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환일기 형식으로 친구와 마음을 나눈 적이 있었다. 대화로 두었다면 많은 부분 휘발되었을 우리의 이야기가 글로 남으니, 친구를 위해 쓴 글이었지만 결국 내게도 위로가 되더라.
Q. 당신에게 사람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사람과의 관계가 당신을 힘들게 할 때는 어떻게 극복하나요?
A. 오래 전에 한 친구가 "네가 왜 그렇게 관계에 욕심이 많은지 궁금하다"란 질문을 했습니다. 관계에 대한 너의 헌신적인 태도는 너의 가치관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겠지만 더 파고들면 트라우마, 욕망 등과 관련된 것들이 숨어있을 수도 있다는 의견을 덧붙이면서요. 어쩌면 제가 집착적으로 그런 부분에 매달린다고 본 것도 같습니다.
저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사람이 결국 희망이라 생각하는 휴머니즘적 태도를 놓지 않는 편이고요. 물론 세상에는 제 믿음에 반하는 일들이 수시로 일어나고 있지만, 그럼에도 결국 서로의 변화가능성을 믿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는 것만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 여깁니다. 그래서 제가 좋아하고 함께 가고 싶은 사람들과는 계속 좋은 인연으로 뜻을 같이 하고 싶다는 개인적 욕심에서 많은 것들을 노력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이런 좋은 마음만이 저를 움직이게 하는 힘은 아닙니다. 인간을 끝내 움직이게 만드는 건 결국 '두려움'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좋고 의미있는 가치들은 그 사람의 생각을 움직일 수는 있지만, 사실 마음먹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또다른 문제인 것 같아요. 실제로 내게 위기가 닥쳐왔을 때 혹은 그 문제를 생각해야만 하는 현실적 거리가 나와 가까워졌을 때 인간은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선택을 하게 되고 결국 어떤 식으로든 움직이게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불안이 많은 사람입니다. 저를 표면적으로 이해한 사람들은 안정적이고 감정에 크게 휘둘리지 않는 굳건한 사람이라고들 말하지만 그건 제가 진짜로 되고 싶은 사람일 뿐, 저는 제가 부여한 별명 그대로 지질학자이자 갈대처럼 흔들리는 나약한 중생입니다. 흑흑.
마음이 늘 잔잔한 호수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 애쓰지만 그럴 수 없어 좌절하고 깨지는 나. 제가 관계에 힘쓰는 이유는 이렇게 나약하고 불안감 많은 제가 덜 불안해지고 덜 외로워지기 때문에, 급한 놈이 우물 판다고 더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어서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애를 쓰다 보면 물론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도 현타가 올 때가 있는데요. '이렇게 애써서 뭐하나' 갑자기 무용론에 빠져 인생무상을 논하게 되는 것이죠. 그런 시기는 '관계을 위한 나의 노력>>>>>>>>>관계에서 얻는 나의 진실한 기쁨'과 같은 상황이 찾아왔기 때문인데, 결과로서 얻는 게 부족하다는 보상심리가 제 마음에 훅 들어와 저를 마구 괴롭히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고민하게 되죠. 이걸 지속해야 하나, 그만둬야 하나. 그러나 당장 괴로운 마음 때문에 쉽게 그만둘 수는 없어요. 관계는 단단하게 잘 쌓기가 어렵지 무너뜨리긴 너무도 쉬우니까요. 내가 계속 가져가도 될 만큼 나에게 의미있고 가치로운 관계인가를 판단하는 것이 우선시돼야 합니다.
판단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 기준을 확립하기 전에 나에게 가장 중요하고 절대 놓을 수 없는 것들, 혹은 내가 참을 수 없는 것들을 명확하게 인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결국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계속해서 고민하는 작업이 수반돼야 하는데 이게 참 고통스럽고 어려운 일이어요. 휴.
얼마 전 읽은 책에 이런 구절이 나왔어요.
"우리는 관심을 기울일 때만 스트레스를 받는다. 어떤 일에 스트레스를 느낀다면 스스로 이렇게 물어보자. "왜 그것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가?" 그 이유를 생각해보고 필요하다면 종이에 적어 모니터나 냉장고에 붙여두고 곰곰이 고민해보자."
왜 그것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가. 왜 이 관계가 내게 스트레스인가. 무엇이 이토록 나를 힘들게 만드는가. 그리고 결국 그 관심이 내게 유용하지 못한 부분이 너무도 많은 일이라 결론내렸다면 과감히 'STOP' 버튼을 누르는 것도 좋은 결정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그 버튼을 누르는 게 힘들어서, 사람은 누구나 나쁜 사람이 되기 싫어하니까 꾹 참고 어쨌든 지지부진하게 그 관계를 이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저 같은 경우엔 참 나약한 인간이라 한 번 꽂힌 부정적인 생각은 쉽게 바뀌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결국에는 더 안 좋은 방향으로 끝맺음하는 경우도 꽤 있었어요. 후회도 더 많이 남고요.
지금은 힘들어도 그 관계를 꼭 지켜내고 싶다면 정리된 문장으로 솔직하게 나의 마음을 털어놓는 게 가장 강력한 정공법인 것 같습니다. "너의 이런 행동으로 지금 내 마음이 이렇게 힘든데 이런이런 부분을 얘기해보고 싶다.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앞으로도 계속 좋은 관계였음 좋겠다는 나의 바람 때문이다"와 같은 문장으로.
그러나 모든 관계에 저 방법을 쓸 필요는 없죠. 관계에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해요. 다만 신중한, 후회가 덜 남는 선택과 집중을 위해서는 '나'를 선명히 하는 작업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극복하기 위한 방법찾기는 그 이후의 문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이건 내가 노력해서 될 문제인지 등등의 원인에 대해 뾰족하게 열심히 파악해 놓아야 더 적합한 대처방법을 찾을 수 있으니까요.
왜 요즘 힘든지, 그 관계가 내게 어떤 부분에서 스트레스인지, 그건 극복 가능한 문제인지부터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러한 이유로 관계가 어그러져도 지금 당장은 힘들겠지만 사실 인생 긴데 돌아보면 인생에서 너무도 잘한 일이 되어있을 수도, 기억조차 희미해지는 일이 될 수도 있어요. 무엇이 되었든 내가 덜 상처받고 회복할 힘이 더 남는 쪽으로 선택하였음 좋겠습니다. 나는 니 편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