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이 필요한 이유.
관계는 혼자 만들어가는 것이 아님을.
엄마와 같이 있을 때 난 종종 과거로 간다. 과거의 내가, 과거의 엄마가 자꾸만 떠올라서이다. 그때 엄마 마음은 어땠을까, 난 얼마나 나쁜 딸이었는가 등등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이제서야 죄책감을 부여하는 것이다. 아마 과거의 나도 어렴풋이 엄마 마음을 알아차렸지도 모른다. 감정은 말하지 않아도 기운으로 전달되기도 하니까. 하지만 알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내가 더 소중했고 엄마는 늘 나를 막아서고 몰아붙이는 존재라는 생각이 더 강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지금 뒤늦은 죄책감에 시달리는 건 내가 엄마와 어른의 무게에 더 마음이 쏠리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사람은 자신이 살아온 시간을 뛰어넘는 이해가 가능할 수 없는 존재가 아닐까. 엄마는 종종 내게 '너는 아직 엄마가 안 돼봐서 몰라'라는 세상에서 가장 뼈 때리는 멘트를 던지는데, 맞는 말이다. 나는 결국 엄마가 되지 않고는 엄마를 온전히 이해한다고 말할 수도, 설령 엄마가 됐다 해도 '나의 엄마' 마음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느끼는 죄책감들도 결국 내 경험이 만들어 낸 짐작에 기인한 것이기에 과거에 엄마가 느꼈던 마음들을 온전하게 살펴줄 수 없다.
그런 생각을 할 때면 한껏 무력해진다. 결국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 하나 제대로 어쩌지 못하는데 무엇을 이해하고 살 수 있단 말인가. 다른 것들을 이해하는 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런 고민들이 계속되며 무기력한 자신을 슬퍼하던 어느 날, 새로운 질문이 튀어나왔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타인이 존재한다면 그 이해는 타인에게 진정으로 가닿을 수 있을까. 내 이해는 내 세계 안에서 작동하는 것인데 너의 세계에 가도 오류없이 정상작동할 수 있는 걸까. 내 이해가 너를 오해하는 일이 되지 않으려면 이 무력감을 견뎌내고 어떤 노력을 해야하는 걸까.
'나는 너의 마음을 오롯이 이해할 수 없어. 미안해. 하지만 너의 마음에 가까이 가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하고 싶어. 그게 내가 너를 아끼고 사랑하는 방식이니까.' 를 전제로 한 최선의 노력 중 하나는 진심이 담긴 끊임없는 질문이 아닐까 싶다. 상황을 구체화할수록 수면 위로 드러나는 이야기는 더 많을 테고 그 이야기들에 담긴 마음을 짐작하는 건 좀 더 성공확률이 높을 테니까. 내가 널 이해할 수 있고 해낼 것이라는 오만한 마음보다는 너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시간에는 나를 한껏 낮추고 네 마음을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것. 너를 이해하고픈 내 마음을 질문들에 담아내는 것.
어느 작가에게 누군가 물었단다. 잊지 못하는 남자가 있느냐. 작가는 "그 사람과 대화하면 우주에 우리 둘만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는 남자를 꼽았는데 아마 그의 눈 안에는 오롯이 그녀만 담겨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들을 계속 궁금해 했을 거다. 좋은 질문은 관심이 있어야 나오는 것이니까. 선명한 걸 좋아하고 불명확한 것에 괴로워하는 나는 질문을 펑펑 쓰는 편이다. 그냥 내 짐작으로 넘어가는 것들은 딱 그 만큼의 영역으로 내게 남는다는 걸 과거의 경험들로 배웠기 때문이다. 나 역시 내 삶을 넘어서는 통찰은 평생 못하겠지만 그걸 한계로 삼아 포기하고 싶진 않다. 내 짐작으로 두기엔 우리의 삶이 담고 있는 것들이 너무도 크고 무한하다.
내 안에서 이해하고 넘기고 오해하고 망설이던 일들을 선명히 하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혼자서는 상대의 마음 짐작해도 하지 않아도 이러나 저러나 도통 알 수 없으니 용기내어 질문할 수밖에. 그리고 결과는 대부분 짐작했던 것보단 괜찮다.(상상은 늘 극단까지 날 몰고 가니까)
결국 질문하기. 관계는 혼자 만들어가는 것이 아님을 항상 명심하며 행동하기. 내 삶의 방식은 쭉 이렇게 진행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