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좋아할 때의 나는 한없이 작고 초라해진다. 그의 마음에 드는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이 가득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욕심은 이미 가지기 시작한 순간부터 내 뜻대로 채워지지 않을 거라는 전제가 뒤 따라오는 가슴아픈 단어이기도 하다. 이 슬픈 단어를 품에 안고 좋아함을 지속하면 할수록 내가 이토록 구석구석 부족한 사람이었던가를 뼈저리게 느끼며 아프고 또 아프다. 그럼에도 좋아함을 멈출 수 없다면 나를 버리고 무리를 해서라도 네 앞에서만큼은 좋은 사람이고 싶어진다. 그리고 내가 가진 최고의 것들을 최선을 다해 내어주는 사람이 된다.
모든 사랑의 색깔이 그렇진 않겠지만, 지금까지 내 사랑의 방식은 이러했다. 짝사랑일 때 그 색채가 더 진했던 것 같으나 최선을 다해 내 것을 내어주고 싶다는 마음은 내 사랑에 늘 포함돼 있었다. 그러다 문득 며칠 전 엄마와의 통화가 생각났다. 엄마는 이런저런 안부를 묻더니 '엄마 소원인데 들어줄 수 있겠냐'며 운을 띄웠다. 무슨 얘기일까 싶었는데 결국 내 나이대 자식을 둔 부모님의 과업, 결혼을 위해 암수 한 쌍 정다운 자리를 가졌으면 한다는 거였다. 엄마의 친구의 친구의 누구가 아는 사람인데 나보다 한 살 많고 어디 살고 직업은 뭔데 한 번 만나보라며 말끝을 흐리는 제안.
엄마와 나는 이런 이야기에 익숙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모녀끼리는 쫑알쫑알 시시콜콜 속내를 공유한다는 다정하고 사랑스런 미담은 우리 사이에 통하지 않았다. 학창시절 내내 엄마는 자신의 기준에 늘 못 미치는 딸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관리하는 냉정한 부모의 위치에 있었고, 나는 그것이 늘 숨 막히게 싫으면서도 반항할 생각도 못하고 꾸역꾸역 따라가는 수동적인 딸이었다. 이런 위계에서 엄마에게 내 속을 드러낸다는 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었다.
우리 집은 풍족하진 않았지만 자식들만은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 뒷바라지하는 것이 최고의 임무였던 엄마 덕분에 우리 자매는 최고는 아니어도 늘 최선의 것들을 정성스레 제공받으며 살았다. 그렇게 수십년을 최선을 다해 살아온 엄마는 딸들도 늘 최선이자 최고의 선택을 하며 살길 바랐다. 그러나 무엇을 선택한들 그건 엄마의 기준에 늘 미달되는 일이었고 그런 결과물을 가져가느니 차라리 숨기거나 입닫고 있는 것이 언젠가부터 내게 최선의 선택지가 되어버렸다. 그러니 우리 사이에는 비밀이 많았고 엄마는 다정하지 못하고 묻는 것에나 단답으로 말하는 큰딸이 늘 서운하고 아팠다.
그런 엄마가 유독 높게 세운 기준은 나의 연애상대였다. 그걸 너무도 잘 아는 나와 동생은 각자의 연애에 대해 늘 함구하며 연예인보다 더한 비밀연애를 이어갔다. 그러나 20대 후반에 있었던 내 연애가 송두리째 들통나는 일이 생기면서 부모자식 관계도 도려내질 뻔한 무시무시한 경험을 하고 나서야 나는 나대로 이대로 살 수 없다는 자각을, 엄마는 엄마대로 자식 내 뜻대로 절대 안된다는 충격을 강하게 받았고 이후 우리 관계엔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오히려 나도 완전히 솔직하진 못해도 내 연애관과 결혼에 대한 생각 일부를 공유할 수 있게 되었고 엄마도 내 얘기에 귀를 기울여 주었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고통스런 과정이 뒤따랐으나 결과적으로 우리는 최악의 상황에서 최선의 해결을 위해 노력했고 결국 이전보다 나은 관계를 만들어냈다. 이제 엄마는 내게 결혼을 심하게 강요하지 않으며 혼자 살 수도 있을 내 미래를 완강하게 부정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래도..라는 뒷말이 붙긴 하나 이 정도도 감사한 발전이다.
그래서 엄마가 내게 자기 소원이라며 누굴 만나보라 했을 때 오히려 편하게 싫다고 말할 수 있었다. 난 지금도 좋다고, 좋아함에 쏟아낼 에너지가 없다고. 다만 좋은 사람이 생기면 열심히 노력해 보겠다고. 내 이야기에 엄마는 몇 번을 설득해 보다가 결국 힘없는 목소리로 알겠다고 하며 전화를 끊었고 내 결혼이 엄마의 행복으로 귀결되는 삶에 일조하지 못하는 불효녀로서의 포지션이 잠깐 미안해졌다. 얼마 못 가는 미안함이었지만.
솔직히 예전에는 엄마가 바라는 최선을 충족시키지 못할까봐, 그리고 엄마는 어떤 누구를 소개해도 불만족할 사람이니까, 나도 엄마랑 속시원히 연애 얘기 하고 싶으면서도 할 수 없어 속상했고 엄마가 밉기도 했다. 그러나 자신이 가진 최고를 최선을 다해 주려고 했던 딸이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으면 좋겠다는 엄마의 욕심은 과한 것이 아니다. 엄마도 나도 장담할 수 없는 나의 미래를 그래도 조금이나마 안정적으로 확신할 수 있는 그녀의 방법은 내 배우자가 가진 현재의 외적 조건으로 판단하는 것임을 이제는 이해한다. 그것들이 최선의 조건일 때 그 이외의 것들도 걱정없이 논할 수 있을 테니까. 그게 엄마가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방식이니까.
결국 나도 엄마의 사랑방식을 닮아버린 건가. 엄마는 나를 키워내면서 더 잘해주지 못하는 것들에 아파하고 힘들어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채워줄 수 있는 것들을 늘 고민했을 것이다. 그 슬픔을 견디는 과정 속에서 외롭기도, 버겁기도 했을텐데 끝까지 나를 놓지 않고 최선을 다해 키워주어 고맙다. 난 아마 엄마가 원하는 최고의 딸이 될 순 없겠지만, 그리고 최고의 배우자를 보여주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엄마가 내게 보여준 사랑의 방식을 내 식대로 잘 녹이고 다듬어 좋아하는 이들에게 최선을 다해 마음을 내어주며 현재를 후회하지 않고 사는 사람으로 열심히 걸어가고 싶다. 그게 더 멋진 딸 아닌가 엄마?
입에 딸기물을 잔뜩 묻히고 열심히도 먹는 딸과 그런 딸을 가만히 바라보는 우리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