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아, 이현 씨 대체 몇 번 말해요. 클라이언트 공유하기 전에 저한테 먼저 보여달라고 했잖아요.”
강대리의 말에 이현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고작해야 인스타그램에 올라가는 영상의 썸네일과 멘션이었다. 그 정도는 이현 혼자서도 충분히 클라이언트와 이야기하고 업로드할 수 있는데 별 것도 아닌 일로 강대리는 사사건건 시비였다.
“이 정도는 제가 알아서 해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현과 강대리는 나이 차이도 1살밖에 나지 않았다. 이 정도는 지난번 회사에서도 했던 일이고 충분히 혼자 처리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본인은 대리고 이현은 사원이라는 건지, 직급으로 누르기 하는 것 같은 강대리의 태도에 이현은 이를 꽉 깨물고서 대답했다. 하지만 이현의 대답에 강대리는 더욱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맞아요, 원래 이 정도는 알아서 해도 되죠. 그렇지만 이건 콜라보 게시물이었잖아요. 매거진 쪽 릴리즈 일정 먼저 확인하고 클라이언트 공유 해야 한다고 제가 회의 때도 말하지 않았나요?”
회의를 한 건 기억이 나는데 강대리가 그런 말을 이현에게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그렇게 중요한 거면 한번 더 말씀해 주시지…”
“네?”
이현이 이 회사로 이직한 지는 3개월도 되지 않았다. 그러니 아직은 인수인계를 받고 친절하게 업무를 알려줘야 하는 시기 아닌가, 하고 이현은 생각했다. 하지만 이현의 구시렁거림이 입 밖으로 나가자마자 강대리가 미간을 팍 찌푸렸기에 이현은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다행히 매거진에서 우리 일정 맞춰주겠다고 했으니까 넘어간 거예요. 아니었으면 다시 양 쪽 다 연락해서 조율했어야 한다고요. 사소해 보여도 이런 게 쌓이면 클라이언트 신뢰도 잃게 되는 겁니다.”
‘뭐야, 그럼 그냥 별 일 없이 넘어간 거네. 근데 왜 이렇게 잡도리야.’
강대리의 말에 이번에는 이현의 미간이 팍 찌푸려졌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이현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몇 마디 더 혼내는 말을 듣고 나서야 이현은 자리로 돌아왔고 앉자마자 노트북에 연결된 헤드폰을 꼈다. 그리고서는 노트북 화면에는 메일창을 띄워놓고 엑셀 모양을 한 톡창을 열어 친구들 단톡방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 진짜 회사 못 다니겠다.]
[또 왜?]
[너 거기 들어간 지 세 달도 안되지 않았냐?]
[이 새끼는 뭐만 하면 못 다니겠대]
[야, 직장 내 괴롭힘, 직장 내 상사 폭언 이런 걸로 신고 어떻게 하냐?]
[지난번에 말한 강대리?]
[그래, 진짜 별 것도 아니고 광고주도 그냥 넘어간 걸 괜히 나한테만 지랄이야. 뭐 나한테 하루에 한 번씩 지랄 안 하면 입 안에 가시라도 돋나.]
[그런 애들 있지. 남한테 화풀이하면서 자기 자존감 챙기는 애들.]
[그래! 강대리가 딱 그런 스타일이라니까. 저런 놈 밑에서 일해봤자 배울 것도 없는 것 같은데 …]
역시 강대리가 이상한 게 맞았다. 친구들에게 털어놓으니 한결 마음이 풀린 이현은 메일 함을 몇 번 뒤적이다 인스타그램으로 들어갔다. 인스타그램 계정을 관리하고 게시물을 업로드하는 게 일이다 보니 릴스나 이것저것 보고 있어도 일한다고 말하면 그만이다. 물론 강대리는 눈살을 찌푸리며 뭐라고 하겠지만 아까 한마디 했으니 사람이면 오늘은 더 안 건들겠지, 이현은 회사 계정을 켜 놓은 척 본인의 계정으로 친구들의 스토리를 클릭했다. 주말 내에 다녀온 전시, 여행 스토리가 한가득이었다.
“어? 뭐야, 얘 퇴사했어?”
그중 이현의 시선이 한 곳에 멈추었다. 대학 동기인 남수의 스토리였다. ‘퇴사기념 유럽여행’이라고 스토리를 올린 남수는 베네치아에 있었다. 이현이 바로 남수에게 DM을 보냈다.
[뭐야, 님 퇴사하심?]
베네치아 시차에 아직 적응을 못한 건지 남수의 답장이 바로 왔다.
[oo. 지난주에]
[왜?]
[너도 알잖냐. 나 좇소 다녔던 거. 거기 계속 다니다가는 내 경력도 엉망 될 거 같고 뭐 배울 것도 없고. 그래서 그만뒀지.]
[야, ㅅㅂ 멋있다. 나도 지금 똑같은데. 회사는 뭐 더 커질 것 같지도 않고, 사수는 쓸데없는 걸로 갈구기나 하고.]
[너도 그만둬. 배울 것도 없는 데서 뭐 하러 스트레스받고 일하냐. 그런 회사 아니어도 즐겁게 일할 수 있는 데 많아. 아님 너 나랑 유튜브 하자.]
[미친놈. 유튜브는 아무나 하냐]
[회사 그만두고 쉬니까 머리가 핑핑 돌아간다 야. 아이디어가 막 미친 듯이 샘솟아]
“이현 씨.”
남수와 쉴 새 없이 DM을 주고받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실실 웃음이 나왔다. 이현은 아까 혼난 것도 모두 잊은 채 헤드폰을 끼고 웃으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업무 알람이 울렸지만 보지 못한 채 한참 키보드를 두드리던 이현의 헤드폰을 누군가 뺐다.
“아이씨, 뭐야…! 팀장님 …”
갑자기 헤드폰을 뺏긴 이현이 고개를 팍 돌리며 소리를 질렀다. 이현의 눈앞에 있는 사람은 허팀장이었고, 허팀장은 헤드폰을 든 채 모니터와 이현을 번갈아 바라보며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이현 씨, 지금 제가 몇 번 불렀는지 알아요?”
“아, 헤드폰 때문에 소리가 잘 안 들려서…”
“업무에 필요한 영상 볼 때 외에는 헤드폰 쓰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요?”
“시.. 시안 보고 있었습니다.”
“친구랑 DM 하면서요?”
허팀장의 말에 이현은 다급하게 인스타그램 창을 껐다. 허팀장은 그런 이현을 보고 강대리를 한번 흘깃 보더니 한숨을 쉬고서는 말했다.
“강대리랑 같이 다음 주 소셜 스케줄표 들고 회의실로 오세요. 싹 다 갈아엎어야 할 거 같으니까.”
“네…”
허팀장의 말에 강대리가 이현을 노려보았다. 오늘은 더 안 부딪힐 줄 알았는데, 쏘아보는 강대리의 눈빛에 이현이 움찔했다. 스케줄은 강대리가 메인인데, 왜 본인도 불려 가서 혼나야 하는 건지. 제대로 가르쳐주지도 않고 능력도 발휘할 수 없는 작은 회사. 역시 이딴 회사 그만둬야겠다. 노트북을 들고 회의실로 가며 이현은 한번 더 친구들의 방에 퇴사하겠다며 올렸다.
“나 회사 그만뒀어.”
“뭐…?”
토요일 낮 느지막이 일어나 식탁 위에 엄마가 차려 놓은 밥을 먹으며 이현이 말했다. 전 날 잔뜩 술을 먹고 들어온 아들을 위해 아침부터 끓인 북엇국을 데우던 이현 엄마의 움직임이 멈췄다. 자칫하면 떨어트릴 뻔 한 국그릇을 싱크대 옆에 두고 엄마가 한 손으로 머리를 짚으며 깊게 한숨을 쉬었다.
“이번엔 또 왜?”
“엄마가 걱정할까 봐 말 안 했는데, 직장상사 막말이 너무 심했어. 제대로 가르쳐주는 것도 없으면서 맨날 폭언이나 하고. 지 잘못 나한테 떠넘기기나 하고. 그리고 역시 대행사는 안 맞는 거 같아. 여기서 승진해 봤자 광고주한테 굽신거리는 건 똑같잖아. 오래 다녀봐야 내 커리어에 도움이 안 되겠더라고. 엄마, 나 국 얼른 줘.”
흰 밥에 밑반찬들을 먹던 이현이 젓가락을 흔들며 말했다. 이현의 엄마는 그런 아들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 국을 담아 식탁 위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하지만 이현은 전혀 개의치 않은 채 국그릇을 들고서는 쭉 들이켰다.
“그래서? 또 쉬게? 너 어떻게 한 회사를 1년을 못 다녀!”
“아침부터 왜 잔소리야? 다 그만둘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그만둔 거잖아!”
“졸업하자마자 대기업 들어갔다고 좋아했더니 분위기가 딱딱하고 위에서 하라는 대로만 해야 해서 싫다고 그만뒀잖아 너. 근데 그러고 또 뭐 했어? 자유로운 분위기에 성장 가능성 높은 스타트업?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그런 데 들어가서 꿈을 찾느니 뭐 어쩌느니 하더니만 거기는 뭐 체계가 없고 복지가 없다면서 또 그만뒀잖아! 그러고 나서 이번엔 좀 정신 차리고 회사 다니나 했더니 안 좋은 소리 좀 들었다고 또 그만두고! 엄마는 보험 팔면서 심한 말을 얼마나 많이 듣는 줄 알아? 그래도 그런 거 다 참으면서 하는 거야! 남의 돈 벌기가 그렇게 쉬운 줄 알았어?”
“그래서 이번엔 남의 돈 안 받을라고. 내 거 하려고.”
“뭐? 너 사업하게? 엄마 돈 없다. ”
“아니, 인플루언서. 퇴사하고 여행 다니는 남자 콘셉트로 인스타그램이랑 틱톡에 쇼츠 올리면 요새 조회수가 엄청 잘 나오더라고.”
북어가 좀 질긴 지 입 안에서 질겅질겅 씹으며 말하는 이현을 보고 엄마는 허, 하고 소리를 내고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현은 원래 엄마는 이해 못 할 거라고 생각했다. 요즘 감성이나 트렌드를 모를 테니까. 하지만 이탈리아에 간 남수가 올린 쇼츠가 풍경만 예쁘지 별 것도 아닌 내용으로 30만 조회수가 넘은 걸 보고 결심했다. 얼굴은 내가 남수보다 좀 더 괜찮으니까 풍경이 예쁜 곳에서 잘만 찍는다면 그 정도 조회수와 팔로워는 금방 나올 게 분명했다. 게다가 이현은 바로 전 직장에서 인스타그램 계정 관리도 한 마케터 아닌가. 남수보다 부족한 게 전혀 없었다.
“걱정 마, 엄마. 내가 또 한다면 금방 하잖아. 하루에 한 개 씩만 올리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