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월드_미야자키 하야오의 어둠과 빛

by 재스민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인지라 내 DNA를 타고 흐르는 반일 감정에 대해서는 어쩔 수가 없다. 이것은 마치 본능 같아서 머지 않은 과거에 우리를 식민 지배했던 일본이라는 나라 자체가 싫을뿐더러, 이들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기는커녕 역사 왜곡에 더불어 과거사에 대해 망발을 더할 때마다 일본 열도를 폭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까지도 한다. (물론 이런 혐오의 감정은 같은 한국인 이라도 세대나 성별, 환경에 따라 사람마다 깊이나 폭이 다를 수 있고, 순전히 내 경우엔 ‘할 수 만 있다면, 열도 폭발이라도 시키고 싶다’는 감정을 느꼈다는 말이다) 더구나 유대인 학살에 대해 지속적으로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는 독일 정부의 태도와 비교했을 때 일본 정부가 보인 행태는 꼭 한국뿐 아니라 당시 같은 고통을 겪었던 중국이나 동남아 국가도 같이 분노하는 부분이기에 내가 느끼는 혐일의 감정에 대해 그다지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무의식 적으로 “우린 피해자니까!!!!”라는 생각으로 스스로의 증오를 정당화하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오랜 전에 읽었던 기사 하나가 생각났다. 1998년으로 기억되는데, 그 해 번역본 뉴스위크에서 읽었던 기사였다. 나카사키와 히로시마 원자 폭탄 투하 후에 일본 국민이 어떻게 고통 받으며 살았는지와 이 고통이 어떻게 대를 넘어서 후대에까지 이어졌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나는 그 때 처음으로 일본 정부가 아닌, 나와 같은 평범한 일본 국민들을 생각했었다. 아무런 의사 결정권 없이, 위정가들이 결정한대로, 바람에 쏠리면 쏠리는 대로 살 수 밖에 없는 평범한 민초들 말이다.


미야자키 감독의 삶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는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41년에 태어났는데, 그가 태어난 시점을 기준으로 전후 50~60년 가량은 일본 역사의 격동기라 칭할 수 있는 시절이었다. 1867년 메이지 유신으로 일본의 봉건 막부 시대는 막을 내렸고, 그 때부터 시작한 개혁과 개방은 서구(특히 독일)를 모델로 하는 급작스러운 것이었다. 따라서 일본도 개화기의 조선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극심한 변환기를 겪을 수 밖에 없었고, 군국주의 국가를 지향하는 일본의 위정가들에 국민이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 당연시 되는 사회 가치가 형성되고 있었다. 1945년 패전국이 된 후에는 미 점령군에 의해 민주주의와 민주주의적 행동을 중요시하는 교육제도를 갖추게 되면서 일본의 근대사는 끔찍하고 무자비한 사건의 연속이라는 관점으로 배우게 되었다. 일본을 좌로 힘차게 밀어 부쳤던 연합군은 냉전과 한국전쟁이 시작되자 개혁보다는 안정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과거의 전쟁 범죄자였던 정치인들을 다시 불러들여 요직에 앉혀버렸고, 보다 나은 세상을 기대했던 일본인들은 다시 한 번 좌절하게 된다. 1960년대는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노사관계가 극렬하게 대립하고 있었고, 사회적 문화적 변화에 혼란스러웠으며, 학생과 노동자들은 정부와 기업에 실망해 소요를 일으키기도 했다. 1960년대부터 미국의 지원을 받아 성장한 경제는 1985년 플라자 합의를 해야 할 만큼 위협적으로 성장했고 (당시 세계 50대 기업 중 33개가 일본 기업이었다고 한다) 일본은 1987년 루브르 합의를 거쳐 1991년에 버블이 터질지 시작할 때까지 풍요로움에 흥청망청하게 된다.


미야자키 감독 역시 2차 세계대전 중에 태어나 전시를 경험했고, 패전 국가가 겪는 혼란, 급속한산업화 사회로 변환되면서 겪는 혼란, 풍요로운 흥청망청의 시대에서 버블이후 잃어버린 20년을 살아 오면서 자신의 가치관을 형성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초보 애미메이터 시절부터 70대 거장이 된 나중의 시절까지 그의 모든 작품에는 그의 가치관-전쟁에 대한 혐오, 환경 파괴에 대한 경고, 흥청거리는 물질문명에 대한 비판, 그 와중에도 잡고 싶은 인간에 (혹은 미래에) 대한 작은 희망 등등-이 초지일관 꿋꿋이 보인다는 점이다. 일을 하면서 (그것도 뛰어난 성과를 보이면서), 사업을 운영하고, 가족을 먹여 살리는 세월을 오래 보내다 보면, 내 생각을 고수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그리고 상황에 따라 내 생각이 얼마나 쉽게 변할 수 있는지를 잘 알기에 한 사람의 거장이 보여준 꿋꿋한 삶의 태도가 내게는 많은 감명을 주었다. 나는 과연 그럴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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