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글쓰기.

by kasory

엄마와 글쓰기를 시작했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늘 읽고 쓰기를 삶의 일부로 여겨왔던 엄마와 그런 엄마를 닮아 말보다 글이 더 편안하고 좋은 딸에게 이보다 큰 교집합은 없을 것 같아 제안한 일이었다. 엄마가 더 나이들기 전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방법으로 엄마와 친해지고 싶은 바람을 담아 용기낸 일이기도 했다.



우리는 2주에 한 번씩 돌아가며 주제를 제시하고 서로의 메일로 글을 보낸다. 받은 글에는 반드시 피드백을 해주는 것이 원칙.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엄마는 할 일이 쌓여있는 꼴을 못보는 통에 글감이 제시되고 2-3일 안에 메일을 보내지만 게으른 딸 덕분에 한 회차 마감은 2주에서 3주에서 늘어지게 되고...



그래서 아직 두 번밖에 주고받지 못했지만 이 두 번만으로도 우리는 꽤 많은 마음의 짐들을 밖으로 내놓을 수 있었다. 두번째 글쓰기 주제는 '나에게 가족과 핸드폰은 어떤 존재인가'였는데 무심한 딸을 대놓고 저격한 엄마의 글감에 딸도 에라이 모르겠다 싶어 그동안 얼굴보고 절대 하지 못했던 말들을 털어놓았다.



혹여나 나의 글에 엄마가 상처받을까 걱정하며 메일함 수신확인을 재차 살피고 엄마의 답장을 기다렸는데, 엄마 역시 말 못했던 자신의 진심을 꺼내주었다. 우리 모녀는 말보다 글이 편한 사람들이었는데 말로도 글로도 서로를 연결하지 못하고 살았으니 편치 않은 관계인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지금보다 어릴 때 엄마의 제안으로 이 작업을 시작했다면 나는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분명 솔직한 글을 쓰지 못했을 것이기에, 서로 마음의 준비가 된 지금이 가장 빠른 최선의 시기라 생각한다. 이제 시동 걸었으니 앞으로도 최대한 성실히 엄마와 마음을 나누고 싶다. 아래는 이번에 내가 쓴 글과 엄마 글을 읽고 쓴 답변.



[엄마 글쓰기를 읽고]


엄마에게 글쓰기를 하자고 제안하면서 많이 떨렸다. 엄마에게 무언가를 해보자고 한 건 드문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는 흔쾌히 좋다고 했고 내 메일을 무척 기다렸으며 심지어 내가 메일을 보내자마자 답장을 보내기도 했다. 그때 엄마가 이 일을 기대하고 기다리고 있구나 느꼈다. 엄마는 지난 메일에서 자기 가족얘기를 했고 그 얘기를 쓰고 나서는 고맙다고 했다. 내가 엄마에게 한 건 고작 글쓰자고 말한 것뿐인데 말이다. 그동안 이 작은 것조차도 엄마에게 큰 고마움으로 느끼게 한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그리고 이번 글에서 엄마가 자신의 가족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아빠가 다른 면에서는 몰라도 엄마에게 얼마나 큰 안정감을 주는 사람인지 느낄 수 있었다. 엄마가 가족을 떠올릴 때 어두운 기억보다 행복한 기억과 마음을 꺼낼 수 있어 다행이라고도 생각했다. 엄마랑 글쓰기를 계속 이어나가고 싶다. 용기내길 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글]


1) 가족


대학생이 되어 나가살기 전까지 나는 집이 참 불편했다. 부모님의 엄격함이 힘들었고 다른 친구들 집은 가족끼리 다정하고 살갑던데 우리집은 그러지 못해 늘 아쉬웠다. 그땐 뭐가 그렇게 불편하고 싫었던 것 투성이었는지 모르겠다. 우리 가족도 집도 썩 만족스럽지 못했고 빨리 어른이 돼서 독립하고 싶다는, 그래서 나만의 공간에서 자유롭게 지내고 싶다는 욕망만 가득했다.



학창시절의 내 화두는 '자유'였던 것 같다. 자유롭고 싶었는데 자유로울 수 없게 했던 집과 학교가 많이 답답하고 어려웠다. 그런 마음이니 가족들에게도 살갑지 못했고 말수도 적었고 부모님이 원하는 다정한 큰딸의 모습도 보일 수 없었다. 그래서 처음 독립하고 나서는 24시간 내내 주어진 자유가 마냥 좋고 행복했다. 간섭하는 사람도, 하고 싶은 것의 제약도 없이 원하는 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기쁨은 굉장히 컸고 몇 년간은 그 즐거움에 취해 살았다.



하지만 이제는 이 자유가 기쁘다기보다는 익숙해졌고 익숙해진 후로는 그저 삶이 되었다. 삶이 되고 나서는 혼자라는 것이 때론 고단했고 외로웠고 어려웠다. 그러나 이것 역시 견뎌내야 한다는 것을 체득한 뒤로는 혼자생활에 무감해졌다고 말하는 게 맞겠다.



교사생활 연차가 쌓이는 만큼 나이를 먹게 되니 저절로 깨닫게 되는 것들이 생겼다.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그들의 가족 역할을 대신할 때가 많았고 특히 부모의 역할을 많이 하게 됐다. 어리석고 모자란 나는 직접 경험해봐야 아는 것들이 많아서 가족의 소중함과 부모님의 고마움에 대해서도 이제야 진심으로 알아가는 것들이 생겼다. 부모님이 내게 얼마나 중요한 기둥이었고 내 삶의 수많은 것들의 뿌리였는지 말이다.



나는 엄마아빠가 내게 베풀어주는 사랑이 버거웠고 내가 원하는 사랑의 모양과는 다를 때가 많아 아프고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사랑의 모양이 다르다고 사랑이 아닌 것은 아니었다. 그저 각자가 경험해온 삶의 기반에서 최선을 내어주려고 했던 마음이 틀린 것은 아니니까. 어린 나는 모양에만 집착했지 부모님의 최선에 대해 마음쓸 겨를이 없었다. 그땐 사실 이해하고픈 마음이 없었다. 나 살기 바빴으니까. 내 나름의 생존을 하고 있었으니까.



요즘 아이들의 성장과정에 주양육자가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절감하는 일을 자주 마주했다. 그리고 어렸을 때는 그토록 갑갑하기만 했던 부모님의 울타리가 지금 내가 삶의 구김없이 성장하는 데 얼마나 큰 힘이 됐는지도 깨닫게 됐다. 나는 성차별로 정체성이 부정당한 적도, 원하는 걸 가지지 못해 괴로웠던 적도, 따뜻한 밥을 먹지 못해 배를 곯았던 적도, 밤늦게 외로이 집에 혼자왔던 적도, 하교 후 아무도 없는 빈 집을 지켰던 적도 없었다.



그 모든 것들이 너무도 당연히 주어지는 줄 알았지 누군가에겐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어 평생의 상처가 된다는 걸 알지 못했다. 삶에 당연한 것은 아무 것도 없는데. 누군가의 노력과 희생이 수반돼야만 가능한 것들이었는데.



나는 나의 긍정적인 성향과 사람을 좋아하고 삶을 낙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이 그저 나의 기질인 줄 오랜 시간 착각하고 살았다. 하지만 우리 가족의 보살핌 없이는 절대로 이뤄질 수 없는 일들이었고 그런 사랑 덕분에 사랑이 많은 사람으로 자라났다.



물론 아직도 이해할 수 없고 가까이 하기 어려운 부분들도 우리 가족에겐 존재한다. 그러나 관계가 두터워지려면 마음만으로 할 수 있는 건 없다. 마음은 늘 행동을 수반해야 전달될 수 있고 엄마와 나의 글쓰기는 그런 점에서 내 노력의 방식이다. 사랑하지만 아무 노력도 없는 관계는 발전이 없으니까. 나는 가족의 노력과 사랑을 먹고 자라난 사람이니까. 그래서 내게 가족은 노력이자 뿌리이다.


2) 핸드폰


요즘 핸드폰으로 가장 많이 하는 것은 글쓰기와 유튜브 보기이다. 연락수단으로도 많이 쓰긴 하지만 연락에 크게 연연하고 싶지 않아 핸드폰 보는 횟수를 많이 줄이려고 노력 중이다. 하지만 그 연락을 가족에게까지 줄일 필요는 없는데 참 무심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게으름뱅이는 이렇게 마음만 부채감을 안고 산다. 노력해야지.

매거진의 이전글무거운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