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델피아는 미국의 역사가 그대로 살아있는 도시인만큼 갈 곳도 많고 볼 것도 많다. 그 가운데 필라델피아 아트 뮤지엄은 로댕 뮤지엄, 반스 파운데이션과 함께 놓쳐서는 안 되는 멋진 곳이다. 세계적인 예술가들의 작품을 아주 많이 소장한 필라델피아 뮤지엄이지만 특히 토마스 에킨스의 작품들을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다. 토마스 에킨스는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나고 자라 팬실배니아 아트 스쿨을 다녔던 필라델피아 최고의 예술가이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토마스 에킨스의 화보집 첫 장에는 '토마스 에킨스, 필라델피아의 예술가'라고 적혀있다. 에킨스의 작품들은 우선 숫적으로 어마어마했다. 토마스 에킨스가 태어난 집은 필라델피아 아트 뮤지엄에서 머지않은 마운트 버논 스트릿 필라델피아 벽화 센터로 사용되고 있다. 제자였던 아내가 그려준 에킨스의 초상도 있다. 제퍼슨 의과대학의 노교수의 수술 장면을 멋지게 그린 [그로스 박사의 해부학 강의 The Gross Clinic, 1875]로 엄청난 인기를 얻은 에킨스는 1889년에 [에그뉴 박사의 해부학 강의 The Agnew Clinic, 1889]을 완성하는데 역시 에킨스의 가장 유명한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팬실배니아 미술 아카데미 재학 시절 토마스 에킨스의 동기동창생이었던 매리 카셋의 그림들도 한쪽 벽에 전시되어있다. 메리 카셋 [발코니에서 On the Balcony, 1873]
밝고 아늑한 느낌의 전시공간에는 르느와르, 모네, 피사로, 드가 등 따뜻한 느낌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폴 고갱과 폴 세장에게 큰 영향을 끼치며 인상주의의 스승이라 일컬어지는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카미유 피사로의 따뜻한 작품들 참 좋다.
폴 세잔의 [목욕하는 사람들 The Large Bathers, 1900-1906], [사과와 와인잔이 있는 정물화 Still Life with Apples and a Glass of Wine, 1899-79]
빈센트 반 고흐 [해바라기 Sunflowers, 1888,89][까밀 롱랑의 초상 Portrait of Camille Roulin, 1888,89] & [마담 오거스틴 롱랑과 아기 마르셀 Portrait of Madame Augustine Roulin and Baby Marcelle, 1888,89] 고흐의 아를 시절 유일한 친구가 되어 주었던 우체부 조셉 롤랑의 가족들 초상화이다.
에두아르 마네 [에밀 암브레의 초상 Portrait of Emilie Ambre as Carmen, 1880], 앙리 마티스의 [등을 보고 앉은 누드 Seated Nude, Back Turned, 1917]
르느와르 [마드모와젤 라그랑의 초상 Portrait of Mademoiselle Legrand, 1875] & [빨간 러프를 한 소녀 Girl in a Red Ruff, 1884] & [Two Girls, 1893]
발레 소녀들로 유명한 에드가 드가의 조각과 그림, [발레 수업 The Ballet Class, 1880]
파블로 피카소 [앉아있는 여인의 누드 Seated Female Nude, 1908-9] & [새명의 악사 Three Musicians, 1921]
피카소 [보석을 한 여인 Woman with Jewelry, 1901] & [여인의 머리 Head of a Woman, 1901] &
존 싱어 서전트 [앞뜰의 풍경과 여인들 Landscape with Women in Foreground, 1883] & [에덴 부인의 초상 Portrait of Lady Eden, 1906]
이곳은 늦은 시각인데도 사람들이 참 많다. 사람들은 역시 평온한 느낌의 작품들을 좋아하는 것 같다. 바라만 봐도 기분이 좋아지는 조각, 딸아이와 흉내를 내며 한참 웃었다.
마르셀 뒤샹의 가장 유명한 작품 [샘 Fountain, 1950 version of 1917] 은 나 같은 보통사람은 이해하기 힘든 예술세계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한 번쯤은 책이나 방송에서 보았을 법한 작품인데, 창작품이 아닌 이미 만들어진 작품 '레디메이드 readymade'이다. 이미 만들어진 작품이라도 새로운 시각으로 보고 의미를 부여하면 예술작품이 된다는 것이다. 이 작품이 처음 선을 보인 것은 '앙데팡당'이라는 전시회에 출품한 것인데, 남자용 변기에 서명만 달랑해서 출품한 이 작품이 전시회에 합당한 작품이 아니라는 이유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엄청난 반향을 불러있으켰고, 필라델피아에 뒤샹 전시룸에서 가장 사람들이 많이 찾는 작품이 되고 있다. 'R. Mutt 1917' 은 이 변기를 구입했던 욕실용품 샵 주인 이름이었다. 1917은 처음 이 작품을 제조한 해이고, 제목에 '1950 버전'이라고 적힌 이유는 분실한 뒤 새로 제작했기 때문이다. 그 옆에 전시된 [자전거 바퀴 Bicycle Wheel, 1913] 도 레디메이드 작품이다.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Nude Descending a Staircase, No. 21912] 가 걸려있고, 가운데 유리문처럼 된 [총각들에 의해 발가벗겨진 신부 The Bride Stripped Bare by Bachelors, 1913] 은 암만 봐도 난해하다.
마르셀 뒤샹 [Sonata, 1911] 도 좋다. 뒤샹은 프랑스 태생으로 뉴욕에서 줄곧 활동했고, 1955년 미국 국적을 취득했다. 이곳 필라델피아 뮤지엄에 독립된 전시공간을 갖고 있는데 뒤샹의 작품세계는 참으로 다채로웠다. 특히 어두컴컴한 비밀의 공간에 열쇠 구멍으로 들여다보게 만든 작품은 딸아이가 보고서 깜짝 놀랐다. [샘 Fountain]을 비롯한 뒤샹의 작품들은 올해 세계 순회 전시를 위해 이곳을 잠시 떠난다. 우리나라 국립박물관에서도 연말부터 4월까지 전시가 된다고 한다.
뒤샹을 이야기할 때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예술가 살바도르 달리, 달리와 뒤샹은 함께 살며 예술과 삶을 추구했다. 달리의 [삶은 콩으로 만든 보드라운 구조물 Soft Construction with Boiled Beans, 1936] 은 스페인 내전의 참혹함을 상징하는 작품으로 여러 책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작품이다. 초현실주의 화가 이브 탕기의 작품도 유명하다. [폭풍우, 검은 풍경 The Storm, Black Landscape 1926]
살바도르 달리, 이브 탕기와 함께 대표적인 초현실주의 예술가 막스 에른스트의 작품들도 있다. 독일 출신인 에른스트는 나치 억압 당시 페기 구겐하임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망명한다. 이후 페기 구겐하임과 결혼한 사실로도 유명하다. [The Frost, 1923] & [Seashell, 1928]
앤디 워홀이 그린 독일 설치 미술가 요셉 보이스의 초상화도 있다. [요셉 보이스의 초상 Portrait of Joshep Beuys, 1980], 그리고 페르낭 레제는 프랑스 화가로 미국 뉴욕 UN본부 총회 홀 양쪽 벽에 걸린 그림을 그린 화가로 유명하다. 레제는 내년 뉴욕 구겐하임에서 만날 수 있다. 페르낭 레제 Fernand Leger [형태의 대조 Contrast of Forms, 1913-2]
이해는 쉽지 않았지만 참 좋았던 작품들.
페테르 파울 루벤스 [신사의 초상 Portrait of a Gentleman, 1615] & [가족 초상화 스케치 Sketch for a Portrait of a Family, 1632-33]
[비너스의 탄생]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산드로 보티첼리 sandro Boticelli의 [Portrait of a Young Man, 1465-70]
로뎅 [Napoleon Wrapped in his Dream,1904-1909], 인물을 조각할 때 누드를 먼저 조각한다고 하는 로뎅의 두 번째 나체 조각으로 제목은 [St. John the Baptist Preaching, 1878]. 하지만 작품 제목과 달리 이 모델은 성직자와는 전혀 무관한 농부였다고 한다.
로댕의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절망 Despair, 1890] 은 다른 버전들이 있다. 특히 이 작품은 로댕이 심혈을 기울였던 [지옥의 문 The Gates of Hell]의 오른쪽 손잡이에 있던 여인의 포즈이다. 그리고 얼굴만 있는 조각은 '까미유 끌로델'을 모델로 한 작품으로 제목은 [사색 Thought, 1886-89]이다.
일본관, 그리고 한국관에 전시되었던 우리나라 예술가의 작품들
다양한 전시들이 많다.
해도 해도 끝이 없을 것 같은 뮤지엄 구경을 마치고 기프트샵으로 왔다. 이곳도 역시 구경할 것이 많다.
밖으로 나가서 록키가 뛰어내려 갔던 계단을 뛰어 내려가 록키 동상을 보고 호텔로 돌아왔다. 너무 볼 게 많고 놓치고 싶지는 않은 마음에 쉴틈 없이 잰걸음으로 다녀야 했다. 나중에는 다리가 좀 아파왔지만 그 어느 뮤지엄보다 많이 보고 느끼고 배운 것 같아 마음이 충만하고 감사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