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톨루즈 로트렉전 - 물랭 루즈의 작은 거인
다이아몬드 수저를 물고 태어났지만 느닷없이 닥친 신체의 장애는 그를 몽마르트르 거리로 내쳐버렸고, 결국에는 총명한 정신을 마모시켜 정신병원으로 보내 버렸다. 그가 태어나면서 속한 세상과 실제로 살아간 세상은 유리벽으로 막아 놓은 것처럼 마주할 수는 있었으나 섞일 수는 없었고, 그는 이 두 세계 어디에도 진정으로 속하지 못하고 부유하며 살아갔다.
톨루즈-로트렉전을 보고 화가의 삶이 궁금해서 읽게 된 책이 ‘로트렉, 몽마르트르의 빨간 풍차’였다. 전시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면서, 그 후에 드로잉과 석판화, 포스터를 한 점씩 감상하면서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생각은 자본주의 시대의 소시민인 나로서는 짐작도 할 수 없는 그의 불운함과 절망, 좌절, 고통, 그 감정들 위로 켜켜이 쌓아 올린 그의 삶이었다. 분명 화가로서의 재능을 인정받으면서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순간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화가로서의 삶은 가족에게서 내쳐진 그가 할 수 있는 것이 그것뿐이어서 붙잡고 있었다는 것이 아니었나 싶었고, 화가라는 얇은 정체성의 껍질 안에 응축된 명문 귀족의 후계자로 살아온 십몇 년의 삶이 그의 본질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로트렉의 가문은 1자 십자군 전쟁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프랑스 명문 백작가였다. 모두의 기대 속에서 태어난 장남이었고, ‘작은 보석’이라 불리며 모두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그러나 세대를 거듭한 근친혼은 그에게 연약한 신체를 물려주었고, 느닷없고 어처구니없는 두 번의 사고 (14살 때 앉아 있던 의자에서 지팡이에 의지해 일어나려다 털썩 주저앉았는데 왼쪽 대퇴골이 부서졌다. 15개월 후, 산책 중 마른 물 웅덩이로 미끄러져 오른쪽 다리가 부러졌다)로 하체는 자라지 않고 상체만 성장해서 점차로 머리 큰 난쟁이의 모습이 되어갔다.
사고 후 로트렉이 살던 세상은 바뀌었다. 어머니는 그의 옆에서 헌신했으나, 아버지는 아예 아들이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명망가의 후계자로서 어울리지 않는다는 판정을 받자마자, 로트렉은 가족들의 ‘작은 보석’에서 가족들에게조차 ‘이방인’이 되었고, 심지어는 큰 아들이 물려받는 작위 상속권마저 누이동생이 물려받게 되었다. 이제 그는 그림을 선택했다.
로트렉이 화가로서 명성을 얻어가면서, 그의 집안에서는 가문의 이름에 불명예가 될까 노심초사했다. 처음엔 로트렉이라는 이름 조차 쓰지 않았던 로트렉은 어느 순간부터 로트렉이라는 실명을 사용했고, 포스터 화가로, 석판화로 명성을 얻으면서 갈등의 골을 깊어갔다. 로트렉의 아버지는 심지어 아들의 그림을 불태우기까지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겠다 싶은 점은 로트렉이 살았던 시기는 낭만주의와 사실주의를 이어 인상파 화가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회화의 흐름을 그들을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던 세기말이었지만, 귀족들이 선호하는 그림은 여전히 고전주의 화풍인지라 아버지의 눈에 아들의 그림은 이도 저도 아니었을 것이다.
활기와 위트로 자신의 마음을 숨기고 살았던 로트렉은 점점 폭음하는 횟수가 잦아져 알코올 중독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고, 사창가를 전전하며 얻은 성병도 그를 괴롭혔다. 술로 가라앉혔던 울분은 중독 중상을 뚫고서 종종 드러나 괴팍한 모습을 보였고, 점점 완성작의 숫자도 줄어들었다. 술을 마시고 정신을 잃는 횟수가 늘어나고, 정신을 잃는 시간이 길어지자 친구들은 어머니를 설득해 로트렉을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 영리한 로트렉은 정신병원에서 나오기 위해서, 본인이 정상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술을 끊고 다시 그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퇴원 후 얼마 안 가 다시 술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37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어쩌면 유쾌했던 천성덕에 불행하다고 느낄 만한 삶의 사이사이에서 행복을 찾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가정이라는 울타리의 제약 없이 제 멋대로 살아가는 삶을 마음껏 만끽하면 살았을지도 모른다. 어떤 삶도 100퍼센트 불행하거나 행복한 삶은 없으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그의 불행에 더 마음이 가는 것은, 아마도, 모든 사람이 살면서 겪을 수밖에 없는 크고 작은 좌절을, 그래서 그것을 그대로 안고 살아가는 삶의 형태를, 너무도 극명하게 표출한 것이 그의 삶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