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사람.

틈날 때마다 그녀가 가벼워지게 돕고 싶다.

by kasory

엄마는 전보다 쉽게 화내고 쉽게 울었다. 자신이 우는 걸 감추려 훌쩍훌쩍 가만히 울던 지난 날과 달리 엉엉 소리내어 울 때가 많아졌다. 눈물의 시동이 빨리 켜지고 한 번 켜지면 오래 갔다. 아이같이 우는 엄마를 지켜보는 건 생각보다 더 어렵고 놀라운 일이었지만, 사실 가장 놀라는 건 엄마 자신일 터였다. 단단하게 감추고 살았던 게 많은 사람일수록 나이가 들며 허물어지는 구석이 더 많은 것 같았다. 그만큼 억지로 끌어다 쓴 것들이 많았을 테니 당연한 결과인 것일까. 어쨌든 곳곳에서 의외성을 드러내는 엄마를 인정하고 익숙히 여겨야만 하는 때가 찾아왔다.


엄마의 의외성에 크게 놀랐던 가장 최근의 사건은 두 달 전에 있었다. 너무도 깔끔한 성격인 엄마는 우리가 후줄근하게 집에 오면 늘 한소리씩 하며 싫은 티를 냈다. 덕분에 나와 동생은 평소보다 집에 가는 차림을 좀 더 신경 쓸 정도였는데, 집에 도착하면 입고 온 옷과 신발을 엄마는 바로 빨아버렸다. 그것도 늘 손빨래로. 집에 왔을 때만이라도 그녀 손으로 깨끗하게 빨아주고픈 욕심이 늘 일거리를 만들었다. 그날도 엄마는 동생의 더러운 신발을 바로 빨아버렸는데 흰색 운동화에 빨랫비누가 녹아드니 마르고 나서도 누렇게 흔적이 남았다.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 것도 속으로만 끙끙 앓는 편이라면 의사표현이 무척이나 확실한 동생은 신발을 보자마자 울상이 됐고 "흰색 운동화라 조심히 빨아야 되는데.."라고 투덜대며 응급조치로 물에 적신 휴지를 누래진 운동화 곳곳에 붙였다. 엄마도 예상치 못한 결과물에 미안한 마음 한가득이었는데 속상해하며 축 처진 동생의 등을 바라보고 있자니 더욱 죄책감이 들면서도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동생의 태도가 너무 서운했나 보다. 낮잠자다 뒤늦게 깬 탓에 상황파악이 전혀 안됐던 나는 일어나자마자 느껴지는 싸늘한 기운에 그저 눈알만 굴리며 눈치를 봤다.


엄마는 내가 묻는 말에 단 한 마디도 대답해주지 않았고 이상한 낌새에 동생에게 물었더니 상황보고를 해줬다. 동생은 그녀의 감정변화를 알아채고는 조심스레 옆으로 가 "엄마, 저렇게 해두면 돼. 속상해해서 죄송해요."라며 감싸 안았는데 엄마는 순간 버럭 화를 냈다. "엄마가 나쁜 뜻으로 한 것도 아니고 이미 결과물도 되돌릴 수 없는데 꼭 그렇게 표정 구기면서 서운한 티를 내야 돼? 꼭 그래야 돼? 어쩔 수 없잖아. 가뜩이나 미안한데 니가 그렇게 하고 있으면 내 맘이 불편하잖아!!!!"


으잉? 당황스러운 멘트였다. 확실한 동생 딴에는 최선을 다해 감정을 숨겼고 산 지 얼마 안 된 운동화라 더욱 애지중지하는 중이니 속상함 어쩔 수 없었을텐데 엄마가 그렇게까지 동생을 원망하는 게 약간 이해하기 어려웠다. 내 기분 맞출 줄 모르는 너는 나쁜 아이야!의 느낌이랄까. 하지만 당황스러움을 더 느끼기도 전에 엄마는 저 멘트를 던지고는 아이처럼 엉엉 한참을 울었다. 동생은 그 옆에서, 나는 식탁 뒤에서 멍해진 채로 그 눈물을 지켜봤다. 나름 공정한 재판관인 척 두 사람을 중재해보려 했지만 눈치없는 행동이었다. 이 사건에 객관적 시선은 필요없었다.


동생도 엄마의 과한 반응에 서운해져 몇 마디 던졌고 엄마는 멈추지 못한 눈물을 닦으며 "너네는 엄마 나이가 안돼봐서 몰라. 예전에는 괜찮던 것도 쉽게 서운해지고 눈물 나고. 안 그러고 싶어도 그게 안돼."라는 말과 함께 마저 더 울었다. 한참 후에야 진정된 엄마와 동생의 극적 화해가 있었지만 그날의 엄마는 몇 달이 지난 후에도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복잡한 감정들로 잡아끈다.


엄마는 약해졌다. 이성보다 감성이 자신을 휘젓고 다니는 걸 제어하기엔 몸도 마음도 많이 약해졌다. 이기적인 나는 이런 엄마가 아직 어렵다. 익숙해지기 위한 기본조건은 자주 보는 것인데 엄마를 보러 집에 가는 일은 연례행사가 돼버렸고 아마 나는 엄마에게 평생 적응만 해나갈 지도 모르겠다. 나의 수많은 역할 중 유독 '엄마 딸' 역할엔 합격점을 못받는 미안함에 이번에 집에 가서는 엄마와의 시간을 많이 갖기로 했다.


"엄마, 엄마는 아빠의 어떤 점이 좋아서 결혼했어?" 불쑥 묻는 내게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그게 갑자기 궁금했어?"라고 묻는 엄마. "그냥. 내가 다른 사람 말은 열심히 들으면서 엄마 얘기는 잘 모르는 것 같아서. 엄마를 인터뷰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어." "인터뷰ㅋㅋㅋ그래, 어디 해봐라 인터뷰!"


"우리 딸한테는 한 번도 안 꺼낸 이야기인데..."로 시작한 엄마의 말은 끊이질 않았다. 아빠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결혼을 결심하기까지, 그 후로 고난의 결혼생활, (이미 백서른여덟번 정도 들었지만 엄마에겐 평생 상처일)아빠에게 서운했던 것들, 현재의 자신에 대한 이야기까지. 40분이 넘는 시간동안 질문 이상의 것들을 와르르 꺼내놓으며 눈물도 왕창 쏟았다. 중간에 아빠가 들어오는 바람에 갑자기 분위기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느라 이야기가 중단됐지만.



언젠가부터 좋은 인터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좋은 인터뷰를 위한 기본조건은 좋은 질문이라고 생각했고 좋은 질문을 만들어내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을 이것저것 해가는 중이었다. 하지만 엄마와 얘기하며 깨달았다. 자기 안에 털어놓지 못한 이야기가 가득한 사람은 질문이 무엇인지는 상관 없겠구나. 그저 들어줄 귀와 마음, 무거운 엉덩이만 있으면 되겠구나. 엄마는 아직 너무나도 무거운 사람이었다. 자신이 가볍지 못해 눈물주머니도 무거운 것 같았다. 틈날 때마다 그녀가 가벼워지게 돕고 싶다.


2019. 05.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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