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람이:동물 그리고 사람이야기' 에 연재된 글입니다.
최근 아기의 돌잔치를 위해 오랜만에 한국을 잠시 찾았다.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과 제도가 과거와는 달라지고 있다는 소식은 멀리서 들었지만, 직접 보고 느껴보니 상상 이상이었다. 한국을 비웠던 5~6년 사이 지방 소도시인 경북 구미에서도 반려견이 많이 늘었다. 20년 이웃인 옆집과 윗집에도 귀여운 반려견을 기르고 있을 정도였다. 대부분이 금지표시이긴 하지만 반려동물을 위한 안내 표지판도 곳곳에서 볼 수 있었고, 시내에 흔하게 보이던 펫샵의 수가 줄어든 것도 긍정적인 변화였다. 아파트 단지에서 산책하는 반려견들의 표정은 밝았다. 반려인들의 손에는 배변봉투가 쥐여져 있었고, 긴 목줄을 한 반려견들은 자유롭지만 안전하게 산책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버려지는 반려동물들도, 구조의 손길이 필요한 곳도 여전히 많다곤 하지만, 잔반을 먹으며 집 지키는 용도로 여겨지던 개가 보살핌과 사랑을 받는 ‘가족’으로 인식이 변화했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남편의 고향인 대전에서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다. 마당에서 키우던 반려견 두 마리가 독극물 테러로 죽은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반려견들은 농약이 든 음식물을 먹고 사망했으며, 범인은 처음 진술에서 호기심 때문이었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려견 두 마리가 중학생이 건낸 샌드위치를 먹고 하늘나라로 갔어요”
[BY 애니멀플래닛] 중학생이 강아지 두 마리에게 장난으로 농약이 든 샌드위치를 건내 죽였다는 주장이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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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향한 독극물 테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번 사건만 해도 반려인이 있는 반려견이었기에 사건이 알려진 것일 뿐, 수없이 많은 유기견이나 길고양이 등은 오늘도 '묻지마 테러'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심지어 뻔뻔스럽게 학대 장면을 SNS에 올리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이라면, 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주장대로라면, 생명을 앗아가는 행위를 가벼이 여기는 인간은 동물보다 나은 것이 무엇일까.
반려인 2/3 "반려견 향한 독극물 테러 우려된다"
오스트리아 신문 '커리어'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반려인 77.3%가 반려견을 향한 독극물 테러를 걱정한다고 한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반려동물 선진국이라고 내가 소개하는 오스트리아에서도 동물에 대한 독극물 테러는 종종 일어난다. 오스트리아 신문사 커리어(Kurier)에서 2018년 545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에 따르면 77.3%의 반려인이 독극물 테러를 걱정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분의 2가 넘는 반려인들이 독극물 테러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은 오스트리아 반려견도 이 문제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음을 보여준다.
길고양이가 없는 오스트리아에서 테러의 희생양은 대부분 반려견이다. 독극물 테러는 쥐약 같은 독성물질, 초콜릿과 같이 반려견에 유해한 음식, 또는 커터 칼 조각 등을 넣은 음식을 집 마당에 던지거나 공공장소에 숨겨두는 방식이다. 고기, 소시지 등 반려견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을 이용하지만, 이는 공공장소를 이용하는 어린아이들에게도 매우 위험한 짓이라 오스트리아 사회의 고민거리다.
독극물 테러가 많은 이들에게 두려움을 주는 이유는 어떤 동물이 피해를 보는지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반려동물에 대한 증오 때문에, 아니면 단순한 호기심으로 반려동물은 죽어야 할지도 모른다. 오늘은 기사로 접한 남의 이야기지만, 뚜렷한 대상을 향한 것이 아니기에 내 반려견 수지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 해맑게 산책하면서 평소 습성대로 흥미로운 대상을 탐색하는 수지를 보면서 마음 한편에는 불안함을 지우기 어렵다.
아무것도 모른 채 천진하게 코를 킁킁대며 산책하는 수지를 보면 불안함이 앞선다. 워낙 잘 먹는 수지이기 때문에 길에서 아무거나 주워먹다 큰일이 날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다.
예측 불가능해서 더 두려운 '독극물 테러'
시민 사회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나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독극물 테러에 반려인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대응은 ‘예방’ 뿐이다. 오스트리아의 동물보호단체에서는 다음과 같은 예방 지침을 안내하고 있다.
1) 최고의 방지책은 반려견이 아무거나 먹지 않도록 교육시키는 것이다. 훈데슐레(Hundeschule · 반려견 학교)에서 교육을 받거나, 안내 책자로 교육법을 익힐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꾸준히 반복적으로 교육해야 한다는 점이다.
2) 산책하는 동안 반려견으로부터 눈을 떼지 마라. 주둥이로 덤불을 헤치거나 어떤 것을 입에 넣지 않도록 주의하라.
3) 간식을 가지고 다니면서 산책 중에 급여하면 (독극물이 담긴 채) 버려진 음식의 유혹을 덜 느끼게 할 수 있다.
4) 반려인들은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는 독극물 테러 경고 지역을 참조해야 한다. 오스트리아 동물보호단체 ‘티어프로인데 외스터가이히’(Tierfreunden Österreich) 스마트폰 앱을 이용할 수 있다. 해당 지역을 지나갈 때는, 입마개를 착용할 것을 권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건 4번 항목이다. 티어프로인데 외스터가이히는 실시간으로 독극물 테러에 대한 제보를 받고, 확인한 다음 배포하고 있다. 독극물 테러가 발생하면 이를 목격한 시민은 SNS, 문자메시지, 이메일 등으로 내용을 제보하고, 제보를 받은 단체는 이를 토대로 시간, 장소, 어떤 방식의 테러였는지 명확하게 파악한 다음 정보를 공유한다. 단체가 공유하는 정보는 구글 지도와 차량 내비게이션뿐 아니라 오스트리아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메신저 서비스인 ‘왓츠앱’(WhatsApp)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를 위협에 반려인과 동물단체가 합심해 대응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오스트리아 동물보호단체 티어프로인데 외스터가이히 홈페이지. 독극물 테러와 관련된 제보를 받고 해당 정보를 홈페이지와 각종 모바일 서비에로 공유해 반려인들에게 전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사람들도 심각하게 여기는 독극물 테러는 얼마나 위중한 범죄로 여겨지고 있을까. 오스트리아의 동물보호법(제5조)은 동물에게 부당한 고통, 해악을 주는 행위, 혹은 심한 공포를 주는 행위를 금하고 있다. 또한 6조에는 이성적인 이유를 제외하고 동물을 사망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어길 경우 벌금형으로는 최고 7,500유로(약 1,000만원), 재적발 시 최고 1만5,000유로(약 2,000만원) 에 해당하는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동물학대 금고형으로는 집행유예에서 최대 2년까지 수감이 선고될 수 있다. 브리딩이나 반려동물을 관리하는 등에 있어서는 엄격한 동물보호법에 비춰 볼 때 독극물 테러로 받을 수 있는 처벌은 비교적 낮아 보인다.
더 안타까운 점은 독극물 테러는 공공장소에서 불특정 다수의 동물을 향한 공격이라 증거를 찾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 범인을 찾기도 힘들다고 한다. 특히 범죄 특성상, 잡히기 전까지 반복적으로 범죄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처벌의 수위를 높이자는 의견도 많다.
오스트리아의 심리치료사 발트라우디 비나(Waltraud Bina)는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동물을 살해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동물 학대자는 반사회적 인격장애(사이코패스)로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감정의 공유, 즉 공감능력이 상실돼 있어 반려동물이 느끼는 고통, 반려인들의 상실감 등을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에 흉악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 오스트리아 동물보호단체 역시 독극물 테러를 병적인 동물 혐오를 가진 사람들의 소행으로 여기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 번 테러를 저지른 사람은 그 행위가 단발성에 그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한국 방송에서 가끔 동물학대 가해자들의 인터뷰를 보게 된다. 왜 그랬냐는 질문에 내가 들은 가장 충격적인 대답은 '재미있어 보여서'였다. 심리치료사 비나의 주장처럼 사이코패스가 아니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더 무서운 것은, 우리 주변에 이런 사람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반려견 교육의 필요성은 이전 글에서 몇 번 언급했지만, 이번만큼은 그 중요성을 몇 배 더 강조하고 싶다. 사실상 할 수 있는 예방조치가 그것뿐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동물에게 이유 없이 고통을 주는 범죄에 대한 처벌도 지금보다 더욱 강력해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