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밥상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메뉴 중 하나는 된장국 혹은 된장찌개였다. 바쁜 아침에는 멸치육수에 된장만 휘휘 풀어 끓인 진짜 된장+국을 계란후라이와 함께 주셨는데, 국에 밥을 넣어 밥알에 국물이 고루 섞이게 한 다음 한 숟갈 떠서 엄마표 무생채를 한가득 집어 올리고 와구와구 먹으면 아침에 그만한 행복이 없었다. 밥알을 다 삼키기 전에 계란후라이 한 조각 투하해 고소함 추가해주면 환상적인 마무리.
저녁에는 미리 한가득 준비해놓은 재료들을 아낌없이 넣어 보글보글 소리가 꼴딱꼴딱 침샘을 자극하는 진하고 얼큰한 된장찌개를 많이 만났다. 감자, 호박, 양파, 표고버섯이 큼지막하게 들어가고 청양고추와 고춧가루로 매콤함까지 추가돼 밥 한 공기로 끝내는 건 용서할 수 없는 일일 만큼 맛이 좋았던 엄마표 된장찌개. 감자랑 호박을 푹 떠서 밥공기에 넣고 잘 으깨서 섞은 다음 딱 알맞게 익어 맛이 좋은 김장김치를 올려 몇 숟갈 먹고 나면 한 공기 순삭되는 마법의 식사시간.
나는 밥투정이 전혀 없는 아이였다. 그냥 김치에 밥만 있어도 아무 말 없이 밥을 비워내는, 차려준 사람에게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시식자였다. 식성은 아빠를 똑 닮아 뼛속까지 한식파로 특히 멸치반찬과 혀가 얼얼해 땀이 송글송글 맺히는 청양고추를 사랑하는데, 아빠는 그게 그렇게 신기하고 좋은지 '우리 딸이랑 나는 멸치반찬 좋아하잖아~' 라며 매번 어깨에 힘주고 흐뭇하게 말한다. 귀여운 사람.
종종 집에 내려가면 엄마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반찬 컬렉션을 총집합 시키는데 두부조림, 멸치볶음, 각종 김치, 그리고 재료 과밀이라 힘겨워 보이는 된장찌개님이 식탁을 반짝반짝 빛내주신다. 나는 앉자마자 우선 반찬들을 한 번씩 다 맛보고는 본격적인 식사를 시작한다. 엄마는 그 옆에서 벌써부터 사과를 깎고 있는데 사과 역시 내가 참 많이도 먹고 좋아도 하는 과일이다.
엄마는 게으름뱅이 큰 딸이 집에 와서는 밥도 안 챙겨 먹을까봐 꼭 저렇게 아침을 챙겨주고 출근했다. 자취하면서 제일 못 챙기는 것들 위주의 식단.
엄마는 사과를 많이 먹어야 미인이 된다며 이가 제대로 나지 않았던 어릴 적엔 갈아서 촉촉한 사과 부스러기를, 이후로는 후식으로 늘 내어줬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싱싱하고 안이 단단하게 가득찬 건강한 사과들은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나는 이제 운명을 달리해야 할 것만 같은, 손에 힘을 주고 꽉 누르면 파사삭 부서져 버릴 것만 같은 사과를 좋아했다. 그런 사과를 씹으면 입 안에서 가루지듯 파스스 부서지는 식감이 좋았다 희한하게도.
소름인 건 아빠도 그걸 좋아한다는 건데 이 얘기를 할 때의 아빠도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다(멸치에 이은 동족 유전자 확인). 엄마는 이런 이상한 부녀를 위해 몇 개의 사과는 상온에서 쭈글쭈글해지게 두는데 그 쭈글사과를 맛나게 된장찌개 먹는 내 옆에 한가득 담아준다. 먹성 좋은 아빠는 내 옆에 앉아 곁눈질하며 입맛을 다시지만 딸 먹으라며 끝까지 양보하고는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발걸음으로 돌아선다.
자취하고 몇 년은 음식을 꽤 열심히 해먹었다. 하다보니 요리에 욕심이 생겨 이것저것 시도도 많이 해봤다. 그러나 자취하면서도 많이 해먹은 건 역시 된장찌개. 쓸데없이 손은 커서 한 번 하면 2-3일은 먹을 양을 해버리곤 했는데, 그러고 나면 한 끼는 두둑하게 먹지만 나머지는 버리게 되는 일이 많았다. 차라리 사 먹는 게 더 효율적이겠다 싶어 이제는 요리와 완전히 멀어졌고 집에서 음식냄새 나는 일은 아예 없어졌다.
그러다 보니 아침 저녁은 간단히 해치우거나 거르는 일이 잦아졌고 내 유일하고 소중한 영양보충 시간은 점심시간이 됐다. 점심시간에 잘 챙겨놔야 하루가 행복하니까 나는 많이 열심히 잘 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메뉴로 먹은 호박잎 된장찌개에 순식간에 과거여행을 떠나고 말았으니. 기대도 안하고 먹었던 찌개가 청양고추의 얼큰함을 품고 내 입맛을 자극했으며, 큼지막하게 숭덩숭덩 들어간 재료들은 엄마의 된장찌개를 떠올리게 했다. 괜히 뭉클하기까지 한 마음으로 과식했던 날.
음식은 영양소로만 내 몸에 남아있지 않음을, 내 추억과 감정의 영양소도 음식들과 함께 차곡차곡 쌓이고 있음을, 엄마 밥이 점점 더 아쉽고 그리워지는 장기자취인은 매년 더 뼈저리게 느끼는 중이다. 사먹는 일이 잦고 허기 채우기용인 때가 많다보니 음식에 이야기가 담기는 건 드문 일이 됐지만, 그래도 따뜻한 밥 한 끼는 여전히 마음의 온기를 직방으로 채워줄 때가 많다. 아, 집밥 먹고 싶다 츄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