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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slee Feb 03. 2022

'과잉 규제? 생명을 다루잖아!'

'동그람이:동물 그리고 사람이야기' 에 연재된 글입니다.

반려견을 돌보지 못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출장, 여행, 며칠씩 야근이 잡혀 있거나, 아플 때처럼 함께 하지 못할 때 말이다. 이때마다 반려인은 반려견 걱정이 앞선다. 먹고 자는 것 외에도 반려인과 접촉, 교감이 필요한 반려견은 혼자서는 돌보기 어렵다.

남편과 나는 수지가 다섯 살이 되도록 어떻게든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고 수지를 돌보려 노력했다. 100% 수지 때문은 아니었지만, 가끔 한국에 갈 때도 둘 중 하나는 오스트리아에 남았고, 휴가 때도 수지와 함께하기 위해 언제나 자동차나 기차로 갈 수 있는 곳을 여행지로 골랐다. 간간이 지인에게 수지 산책을 부탁한 적은 있지만, 하룻밤도 다른 곳에서 재워본 적 없이 옆구리에 끼고 살았던 5년이다. 그런데 지금 이 규칙을 깨야 할 사건이 생겼다. 

수지와 아기는 여전히 잘 지내고 있다. 그러나, 아기의 돌잔치를 맞아 한국으로 가야 할 상황이 되자 우리 부부는 고민에 빠졌다.

아기의 돌을 맞아 온 가족이 함께 한국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는 한 사람이 수지와 집에 남아있었지만, 아기 돌잔치에는 부모가 모두 참여해야 했다. 큰 결심을 하고 수지를 한국에 데려가는 방법도 알아봤지만, 그 역시 만만찮았다. 한국에서 오스트리아로 돌아올 때 문제가 있었다. 광견병 위험국가로 분류된 한국에서 오스트리아로 반려견을 데려오기 위해서는 예방접종 한 달 뒤 항체 검사 소견서를 첨부해야 하는 복잡한 절차가 있기 때문이었다.

수지는 의심할 나위 없이 사랑하는 가족이지만, 이번처럼 수지의 거취가 고민스러웠던 적도 가끔 있었다. 그때마다 수지와 함께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찾아왔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수지를 오스트리아에 두고 가기로 마음먹고 빈의 반려동물 호텔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반려견 천국'에서 보기 드문 '반려동물 호텔'?

빈은 많은 반려견이 사는 도시인만큼 길거리에 비치된 배변봉투를 비롯해 반려견들을 위한 시설들이 잘 마련된 곳이다. 하지만 한국의 반려동물 호텔과 같은 ‘티어펜지온’(Tierpension)은 시내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시내 군데군데 동물병원은 있지만 티어펜지온은 아예 찾아볼 수 없다. 구글 지도에서 찾아볼 수 있는 반려동물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는 동물병원, 티어펜지온, 산책 서비스만 제공하는 기관들을 포함해서 단 20여 곳에 불과하다. 많은 반려견 수만큼이나 반려동물 케어에 대한 수요 역시 높은 것은 당연지사.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돈이 되는 사업’은 수요보다 높은 공급을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빈에서는 왜 이렇게 티어펜지온이 드문 것일까.

그 이유 중 하나를 반려동물 위탁시설 관련 법령에서 찾을 수 있었다. 빈의 반려동물 숙박업체는 신고제가 아닌 허가제로 등록된다. 필요한 조건을 갖춰야만 허가받은 업체로 등록될 수 있는 것이다. 오스트리아 동물보호법령에서는 반려동물 위탁업체에 대한 전제조건을 1) 최소한의 제반시설, 2) 최소한의 공간, 3) 인력, 4) 기록, 네 분류에서 두고 있다. 

오스트리아 반려동물 호텔의 모습. 충분히 산책과 놀이를 할 공간이 마련돼야 영업 허가를 받을 수 있다.

§ 20. 제반시설에 대한 최소 조건

1. 반려견, 반려묘, 기타 동물을 위한 공간은 서로 분리되어야 한다.

2. 단기간, 아픈 동물들은 따로 케어할 수 있는 공간이 적합한 방식으로 확보되어야 한다. 

3. 다른 동물과 함께 있기 힘든 동물을 따로 위탁할 수 있는 공간이 적합한 방식으로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21. 동물이 머무는 공간과 숙소에 대한 최소 조건

1. 동물이 머무는 공간과 숙소는 청결하게 유지되어야 하고, 청소가 용이해야 하며 소독되어야 한다. 매 이용 전 청소가 완료되어 있어야 한다. 

2. 신체적으로 건강하고 다른 동물과 어울릴 수 있는 동물들만 무리에 허락되어야 한다.

3. ‘하임티어아우스바이스’(Heimtierausweis: 반려동물 숙박업자 자격증)과 예방접종증이 있는 사람만이 개, 고양이, 페럿을 인도받을 수 있다. 앵무새를 케어하는 사람은 ‘게순드하잇츠조이그니스’(Gesundheitszeugnis: 건강진단서)를 보유해야 한다. 또한 동물들은 오직 단기간 동안만 개별적으로 머물러야 한다.

4. 아프거나 질병이 의심되는 동물들은 즉시 격리되어야 하고 수의사에게 진료받아야 한다. 병력이 있었던 동물의 경우, 질병 증후가 보이는 모든 경우에 수의사로부터 진료받아야 한다.

5. 위탁시설에 머무르고 있는 모든 동물들은 일정 간격으로 수의사의 검진을 받아야 한다.  

§ 22. 인력

1. 개체 수와 동물 종류에 따라 충분한 수의 전문가와 조수가 동물을 돌봐야 한다.

2. 최소 아래에 해당하는 이 중 2 명 이상 

(1) 동물학, 농업, 생물학에서 동물원 관련 전공 또는 수의학 관련 학사 이상의 자 

(2) 농업 관련 기술학교에서 농축산 또는 숲 관련 전문학교에서 농업, 알프스 농업 교육 또는 농업전문대학(2년제)에서 교육받은 자,

(3) 사육사 양성과정에 합당한 사육사 시험을 통과한 자,

(4) 최소 1년 이상, 살아있는 동물과 관련된 경력이 있거나 동물보호 또는 동물 관리에 대한 교육 이수를 증명할 수 있는 자.

(5) 유럽연합의 규정에 따라 이에 동등한 자격을 갖추었거나 교육일 이수한 자.

§ 23. 티어펜지온의 운영자는 관련 법규를 준수하여야 하고, 기록을 위해 도움인을 두는 것을 허락한다. 전산으로 기록되어도 무관하다.



'생명을 다루는 규제는 엄격해야 한다'는 오스트리아

이외에도 법령은 반려동물 위탁 관리에 관련하여 매우 세세한 부분들까지 규정하고 있다. 반려견 위탁인의 업무 조건에는 산책 시간과 횟수, 사회적 접촉, 최소 면적까지 지정하고 있다. 생후 12주 이상 된 반려견은 최소 하루 10분씩 2회 산책, 생후 16주 이상 반려견은 하루에 15분씩 3회 산책할 수 있어야 하고, 사람과의 사회적 접촉을 보장해야 한다. 무리 동물인 반려견의 특성을 고려하여, 위탁 1주일 이후에는 다른 반려견들과의 무리 활동을 보장해야 한다. 반려견 위탁소는 공간 규정은 최소 6㎡의 공간에서 최대 6마리까지 위탁할 수 있으며, 6마리 반려견의 몸무게가 40kg가 넘어서는 안된다. 5kg 이하 반려견 한 마리 당 1㎡, 5kg 이상은 마리 당 1.5㎡ 넓어져야 한다. 공간의 높이는 최소 2.5m 이상이어야 한다.

오스트리아 반려동물 호텔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자격을 갖춘 인력이, 정기적인 산책을 보장해야 한다.

조항들에서 볼 수 있듯 오스트리아의 티어펜지온은 사람 숙박시설 못지않게 엄격한 기준을 요구하고 있다. 인상적인 부분은 티어펜지온 운영자에 대한 조건이다. 농축산, 수의학 분야 학사 이상 혹은 경력자라는 까다로운 조건은, 동물들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생활여건과 조치들에 대한 전문적인 이해도를 가진 사람에게만 동물 위탁업을 ‘허가‘하겠다는 오스트리아 당국의 엄격한 잣대를 보여준다. 이는 티어펜지온이 단순히 수익창출을 위한 사업으로 규정되고 있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단순히 당국만의 생각은 아니다. 반려견에게 충분한 생활 공간을 제공하고 정기적인 산책을 해줘야 한다는 것은 오스트리아 시민들 사이에서는 상식 중의 상식이기 때문이다.

흔히 반려동물 호텔의 역할을 반려동물을 일정 기간 동안 대신 보호하는 정도로 생각한다. 하지만 반려동물은 무생물이 아닌 살아있는 생명체다. 환경에 따라 질병에 노출될 수도, 예상치 못한 사고의 위험도 높다. 사람과의 높은 교감능력을 가졌기에, 위탁인의 태도에 따라 상처를 받을 수도, 성격이 공격적으로 변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반려견은 아무에게나 맡겨져서는 안된다.

열흘이라는 긴 시간을 지인에게만 의지할 수 없기에 몇 군데의 티어펜지온을 추려보았다. 빈의 티어펜지온들은 대부분 도시 외곽에 위치하고 있다. 시골에 위치하고 있다 보니 반려견들에게는 도시보다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 있어 보였다. 오스트리아의 까다로운 법 때문에 티어펜지온의 수가 적기도 하지만, 빈 반려인들이 반려동물 호텔을 이용하는 것 또한 흔치 않아 보였다. 좋은 티어펜지온을 소개받고자 다른 반려인들에게 물어보았지만, 티어펜지온을 이용해본 사람들을 잘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빈 근교의 시골 펜지온들을 추천하며, 직접 이용해본 것은 아니지만, 좋은 후기를 들었다고 전해줬다. 대부분의 반려인들은 오스트리아 티어펜지온에 대한 높은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수지처럼 점잖은 강아지라면, 며칠 정도는 자기가 맡아 주겠다고도 했다. 서로서로 반려견을 돌봐 주는 것이 빈 반려인들 사이에서 가장 일반적인 방법인 듯 보인다. 여러 선택지가 있겠지만, 아마 이번에는 처음으로 티어펜지온을 이용해보게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사회가 여기는 상식과, 그것을 잘 반영한 제도를 신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지야 미안, 금방 다녀올게!

티어펜지온을 의논하는 남편과 내 옆에서 수지가 모든 것을 알아듣는 듯 동글동글 두 눈을 반짝인다. 수지 없이 가족이 이동하는 일은 처음이라 우리 가족에게도 낯설고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이번 경험이 수지에게도 휴가 같은 시간이 되기를 바라본다.


글·사진 김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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