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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sory Sep 06. 2020

노력은 나를 배신하지 않지(feat.유노윤호)

장거리 운전을 할 땐 팟캐스트를 자주 듣는다. 운전시간을 줄일 순 없으니 귀라도 유익하게 하기 위함인데 책이나 영화 관련 채널을 애용한다. 최근에 들은 팟캐스트에는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의 김하나 작가님이 나오셨는데 그는 '하면 된다'는 말보다 '하면 는다'는 말을 믿는다고 했다. '하면 는다'라. 



대학교 4학년 때 임용고시 준비하면서 매일 도서관에서 살았다. 그렇게 잠 많고 게으른 내가 아침 7시 30분이면 도서관으로 향했고 밤 11시가 넘어서야 엉덩이를 뗐다. 웬만한 일 아니면 주7일을 꼬박 공부했고 임용고시 날짜가 다가올수록 조급한 마음 진정하기 위해서라도 도서관을 찾으니 인사는 안 하더라도 낯익은 얼굴도 많이 생겼다. 그 사이에 암묵적 룰도 생겨서 아무리 명당자리가 비었더라도 자주 앉았던 이가 있다면 함부로 탐하지 않는 미덕도 생겨났다. 나도 지정석 같은 자리가 있었는데 서로의 자리에 오늘도 앉아있는가를 체크하며 위로받기도, 안정감을 느끼기도 했다. 



언젠가 친구가 내가 '도서관 빡공녀'로 유명하다는 말을 전했다. 빡세게 공부하는 여자라니. 괜히 싫었다.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 아등바등해보이는 모습으로 비치기 싫었다는 말이 더 맞겠다. 나와 사이가 썩 좋지 않았던 동기 하나가 '쟤는 노력파야 노력파.'라고 했다는 뒷얘기도 싫었다. 나에게 노력파란 죽기살기로 노력하지만 그에 비해 결과는 썩 좋지 않은 이들을 일컫는 말로 들렸다. 나는 노력으로 평가받기 보다 결과가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고 그런 사람이야말로 간지나는 인물이라 생각했다. 백조가 물속에서 미친듯이 발을 굴러도 겉으로는 평온한 것처럼 나의 노력도 티나지 않기를, 그러면서도 좋은 결과는 가질 수 있기를 허세스럽게 바랐다. 



그리고 10년이 훌쩍 지났다. 나는 교사가 되었고 내 삶은 '노력파'라는 별명에 걸맞게 온갖 노력들이 스티커처럼 덕지덕지 붙어있다. 노력을 하지 않으면 가질 수 없는 것들이 태반이었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 해도 뜻대로 가질 수 없는 것들도 수두룩했다. 그러나 운 좋게도 나는 노력한 만큼의 성장을 결과로 가지며 살았다. 노력이 나를 매몰차게 배신하여 땅굴 파고 들어가게 만드는 일은 없었다. 부족했던 나를 점검하고 노력의 스텝을 차근차근 밟아갔을 때 어떤 식으로든 처음보다는 성장했고 그런 나를 보는 게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뿌듯했고 내 성취가 자랑스러워 더 잘 해내고 싶었다. 노력이 긍정적 결과로 이어지는 크고 작은 성공경험 덕분에 나는 노력의 힘과 미덕을 이때까지 놓지 않고 살 수 있었다. 


오.. 그는 정말...


대학생 때는 너무도 듣기 싫어 그 말을 한 동기조차 미워하게 만든 '노력파'가 결국 나의 정체성이었던 것이다. 이제 그는 통찰력이 대단했던 사람으로 내게 기억될 정도. 김하나 작가의 말은 전적으로 옳다. 정말로 '하면 는다'. 는다는 것이 엄청난 일취월장의 모습이라기 보다는 무턱대고 힘을 써서 억지로 해내는, 나를 닳게 만드는 방식 말고 적절한 힘의 세기와 방향으로 적정한 효과를 줄 줄 아는 기술을 익히는 것. 또한 올바른 태도를 익혀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은 줄이고 자신에 대한 믿음은 끌어올릴 수 있는 것. 결국 회복탄력성을 키우고 삶의 수많은 선택들을 용기있게 가져가는 법을 배워 나를 계속 나아가게 만드는 것. 



지난 경험들을 통해 나는 그런 근육들이 늘었고 삶에 대처하는 선택지들을 확장시켰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선생님이 시킨 발표에 일어나서 말 한 마디 했다가 너무 힘들어서 엉엉 울어버렸던 내성적인 쫄보가 이제는 학생들 앞에서 대화를 주도하고 수업을 이끌어간다. 그런 성격으로 선생님은 어떻게 하는지 알 수 없다며, 아직도 새로 만난 사람들 앞에서 염소 삼백 마리는 몰고다니는 목소리인 내게 주어진(사실 내가 선택한) 독서모임 리딩도 벌써 3년이 넘었다. 열등감에서 비롯된 노력이 나에겐 가장 강력한 부스터이기에, 나는 이제 '노력파'라는 말을 아끼고 좋아한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지금을 놓치지 않겠습니다. 


물론 노력없이 거저 얻어지는 것들도 많으면 얼마나 좋겠냐는 허황된 꿈도 종종 꾼다. 나이를 먹을수록 노력은 더욱 큰 용기를 필요로 하고, 눈에는 덜 보이는 성과를 줄 때가 많기 때문이다. 계속 이렇게 용기내고 노력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괜히 찡찡대는 목소리로 친구들에게 투덜대며 웃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노력없이 성취없이 살 것이냐? 놉. 나는 어떤 식으로든 계속해서 성장하고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그 가능성의 영역들을 지켜보고만 있진 않을 것이다. 나는 때론 지치겠지만 그럼에도 그만두진 않을 것이란 스스로의 믿음이 있으며, 이건 나의 가장 큰 자랑이자 자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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