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엉덩이 술의 효과

by 재완

조회수가 나오지 않고, 영상을 올리지 않기 시작한 순간부터 다시 취직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이현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현의 성에 차는 회사들이 없었다. 첫 회사는 그래도 대기업이었는데, 두번째 회사는 스타트업에 젋은 회사라는 이미지라도 있었는데, 세번째 회사는 작기는 해도 업계에선 떠오르는 좀 쳐주는 곳이었는데. 이런 생각들이 계속 들다보니 스크롤을 아무리 내리고 검색해도 지원할 만한 회사가 없었다.

아니, 사실은 이현의 경력으로 지원할 수 있는 회사 중 그런 곳이 없었다. 신입사원으로 넣을 수 있는 나이도 아니고, 대리급으로 지원하기에는 이현의 경력이 모자랐다. 짧게 다닌 애매한 경력으로 넣을 수 있는 곳은 대부분 최저 시급이거나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곳들이었기에 이현은 아예 서류 지원 자체를 하지 않았다.


“서류 합격이라니?! 지원을 한 적이 없는데, 합격이라니?"


그런데 대뜸 서류합격 문자가 온 것이다. 게다가 [00 기획] 이라니 이현이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회사이름이었다. 이현은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방으로 들어가 노트북을 켰다. 최근 자주 쓰던 채용 사이트를 들어가 확인해 보니 지원 이력이 열다섯건이나 떴다. 시간은 모두 다 어젯 밤 12시였다.

‘술에 취해서 지원했나? 그래서 이렇게 아무데나 다 넣었구만. 술 좀 작작 먹어야겠네…’


서류 합격 문자를 준 회사의 메일을 확인해 보니 면접 일정은 당장 내일 이었다. 처음 들어보는 회사 이름에 이력서를 낸 지 하루 만에 서류 합격과 면접 일정 통보하는 회사. 이현은 싸한 기분을 느꼈다. 이렇게 급하게 채용하는 회사치고 제대로 된 회사가 있을 리 없으니 면접도 보러 가지 않는 게 맞았다.


[띠링]


그때 또 문자 소리가 울렸다. 혹시 다른 회사에서도 면접 보러 오라는 연락일까, 내가 지원을 안해서 그렇지 역시 괜찮은 놈이지 하고 이현은 은근히 기대하며 문자를 열었다.


[최이현 님, 카드 값 811,304원이 미납 중으로 확인됩니다. 연체가 지속될 경우 카드 사용이 정지됩니다.]


하지만 문자는 이현의 기대를 싹 얼려버리는 차가운 내용이었다. 엄마 집에 얹혀살며 숨만 쉬고 있는데 어디서 자꾸 카드 값이 생겨나는 건지, 결제일은 왜 이렇게 빨리 돌아오는 건지. 이현은 카드사의 독촉 문자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모니터 속 면접 안내 메일을 보다가 더 큰 한숨을 쉬었다. 이상할 게 뻔한 회사니까 딱 한 달만 다니고 월급 받고 급한 카드값만 해결하고 그만두자, 라고 이현은 생각했다.


“이현 씨, 오전에 말한 거 10개 됐어요?”

“네? 아, 거… 거의 다 됐습니다.”


회사는 이현의 예상대로 제대로 된 곳이 아니었다. 면접도 대충 보고 다음 주부터 출근하라고 하더니 바로 이현에게 업무들이 떨어졌다. 이름도 모른 채 지원한 이 회사는 온라인 바이럴을 하는 회사였다. 인스타그램에서 수백 개의 유머 페이지를 운영하고, 없어지면 새로 만들고, 인터넷 커뮤니티 아이디를 돌려가면서 이거 좋아요, 재밌어요, 맛있어요 댓글 다는 그런 일을 하는 회사. 인플루언서까지 꿈꿨던 이현이기에 댓글 달고 인스타그램 운영하는 것쯤이야 별 것 아닌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커뮤니티 용어 쓰면서 똑같은 말 여기저기 쓰고 다니고, 이미지 올리면 되는 거 아닌가,라고.

“일단 지금까지 한 거 보여주세요.”


성격 급한 심 차장이 이현의 데스크까지 와서 모니터를 쳐다봤다. 이현은 오전 내내 작업했던 이미지들을 펼쳐 보였다.


“이현 씨, 이게 포인트가 아니라니까?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건 초반에는 좀 지루하지만 4화부터 반전이 드러나면서 재밌어진다, 에요. 그러니까 초반에 지루함을 참아줄 만한 자극적인 포인트가 들어가야죠.”


어제부터 떨어진 일은 최근 시작한 드라마의 리뷰 바이럴 작업이었다. 1,2회가 방영된 이후 만듦새는 좋지만 지루하다는 평가를 듣는 드라마였는데 뒷부분부터는 재미있어진다는 후기 바이럴을 돌려달라는 업무였다.


“이미 재미없다고 소문난 드라마를 어떻게…”

“그걸 뒤집는 게 우리 일이에요.”


뒤집기는 무슨, 사기 치는 거지. 이현은 속으로 구시렁거렸다. 딱 한 달만 다니겠다고 생각하고 왔지만 한 달도 버티기가 힘든 회사였다. 어디 가서 말하기도 애매한 일에 더 애매한 월급, 사무실은 또 얼마나 낡고 구린지. 화장실도 사무실 바깥 복도에 있는 그런 건물이었다. 이현은 복도 바깥 화장실을 갈 때마다 카드값이고 뭐고 지금까지 다닌 것만 달라고 하고 그만둘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현 씨, 드라마 봤어요?”

“… 안… 봤습니다.”

“드라마도 안 보고 만드니까 이렇게 포인트를 못 잡죠. 일단 4부까지 다 보세요. 보고 만드세요. 그리고 내일 아침까지 10개 시안 다시 만들어서 제 메일로 보내놓으세요.”

“네? 저거 다 보기만 해도 6시 넘는데요 …?”


미간을 한껏 찌푸리며 이현이 싫은 티를 냈다. 하지만 심 차장은 그런 이현의 표정 따위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건 알아서 하시고. 이현 씨가 맡은 일이니까 시간 내에 해야죠. 그러려고 월급 받는 거 아니에요?”


아닌데요? 저는 9시부터 6시까지만 일하는 걸로 계약했는데요?라고 대답하고 싶은 것을 이현은 꾹 참았다. 싸우는 것도 급이 맞아야 하는 거지, 자기 할 말만하고 돌아서는 심 차장을 노려보며 이현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래, 어차피 한 달 다니고 그만두려고 했던 회사, 그냥 지금 그만둬야겠다. 근무시간에 말하면 또 이리저리 불려 갈 테니까 귀찮고 퇴근 후에 톡으로 보내고 차단해야지.’


퇴사 결심을 하자 가뜩이나 없던 일에 대한 의욕이 더 사라졌다. 이현은 노트북으로 뭔가 하는 척하는 것도 질려 심 차장이 말했던 드라마를 OTT로 틀었다. 드라마 보는 것도 일이라고 했으니까, 퇴근시간까지 대충 드라마나 보고 시간 때우다 가야지, 하는 마음이었다.


‘뭐야, 뒤로 갈수록 재밌긴 하네? 이렇게 반전하려고 앞에 다 복선 깔아 놓은 거였네.’


심 차장이 시킨 일을 하려는 것도 아니고 시간 때우기를 위해 본 드라마였는데 막상 보니 심 차장의 말대로 이현이 놓친 장면들이 보였다. 왜 1화에서 이런 장면이 나왔는지, 그 장면들이 4화에서 어떻게 복선으로 풀리고 반전으로 이어지는지, 이런 내용들을 알려준다면 사람들이 좀 더 흥미롭게 1,2화를 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뭐? 오늘 퇴사할 건데 알 게 뭐람.’


하지만 그 걸 알았다고 해서 이현의 마음이 달라진 건 아니었다. 6시가 넘자 사람들이 퇴근을 하기 시작했고, 이현은 심 차장 쪽을 슬쩍 바라보았다. 이현에게는 일을 잔뜩 던져놓고서 심 차장은 퇴근하려는 듯 가방을 정리하고 있었다.


‘불편하니까 일단 심 차장 나가고 가야지.’


심 차장은 일 시킬 때만 빠른 건지, 느릿느릿 가방을 싸더니 결국 모든 사람이 퇴근하고 나서야 사무실을 나갔다. 이현은 문 쪽은 보지고 귀만 쫑긋한 채 엘리베이터 소리를 들었다. 엘리베이터가 땡 하고 열리고, 문 닫히는 소리가 들린 후 하나, 둘, 셋, 넷, 다섯까지 세고서 이현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뭐야?”


아니, 일어서려 했다. 하지만 이현의 엉덩이는 의자에 붙은 듯 발은 바닥에 붙은 듯 도저히 자리에서 일어설 수 없었다.


“왜… 왜 이래, 이거?”


팔과 손과 목까지 상체는 자유롭게 움직이는데 엉덩이와 발은 바닥에 붙은 듯 도저히 움직이지 않았다. 이현은 양 팔로 책상을 붙잡고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기 위해 힘껏 힘을 주어 밀었다. 양 팔뚝에 핏줄이 터져나갈 듯 붉어질 때까지 힘을 줬지만 엉덩이는 접착제로 붙인 듯 절대 의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이번에는 발이라도 바닥에서 떼어보려 팔로 오른쪽 발목을 잡았다. 역시나 있는 힘껏 힘을 주고 오른쪽 발목을 당겨보았지만 발바닥 역시 강력 접착제라도 발린 듯 바닥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혹시나 하고 사무실을 둘러보았지만 이미 모두 퇴근한 이후였고, 사무실엔 이현의 거친 숨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119… 119를 불러야겠다.”


멍하니 텅 빈 사무실만 쳐다보던 이현이 정신을 차린 듯 핸드폰을 찾았다. 하지만 책상 주변에도, 이현의 주머니에도, 가방에도 핸드폰은 없었다. 억지로 허리를 숙여 데스크 서랍과 바닥까지 샅샅이 살펴보던 이현은 그제야 자신이 핸드폰을 복도 밖 화장실에 놓고 온 것이 생각났다.


“아이씨, 마지막으로 크게 똥이나 싸고 가려다가 …”


이현이 두 손으로 머리를 질끈 쥐었다. 변비 때문에 제대로 싸지도 못했는데 핸드폰도 놓고 오다니. 이현은 실수를 한 자신을 자책하며 마지막 남은 희망인 피씨톡을 켰다.


“이러지마 제발...”


하지만 마지막 남은 희망이었던 피씨톡마저 계속 에러 문구가 뜨며 로그인이 되지 않았다. 다섯 번 로그인 시도를 하고, 두 번 앱을 지웠다가 깐 후 이현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핸드폰도 없고 피씨톡도 되지 않고, 사무실엔 아무도 없다. 이현 혼자 오롯이 사무실 바닥에 엉덩이와 발이 붙어 갇힌 것이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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