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 버드.

엄마가 무척 보고 싶어졌다.

by kasory

대학에 합격하고 기숙사에 짐을 갖다놓기 하루 전날, 미리 아빠 차에 이것저것 실어놓기로 했다. 집밖이라고 해봤자 1-2분도 되지 않는 거리였기에 별 생각없이 잠옷바지 차림에 대충 묶은 머리로 짐을 갖다 놓으려는데 등 뒤로 엄마의 말이 비수같이 꽂혔다. "그런 거지꼴을 하고 밖을 나가냐. 대체 너는 왜 그 모양이냐."



평소 같았음 그러려니 했을텐데 내일이면 태어나 처음으로 완전 낯선 환경에 홀로 떨어질 생각에 굉장히 예민해져 있던 '새로움포비아'는 엄마의 그 말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고작 집 앞 나가는데 뭘 그렇게 신경써야 해? 내 차림에 아무도 신경 안 쓰는데?"



그 때부터 시작된 우리의 언쟁은 점점 본질을 벗어났고 나는 결국 해선 안될 말까지 해버리고 말았다. "난 지금까지 늘 엄마 눈치만 보고 살았어. 내가 이 집에서 힘들었던 건 다 엄마 때문이야. 엄마가 날 이렇게 만들었어!!" 그리고는 엉엉 소리내어 한참을 울었다.



다음날 우리 네 식구는 침묵의 시간을 꾸역꾸역 견디면서도 결국 함께 기숙사에 왔고 묵묵히 짐만 날랐다. 나는 기숙사에, 셋은 다시 집으로 가야하는 시간이 왔을 때 결국 나는 죄책감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앞 좌석 창문에 서서 제대로 된 말도 못하고 또 엉엉엉 울었다. 해석해보면 "엄마, 미안해. 잘못했어요." 였을 그 말을 엄마는 용케도 알아듣고는 "울지마. 괜찮아. 씩씩하게 잘 지내." 라며 손을 잡아줬다. 그리고 내려가는 언덕 내내 나를 바라보며 훌쩍거렸다고 한다.



우리는 함께 지낸 지난 20년 내내 그런 사이였다. 나는 늘 엄마가 편하지 않았다. 엄격하고 원칙주의자에 따뜻하기 보다는 냉정했던 엄마에게 잘 보이고 싶고 기대고 싶으면서도 너무 답답했고 무서웠다. 더 어렸을 때는 내가 좋아하고 멋있어 하는 친구의 엄마아빠네 딸이고 싶은 마음을 품어보기도 했고, 빨리 독립해서 간섭없이 무엇이든 내 의지대로 하는 상상만으로도 행복해했던 적도 있었다. 그렇게 애증의 20년을 보내고 12년동안 우리는 떨어져 살고 있다.



그 20년간은 참 엄마를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사실 이해하려는 노력도 이해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던 것 같다. 그저 선택할 수 없었던 이 가족관계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진정한 나'를 찾고 싶어 안달나기만 했었다. 그리고 드디어 자유를 찾게 된 지난 12년의 시간동안 우리 관계는 변했다. 서로를 좀 더 객관적으로 보게 됐고 이해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도 대화가 가능해졌다.



물론 거저 얻어진 변화는 아니다. 서로를 찌르기도 많이 찔렀고 무너진 관계가 회복될 수 없을 것 같았던 시기도 있었다. 아직도 우린 무척 친하진 않지만 그래도 어느 날인가 엄마가 내게 건넸던 "엄마가 미안했다. 그렇게까지 엄격하지 않아도 됐는데, 엄마도 너를 처음 키우다 보니 뭘 잘 몰랐어."라는 말은 늘 뭉클하게 남아있다.



아이들과 생활하다 보면 인간적으로는 좀 더 허용해주고 싶은데 꼭 해야 하는 것, 어쩔 수 없이 시켜야 하는 것들이 생긴다. 그럴 땐 감정은 접어두고 악역을 맡아야 하는데 인간으로서의 나와, 어른이기에 맡을 수밖에 없는 직책 사이의 괴리감은 늘 괴롭다. 어른이 되면 부모님의 울타리 밖에서 완전 멋진 'NEW Ver. 나'가 될 줄 알았는데 어른 이거 생각보다 안 멋지고 안 자유로우며 괴로운 것 참 많다. 엄마도 그 어려움 속에 나 없는 데서 혼자 참 많이도 울었을 텐데. 그 눈물들의 코딱지 정도 만큼 겪어보니 나는 결국 '엄마'를 벗어날 수 없고 엄마가 만든 나를 부정하고서는 나를 발전시킬 수 없음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결국 사랑해서 그치만 서툴러서 그래도 이해할 수 있어서 가족인 엄마와 딸들이 손 꼭잡고 이 영화를 본다면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땐 서로의 손을 더 꽉 잡게 되거나 따뜻한 포옹으로 이 영화의 소감을 함께 나누게 되지 않을까.



엄마가 무척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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