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이 인스타그램 계정을 지운 건 정확히 네 달 만이었다. 처음에는 호기롭게 여기저기 다녔다. 일단 가까운 일본 오사카부터 다녀와서 두 개의 영상을 올렸지만 한국인이 워낙 많이 가는 곳이고 다 알려진 곳이라 그런지 반응이 별로 없었다. 그럼 한국인이 잘 안 가는 곳을 가야지, 싶어 몽골을 다녀왔다. 이번에는 정말 많이 안 가는 곳이라 그런지 검색량도 별로 없고 반응도 없었다.
해외여행 두 번을 다녀왔더니 모은 돈이 금세 바닥을 보였다. 돈도 아낄 겸 이번에는 국내 시장과 시골마을 여행으로 콘셉트를 잡았다. 지방 소도시들을 다니며 친근한 모습들을 찍으려 했는데 시골사람 착하다는 것도 다 옛날 말이었다. 남들 보면 사장님 요리하는 거 가까이서 찍고 사장님이 서비스도 막 주던데, 이현이 카메라를 들이밀면 화부터 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시장 길거리와 음식, 혼자 먹는 모습을 찍어서 올렸지만 친구들만 댓글로 살쪘다고 쓸 뿐, 조회수는 오르지 않았다.
야외로 자꾸 다니다 보니 얼굴은 타고, 하루에 여러 끼를 먹으러 다니니 살은 찌고, 팔로워는 늘지 않고, 수익이 없으니 시장으로 가는 횟수도 줄어들고, 그러니 영상 개수도 점차 줄어들었다. 일주일에 한 개가 이주일에 한 개가 되고, 한 달에 한 개가 되더니 결국 업로드도 멈췄다.
“진짜 한 푼도 없네…”
이현이 은행 어플 속 잔고를 보며 중얼거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몇 번 새로고침을 눌러보았지만 잔고는 30,840원 그대로였다. 인플루언서는 실패했고, 이제는 인정해야 했다. 다시 직업을 구해야 한다. 이현은 핸드폰으로 취업 사이트 어플을 켜서 채용 중 공고를 둘러보았다. 공고는 많은데 눈에 들어오는 건 없었다. 좀 괜찮아 보이는 회사는 지원자가 이미 너무 많고, 적당해 보인다 싶으면 연봉이 낮거나 회사 위치가 집에서 멀었다.
“에이씨, 소주 당기네.”
이현이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 엄마는 오늘 직장 동료들과 회식이 있다며 늦게 온다고 했다. 냉장고 문을 열어보니 반찬통들 사이 아침에 끓여 놓은 김치찌개 냄비가 보였다. 좋아, 소주 안주는 있고. 3만 원은 있으니 소주는 살 수 있다. 이현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핸드폰을 든 채 슬리퍼를 신고 집 앞 슈퍼를 향해 나섰다.
분명 기분이 최악인 상태에서 나왔는데, 막상 밖에 나오니 바람이 선선하니 기분이 좋았다. 찬 바람을 쐬니 열도 좀 식는 것 같아 이현은 평소 슈퍼까지 가던 골목길 대신 조금 돌아서 가기로 했다. 학교 다닐 때는 여기를 엄청나게 뛰어다녔지, 고등학교 친구들과 하굣길마다 들려 떡꼬치를 사 먹던 골목, 어른들 몰래 담배를 피웠던 골목들을 지나며 이현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땐 정말 공부 말고 아무 걱정이 없었는데.
“저게 뭐라고 쓰여 있는 거야?”
잠시 추억에 젖어 아련한 미소를 짓고 있던 이현의 눈에 낯선 간판이 들어왔다. 뭔가를 파는 가게,라고 쓰여 있는 것 같은데 간판 빛이 너무 세서 앞부분이 보이지 않았다. 가까이 가서 보면 보일까 싶어 이현은 간판이 보이는 골목 안 쪽으로 들어갔다.
여기가 원래 가게가 있던 골목이던가, 이현이 고개를 갸웃하며 가까이 다가갔지만 간판 글자는 여전히 잘 보이지 않았다. 글씨 자체도 좀 지워진 것 같은데 불빛마저 레이저빔처럼 쏘아져 나오고 있어서 전혀 읽을 수가 없었다. 문 옆에는 커다란 창이 있어 가게 내부를 볼 수 있었다. 손님은 아무도 없고 사장인 듯 보이는 여자 한 명이 카운터에 서서 나른한 표정으로 솜사탕을 먹고 있었다.
‘오, 내 스타일.’
이현이 여자를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여자는 대단한 미인은 아니었지만 독특한 분위기와 매력적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여자가 서있는 카운터 뒤편으로 보틀들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술을 파는 바인 것 같았다. 지금 통장에 3만 원이 있으니까 칵테일 한 잔 정도는 마실 수 있겠지, 이현은 유리창에 비친 얼굴을 보며 머리를 손으로 쓱쓱 빗었다. 그리고는 큼큼 목소리를 한번 다듬고서 가게 문을 열었다.
“어서 오세요.”
이현이 들어서자 여자가 흘깃 눈만 움직여 문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현은 잠시 고개를 돌려 가게 안을 둘러보는 척하다가 여자 바로 앞 카운터 자리에 앉았다. 가까이서 보니 여자는 더욱더 이현의 스타일이었다. 하얀 피부와 쌍꺼풀이 없지만 커다랗고 긴 눈, 굵게 웨이브 진 머리까지. 이현이 여자의 얼굴을 멍하니 보고 있자 여자가 메뉴판을 내밀었다.
“여기 메뉴판이에요. 손님에게 필요한 메뉴가 보일 거예요."
이현은 여자의 말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아무 말도 않은 채 메뉴판을 받아 들었다. 이현의 예상대로 메뉴판에는 위스키와 칵테일 메뉴들이 있었다. 그것들이 다 3만 원을 넘는다는 게 문제일 뿐.
“어, 음… 음… "
이현은 최대한 당황한 티를 내지 않은 채 메뉴판을 바라보았다. 친구들과 홍대에서 간 칵테일바는 이렇지 않았는데, 동네 장사하면서 이런 가격대라니 오래 못 가겠다 생각하며 한 장을 넘기자 메뉴판 구석 가장 싼 메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오늘 나에게 필요한 불행, 한 잔 _ 5천 원]
한참 숏폼에서 자주 보였던 광고가 생각나는 메뉴 이름이었다. 고급스러운 바에서 바텐더에게 ‘고독 한 잔’을 주문하는 광고였다. 그 광고를 보고 따라 만든 메뉴인가, 이현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가격도 이름도 딱 지금의 자신에게 맞는 메뉴였다. 오늘 이현은 불행했고, 그 불행을 잊게 해 줄 한잔이 필요한 시점이니까.
“이 걸로 한 잔 주세요.”
“네, 오늘의 불행으로. 저희 메뉴는 한번 주문하면 환불은 절대 안 됩니다. 그래도 주문하시겠어요?”
예쁜 여자가 혼자 일하다 보니 진상 손님이 많았던 건지, 5천 원짜리 술 주문 치고는 거창한 물음에 이현은 헛웃음을 지었다. 이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여자가 위스키잔에 담긴 술 한잔을 내왔다. 위스키는 잘 모르는 이현이었지만 은은한 오크향이 기분 좋게 풍기는 술이었다. 이현이 한 모금을 음미하며 마시자 여자가 말을 이었다.
“이 건 엉덩이 술이에요.”
“풉. 네?”
생각지도 못한 여자의 말에 이현은 순간 술을 뿜을 뻔했다. 말도 안 되는 여자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았지만 여자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무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엉덩이로 만들었다는 건 아니고, 이 걸 마시면 엉덩이를 진득하게 붙이고 있게 된다는 말이었어요. 이현 씨, 당신 같은 사람에게 딱 필요한 불행이죠.”
“어? 제 이름은 어떻게…”
“아까 들어오면서 말해주셨는데?”
“제가요?”
“네, 제 이름은 춘이라고 같이 말씀드렸잖아요.”
“그… 그랬나?”
"다음에 올 때는 그냥 춘, 이라고 불러주세요. 다음에도 우리 가게를 찾는다면."
술 한 모금에 벌써 취한 건지 춘의 말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이현은 춘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술을 홀짝이면서 이현은 흘깃흘깃 춘을 쳐다보았다. 엉덩이를 진득하게 붙이고 있게 된다니, 가게를 나가지 말고 계속 자신과 있어달라는 말이었을까? 다음에 올 때는 춘이라고 불러달라니, 이건 정말 명확하게 다시 자신을 보러 오라는 말이 아닌가. 이런 식으로 손님을 꼬시는 걸까? 하지만 춘은 그 말을 한 후 더 이상 이현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이현은 그녀에게 말을 더 걸 용기와 돈이 없었다. 한 참을 춘을 몰래 쳐다보기만 한 이현은 결국 한 잔을 다 마신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엉덩이를 붙이고 앉으라고 하지 않을까, 했지만 춘은 이현의 카드를 돌려주며 다른 말을 했다.
“이게 당신에게 꼭 필요한 불행이 맞았기를.”
“국 끓여 놨어, 챙겨 먹어! 엄마 나간다!”
출근하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며 이현은 침대에서 게슴츠레 눈을 떴다. 어젯밤 이상한 가게에 가서 술 한잔을 마시고 집에 와서 어떻게 됐더라? 소주를 사 왔었나? 마셨었나?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오자마자 노트북을 켜고 뭔가를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술 한 잔 밖에 안 마신 것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방에서 나와 주방으로 가자 엄마가 끓여놓고 간 콩나물국이 보였다. 이현은 혼자 식탁에 앉아 국과 밥을 먹고 빈 그릇은 싱크대에 던져놓았다. 그리고는 거실로 가서 TV로 넷플릭스를 켜고 드라마를 하나 틀어 놓은 채 소파에 누웠다. 핸드폰으로는 인스타그램을 켜고 밤 사이 누가 뭘 올렸나, 어떤 웃긴 것들이 올라왔나 쳐다보았다. 최근 몇 달간 점심즈음까지 늘 이어지는 이현의 루틴이었다. 오늘도 그렇게 소파에 누워 점심시간까지 지났고, 다시 배가 슬슬 고파진 이현이 몸을 일으키려고 할 때였다.
[띠링]
핸드폰 문자 소리였다. 소파에서 일어나려던 이현이 다시 누우며 핸드폰을 켰다. 문자가 올 일은 거의 없는데, 문자 내용을 확인하던 이현은 순간 깜짝 놀라며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최이현 님, 서류 전형에 합격하셨습니다.
면접일정을 메일로 보내드렸으니 확인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