다. 윤서는 캔 두 개를 다 받아 하나를 수정에게 내밀며 말했다.
“근데 저 제로 아니면 안 먹는데.”
“니 건 제로야. 모든 것이 다 제로.”
다시 한번 살펴보니 오른손에 든 건 제로, 수정에게 내밀고 있는 캔은 일반 콜라였다. 마음에 든 듯 윤서는 그 자리에서 캔을 따서 쭉 들이켰다. 놀란 수정이 말리려 했지만 이미 윤서의 목으로 콜라는 꿀떡꿀떡 넘어가고 있었고 수정은 원망스러운 듯 춘을 괜스레 노려보았다.
“그렇게 보지 마. 그건 진짜 콜라니까. 네 친구가 산 불행은 이 가게를 나가는 순간부터 시작될 거야.”
도대체 무슨 불행을 샀길래 친구인 나에게 말도 안 하는 걸까, 불행을 살만큼 윤서가 힘들다고 느끼고 있는 건 대체 뭐였을까, 수정은 불안한 눈으로 제로 콜라를 들이켜는 윤서를 바라보았다.
“윤서야아아아~ 비결이 뭐야아~? 빨리 알려줘.”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반 여학생들이 윤서의 자리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윤서는 친구들의 질문에 쑥스러운 듯 웃어 보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비결 같은 거 없다니까, 진짜 그냥… 그냥 이렇게 됐어.”
“너무해, 내가 너 틴트랑 쿠션이랑 다 빌려줬잖아! 뭐 했는데? 응?”
“너 주사 맞은 거 아냐?”
“야, 우리 집이 그럴 돈이 어딨 냐.”
“그럼 뭐야, 그 인스타그램에서 자주 보이는 효소? 차?”
“그런 것도 살 돈 없네요.”
“그럼 뭐야아 아. 뭐 했는데 대체 이렇게 쪽 빠진 거냐고!”
친구들의 야유와 부러움이 섞인 말을 들으며 윤서는 다시 한번 고개를 흔들며 웃어 보였다. 윤서의 얼굴은 예전에 통통했던 볼살은 다 사라진 채 갸름한 턱선만 보였다. 살이 빠지면 목살과 어깨살도 빠지는 건지, 단추가 두 개 열린 교복 셔츠 사이로 쇄골도 툭 튀어나와 있었다. 며칠 째 친구들은 쉬는 시간마다 윤서에게 화장품과 간식을 가져다 바치며 살이 빠진 비결을 알려달라 하고 있었고 그때마다 윤서는 비결은 없다며 그냥 빠졌다고 하고 웃어 보였다. 그리고 그 모습을 교실 뒤편에서 수정이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