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그리고 나의 글쓰기

화해하며 살고 싶다, 세상의 뾰족함들과.

by kasory

어렸을 때는 강렬한 욕망에 끌려 무언가를 하기 보다는, 타인에 의해 이유도 모른 채 해야 했던 일 투성이었다. 엄마가 내게 시켰던 대부분의 것들이 그랬다.



우리 집은 찢어지게 가난한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부족함 없이 살았다고 하기에도 뭐한, 대신에 엄마의 악착같은 절약정신과 저축으로 겨우겨우 세를 불려나가던 지극히도 평범한 살림이었다. 사람 좋은 아빠는 우선 지갑부터 열고 보자 주의였고 가벼워진 주머니로 돌아오는 날엔 늘 코스처럼 엄마와 다퉜다. "당신은 남이랑 살아야지. 나 빼고 남이면 누구랑도 허허 웃으며 잘 살거야." 아빠의 현실감각 부족한 소비를 채근하며 악역을 도맡아야 했던 엄마는 자신만 나쁜 사람이 되는 아빠의 세계에서 참 많이도 힘겨워 했다.



그런 엄마가 유일하게 욕심내는 소비 영역이 있었으니, 바로 두 딸들의 '학습'과 관련된 것. 좋다는 것들은 우선 사고 봤다. 달마다 나오는 영어잡지, 세계문학전집, 창작동화세트, 각종 학습지 등등. 처음엔 한 귀퉁이를 차지했던 책장이 나와 동생의 성장과 함께 몸집을 키우더니 어느새 벽 한 면을 가득 채우고 말았다. 저렇게 사면 또 나한테 열심히 읽고 보라는 압박이 들어올 텐데, 엄마의 의사결정과정에서 늘 소외된 채로 무력하게 결과만 받아들여야 했던 어린 날의 나는 엄마와 함께 하는 모든 것들이 스트레스였다.



엄마의 'to do' 리스트에서 자유롭고 싶었다. 휴일에도 새벽같이 일어나 당장 외출해도 손색 없을 만큼 용모를 단정히 하고는 평일의 어느 하루처럼 계획한 일을 흐트러짐 없이 진행하는 엄마의 부지런함과 계획성을 따라가기가 너무 버거웠던, 사실 따라하고 싶지도 않았던 뱁새 큰 딸은 하루에 한 달치씩 서둘러 나이를 먹고 이 집을 벗어나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었다.



그런 못돼먹은 소원을 마음에 품고 사는 딸에게 매일매일 따뜻한 밥상을 차려주고 새로 빤 옷에 쭈글쭈글 주름 가면 없어 보인다며 주말마다 교복을 다려주고 하루 안 한다고 티도 안나는 집안 청소를 아침저녁으로 하고 세탁기로 빠는 옷은 금방 상한다며 쭈그리고 앉아 빨래판에 세탁 비누 놓고 일일이 손빨래를 하던 엄마는 딸의 존재가 가벼웠을까.




그 무거움들을 엄마는 글로 풀었던 것 같다. 세 식구 나간 집을 하루종일 혼자 지키며 매일매일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을 살아내고, 그렇기에 가장 고단하고 외로웠을 마음들을 털어놓을 길 없었던 엄마에게 자기 전 식탁에 앉아 일기 쓰는 시간은 엄마가 자신을 지켜내는 유일한 끈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글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늘 무언가를 읽고 썼다. 그리고 그 욕심은 어김없이 나에게도 투영되어 'to do' 리스트로 이어졌다. 방학이 되면 나는 매일매일 책 한 권씩을 읽고 공책 한쪽 분량의 독서록을 써야 했다. 엄마의 통과 기준은 매우 엄격했는데 줄거리가 반 이상이면 '다시', 시작부터 줄거리가 나오면 '다시' 등 다시, 다시의 연속이었다. 놀고 싶은 마음 가득한 채로 대충 적어낸 독후감은 역시나 '다시'였고 독후감 대회는 상을 타든 말든 내면 그만이었지만, 엄마의 검사는 적당히가 통하지 않았기에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과제였다.



그 난관을 통과했기 때문일까, 말보다 글이 더 익숙하고 편한 사람이 된 건. 공부는 엉덩이 싸움이라는 우스갯소리처럼, 이유도 모른 채 강요에 의해 엉덩이 붙이고 앉아 꾸역꾸역 써내려갔던 그 무수한 시간들이 결국 습관이 되어 지금의 나를 만들어냈고 이렇게 누군가가 보게 될 글을 용기내어 쓰고 있다. 결국 삶은 생각으로 규정되기 보다는 행동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닐까.



어릴 적 가장 큰 소원이었던 엄마탈출에 성공해 오랜 기간 혼자 살고 있는 큰 딸은 이제서야 글을 통해 엄마를 이해하고 모난 마음들 다독이며 엄마에게 손을 내밀어 본다. 언제부턴가 글은 내게 화해의 수단이 되었다. 나를 아프게 했던 것들을 둥글게 다듬고 살펴주며 고요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해주는.



화해하며 살고 싶다 세상의 뾰족함들과. 오늘 나는 엄마와 다시 한 번 화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