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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The F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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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Eun Feb 12. 2016

The Flight_1

<1> 타이페이로 떠나다

<1>



 그 타이페이 여행. 그 여행이 나를 이토록 바꾸어 놓으리라고는 여행을 계획하면서도, 그리고 그 여행을 시작하고 나서도 예상도, 기대도 하지 못했다.


 그 해 가을, 항공권 예매 어플을 켜놓고, 어디론가 떠나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확실한 날짜도, 정확한 목적지도 없이 그저 괜찮은 항공권이 나온 게 있는지 보고 있던 게 다였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곳이 대만이었다.

 중국은 왠지 별로 내키지 않았고, 홍콩은 그 시기 습하다는 이야기에 열외였고, 일본도 다녀온 적이 있고, 동남아는 원래 별로 관심이 없었던 나에게 '그럼 나 말고 또 어디가 있냐?' 라며 코웃음 치는 듯 대만이 여행지로 결정됐다.


 타이페이에도 여러 개의 공항이 있다는 것도 모른 채 그냥 괜찮아 보이는 항공권을 덜컥 예매했고, 그렇게 이 여행은 막막하게. 그렇지만 물 흐르듯이 시작된 것이다.


 언젠가부터 나의 삶은 그랬다. 치열하지도, 밍밍하지도 않게 물 흐르듯이. 그래서 항상 목표했던 바를 이루는 일이 어려웠다. 그 목표만을 위해 열정을 다하는 일은 적었다. 하고 싶은 게 많았고, 궁금한 일이 많았다.

 이번 여행도 별반 다를 바 없었다. 그냥 여행이 가고 싶어 졌고, 굳이 어디든  상관없었지만, 결국 어쩌다 보니 타이페이로 행선지가 정해졌던 것이다. 열정적으로  그곳이 가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꼭 거기서 보고 싶은 무언가가 있었던 것도 아닌 채로 말이다.


 함께 가는 이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주 친한 친구와 함께 가도 좋았고, 별로 그다지 가깝지 않은 친구와 함께 가도  상관없었을뿐더러 오히려 혼자인 편 또한 나쁘지 않았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건조한 웃음이. 왜 나는 이토록 냉소적인 것도 아닌 따뜻한 것도 아닌 채로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건조한 실소가. 하지만 그 느낌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몇 년째 갈피를 잡고 있지 못하는 삶에 대한 관조적 태도가 이번 여행에도 그대로 투영된 것인가 싶기도 했다.


 친구들을 만나면 물어보기는 했다. 싼 가격의 타이페이행 비행기 표가 나왔는데, 함께 가려는지. 둘이 가면 숙박도 그러려니와 맛있는 것도 여러 메뉴를 시켜 먹을 수 있으니 좋은 점은 분명히 있기에 제안했지만, 설득하지는 않았다. 설득하는 척했지만, 나의 진심은 그렇든 아니든 상관이 없었다. 언제부턴가 따뜻하고, 밝고, 정 많은 사람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있는 참이었다.


 어릴 때는 분명 그랬었다. 밝고 좋은 에너지를 갖고 재잘대며 아픔 따위는 전혀 없는 사람 같은. 뭘 해도 즐거워 보이는 그런 여자였다 나는 분명히. 하지만 20대 후반이 되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친구들의 결혼에 덩달아 급해지지 않은  척했지만, 속으로는 패배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전혀  조급해하지 않는 척, 여전히 20대 초반 때처럼 인기 있는 여자인 척, 당당한 척만 늘어가고 있었다. 여전히 긍정적이고 밝은 사람인 척.


 그래서 밝은 표정으로 타이페이 여행을 제안하며 함께 가자고 설득하는 척했지만, 이렇듯 저렇듯 상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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