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회사를 나갈 수 없는 불행

by 재완


“나 이렇게 맛있는 치킨 처음 먹어봐.”


입가에 예쁘게 튀김 부스러기를 묻히고서 여자가 말했다.


“튀김옷 얇고 바삭하게 하려고 엄청 연습했어. 너 돈으로 차린 이 식당, 절대 실패하지 않을 거야.”


그런 여자를 바라보며 남자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서로를 사랑스럽게 마주 보는 두 사람을 보며 이현은 왼 손으로 턱을 괴었다.


“PPL 씬인데도 딱히 튀진 않네.”


모니터 속 남자주인공과 여자주인공의 모습을 보던 이현은 영상 재생을 멈추고 화면 캡처를 했다. 그리고 캡처 한 장면에 어울릴만한 문구들을 메모장에 쓰며 며칠 전 휴가를 다녀온 직원이 돌렸던 베트남 망고를 입에 물었다. 의자에 엉덩이가 붙고, 바닥에 발이 붙은 지 두 시간 만에 이현은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앞 선 두 시간 동안 이현은 의자에 찰싹 달라붙은 엉덩이와 발에 힘을 주어 상체를 마구 흔들어 댔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허리 스트레칭을 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지만 이현으로서는 죽을힘을 다하고 있는 동작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몸을 비틀고 뒤집어보려 해도 엉덩이와 발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한참을 온몸을 비틀고 뒤틀던 이현은 결국 두 시간 만에 포기한 것이다.


도대체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이 갑자기 왜 일어난 걸까. 꿈이라도 꾸는 걸까. 커뮤니티 같은 곳에 구해달라는 글이라도 올릴까 생각해 봤지만 아무도 믿어줄 것 같지도 않았다. 본인 스스로도 상황이 믿기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집에 못 들어가면 엄마가 걱정해서 전화를 할 테고, 전화를 받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를 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내일 아침까지만 버티면 출근한 사람들이 119를 불러줄 테고. 적어도 오늘 퇴사는 못하겠지만. 여기까지 생각이 들자 이현은 한번 더 엉덩이를 흔들 힘이 사라졌고 축 늘어진 채 모니터 속 멈춘 드라마 화면을 바라보았다.


드라마는 1화에서 숨겨진 복선이 4화에서 풀리는 장면에 멈춰져 있었다. 저 장면을 쇼츠로 뽑고, 1화랑 엮어서 붙이면 사람들이 확실히 혹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현은 마우스를 움직여 1화 속 복선 장면을 다시 재생했다.


“뭐… 어차피 지금 할 수 있는 것도 없으니까.”


이현은 마우스를 딸깍 딸깍 움직이며, 1화와 4화의 장면을 잘라 쇼츠를 만들었다가, 캡처를 해서 이미지로 정리했다가, 카피를 바꿨다가 했다. 어차피 내일 발견되면 퇴사할 거니까, 지금은 할 게 없으니까 그냥 시간 때울 겸 하는 거지 하며 이현은 드라마 속 장면들을 재생시키며 마우스를 계속 움직였다.


“이현 씨, 이현 씨.”

“아, 엄마. 5분만 더 …”

“이현 씨, 회사에서 그만 자고 일어나!!”


심 차장의 목소리에 책상에 엎드려 자던 이현이 온몸을 부르르 떨며 일어났다. 멍한 표정으로 이현이 눈을 끔뻑 끔뻑거리자 왼쪽 얼굴에 붙은 A4 용지를 떼어주며 심 차장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어제 시킨 거 하느라 회사에서 밤샌 거야?”

“네? 아, 그게 아니라 제가 어제 엉덩이가 안 떼어져서…”


심 차장의 질문에 입가에 흐른 침을 닦으며 말하던 이현은 순간 자신이 일어서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제 분명 엉덩이가 의자에서 떼어지지 않았었는데! 심 차장의 질문에 대답하는 지금의 이현은 자리에 꼿꼿하게 서서 대답하고 있었다. 이현은 의자와 멀어진 엉덩이가 믿어지지 않는 듯 한참을 뒤돌아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오른발을 한 발짝 떼어보았다. 이현의 오른발은 마치 깃털처럼 가볍게 떨어져 한 발짝 뒤로 움직였고, 뒤이어 부드럽고 유연하게 왼 발도 뒤로 두 발짝 움직였다. 발도, 엉덩이도 자유롭게 움직였다.


“아, 아니 어제 분명 엉덩이랑 발이 바닥에 … “

“뭐 하는 거야? “

“네?”


이현의 모니터를 바라보던 심 차장이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한발 두발 뒤로 가는 이현의 모습에 미간을 찌푸렸다. 보이지 않게 살짝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심 차장은 다시 모니터로 고개를 돌려 마우스를 쭉쭉 내리며 이현이 어제 할 일이 없어서 이것저것 만들어본 것들을 쭉 확인했다. 그리고서는 심 차장은 어울리지 않게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이현을 돌아보았다.


“어제 만든 것보다 훨씬 낫네. 봐, 하려고 마음먹고 하니까 잘하네.”


이현의 심장이 쿵 하고 뛰었다. 이현은 회사 생활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잘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사수들은 늘 제대로 가르쳐 주지도 않고 알아서 하라고 일을 던져주거나, 한 두 번 말해 줘 놓고서는 못 알아들었다고 화를 내고는 했다. 이현은 늘 ‘다시’ 라거나 ‘별로’ 라거나 ‘왜 아직도’라는 말을 들었지 ‘잘했다’라는 말을 들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잘하네.’ 그 짧은 세 음절이 이현의 마음에 묵직하게 떨어졌다.


“가… 감사합니다.”

“이거 바로 클라이언트 보내도 되겠다. 보내고 나서 바로 다음 회차 바이럴도 진행해야 할 텐데 그것도 이현 씨가 맡아서 해줘. 다 할 수 있지?”

“네? ”

“이현 씨가 맡아서 다 하면 되겠네. 메일도 쓰고~”


심 차장은 이현의 어깨를 툭툭 치고서는 본인의 자리로 돌아갔다. 오늘 엉덩이랑 발 떨어지면 퇴사하려고 했는데, 이현은 돌아가는 심 차장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자신의 의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직 출근하지 않은 옆자리 정사원의 의자와 바꾸었다. 조심스럽게 양 팔로 의자의 손잡이를 잡고서 이현은 엉덩이를 의자를 향해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엉덩이가 의자에 닿자마자 바로 힘을 주어 팍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짜 어젯밤 꿈이라도 꾼 건지, 엉덩이도 떼어지고 발도 떼어졌다.


“뭐 나 아니면 안 된다고 하니 이번 주까지만 다니지 뭐.”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엉덩이를 의자에 내려놓은 이현은 심 차장이 확인한 자료들을 저장하며 중얼거렸다. 본인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는 것은 인식하지 못한 채.


“더럽고 치사해서 내가 오늘은 진짜 그만둔다.”


이현이 다시 퇴사 결심을 한 것은 정확히 삼일 만이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잘한다 잘한다 하던 심 차장이 이현을 회의실로 불러다 된통 화풀이를 한 날이었다. 오타를 낸 건 이현이지만 심 차장도 확인한 시안이었는데, 이현의 잘못으로 본인이 클라이언트에게 깨졌다며 소리를 마구 질러댔다. 너 때문에 서비스 시안을 더 만들어 클라이언트에게 갖다 바쳐야 한다며 소리 지르는 심 차장을 보며 이현은 또다시 퇴사 결심을 하고서는 퇴근 시간만을 기다렸다.


꿈이었지만 혹시라도 지난번 같은 일이 또 생기면 안 되니까 퇴근시간이 다가오자 이현은 핸드폰을 손에 꼭 쥐고서는 조심스럽게 의자에서 엉덩이를 뗐다.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의자와 엉덩이를 확인한 후 사람들이 일어나는 시간에 맞춰 이현도 일어났다. 오늘따라 모두 다 칼퇴를 하는 건지 사람들이 우르르 일어났고, 이현도 자연스럽게 무리에 섞여 복도로 나가 엘리베이터를 타려던 그때 심 차장 우산을 흔들며 말했다.


“이현 씨 우산 없어? 밖에 비 와.”

“어? 비 와요? 머리 비 맞으면 안 되는데.”


심 차장의 말에 이현이 다시 사무실로 들어갔다. 지난번에 사무실에 놓고 간 우산이 구석 어딘가에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이현은 책상 바닥을 훑어보다가 의자에 앉아 책상의 3단 서랍을 아래에서부터 열어보았다. 역시나 맨 아래칸 서랍에 접는 우산이 하나 들어있었다. 이현이 반갑게 그 우산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순간, 엉덩이와 발이 바닥에 딱 하고 붙고 말았다.


“아오, 씨*! 또 이러네!!!”


또 엉덩이는 의자에, 발은 바닥에 찰싹 붙고 말았다. 사무실엔 또 이현 혼자 밖에 없었지만 이번에는 핸드폰을 손에 꼭 쥐고 있었다. 이현이 바로 핸드폰을 들어 전화를 걸려는 순간 배터리가 팟 하고 나가며 화면이 꺼지고 말았다.


“장난해?! 진짜 또 이런다고?!”


엉덩이는 의자에 붙고 발도 바닥에 붙고 핸드폰은 꺼졌고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다. 지난번 일이 꿈이 아니었다니, 퇴사하기로 마음먹은 날 이런 상황이 또 벌어지다니, 이현은 양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으며 사무실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누군가 소리를 듣고 들어오지 않을까, 기대하며. 하지만 이현이 다시 노트북을 켜서 유튜브 영상 5개를 볼 때까지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고 결국 이현은 지난번에 먹고 남은 베트남 망고를 마저 먹으며 유튜브 영상 10편을 더 봐야 했다.


“이현 씨, 요새 일찍 나오네.”


자리에서 졸던 이현이 부르르 몸을 떨며 깬 건 심 차장이 어깨를 툭 친 순간이었다. 결국 또 회사의자에 앉아 밤을 새운 것이다. 눈을 뜨자마자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자신의 발을 한발 한발 움직이는 이현을 보며 심 차장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가 금세 풀고서는 커피를 내밀었다.


“이현 씨는 이런 애티튜드가 좋아. 잘못한 다음날에는 일찍 나와서 더 커버하려고 하는 모습이 요즘 사람 같지 않아. 아주 마음에 들어.”


태도가 좋다니, 이현이 회사 생활을 하면서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매번 싹수없고 대답도 잘 안 한다고 평가를 받았는데. 이현도 모르는 사이 양 볼이 불그스레 물들었다.


“오늘은 오타 안 내고 잘할 거라고 기대할게. 커피 마시고 마음 풀고.”


심 차장이 놓고 간 커피는 지하철 역 바로 앞에서 파는 1천 원짜리 커피였다. 이왕 사주는 거 5천 원 정도 하는 브랜드 커피로 사줄 것이지, 하고 구시렁 거리며 이현이 커피를 쭉 들이켰다. 1천 원짜리 치고는 나쁘지 않은 향과 맛을 느끼며 이현은 지난밤 저장해 놓은 파일들을 다시 열어 오타 검수를 시작했다.


그 이후로도 이현은 서른다섯 번 의자에 엉덩이가 붙었고, 열두 번이 넘어가면서부터는 엉덩이를 떼려는 힘도 주지 않았다. 이제 이현은 엉덩이가 붙을 때를 대비해서 책상 서랍 내에 늘 간식을 구비해 두고 다녔고, 의자 뒤에는 목쿠션과 담요도 걸쳐놓았다. 그리고 서른여섯 번째 엉덩이가 붙은 날은 이현이 회사를 다닌 지 2년이 넘은 날이었다. 이현이 가장 오랫동안 그만두지 않고 회사를 다닌 기간이었고 그날 이현은 대리로 정식 승진을 했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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