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 어린 칭찬의 힘

by 진솔

그렇게 책을 안 읽어오는 아이는 처음이었다. 형과 동생을 연달아 수업하는데 동생이 그랬다. 원래는 동생 먼저 수업하고 형을 나중에 했었는데 형 수업하는 동안만이라도 책을 읽게 하려고 수업 순서도 바꿨다.


수업 시간에도 집중을 하도 못해서 한 번은 물어봤다.


“유찬아(가명), 선생님 하고 수업한 다음에 다른 과외도 한다고 하지 않았니? 그건 수업 시간이 어떻게 돼?”

“두 시간이요.”

“그래? 선생님 하고 수업하는 시간보다 훨씬 더 긴데 그건 괜찮아?”

“(...)그 선생님은 무서워요.”


예상치 못한 대답에 웃음이 터져버렸다. 유찬이가 말했다.


“선생님하고 수업은 힐링이에요.”


힐링은 무슨, 만만한 거지 이 녀석아. 그런데 이 아이를 도저히 미워할 수가 없다. 너무 귀엽게 생겼기 때문이다. 자기도 자기가 귀여운 걸 아는 눈치다. 열 살 남자아인데 머리는 단발처럼 길고 쌍커풀 진 눈이 엄청 크다.


그런데 얼마 전 내가 진심으로 유찬이한테 놀란 일이 생겼다. <암탉 한 마리>라는 책으로 수업하는 날이었다. 유찬이네 집에 가서 형 수업하는 동안 책을 읽으라고 시켰다. 유찬이는 곧 소파에 누워 시큰둥한 표정으로 책을 보기 시작했다. 오늘도 벼락치기 하는 구만, 하면서 잠시 뒤 유찬이에게 책 내용을 물었다. 그런데 상당히 정확하게 책의 내용을 파악하고 있었다.


≪암탉 한 마리≫ 표지


아프리카 가나의 '콰베나 다르코'라는 실존 인물에 관한 이야기였다. 콰베나 다르코가 암탉 한 마리를 사서 부를 일궈나가는 과정이 나온다. 나는 암탉 한 마리를 산 일, 대학에 진학해 농업을 연구한 일, 은행장을 설득해 돈을 빌려 큰 농장을 세운 일, 농장 직원들에게 돈을 빌려준 일 등 인물이 한 일 중에 가장 잘한 일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유찬이에게 물었다.


유찬이는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빌려준 일이라고 했다. 자기만 성공한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꿈을 이룰 수 있게 도와준 일이 가장 잘한 일이라는 거다.


“지구에는 혼자 사는 게 아니고 같이 살잖아요.”


이 뺀질이가 이런 생각을 하다니! 나는 감격했다. 유찬이는 독서감상문도 썼는데,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닌 같이 사는 것이다. 나도 사람을 도우며 콰베나 다르코처럼 영웅이 되고 싶다."고 썼다.


"유찬아! 유찬이가 그런 생각을 했구나!"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양된 목소리로 자기 이름을 불러대는 나를 보고 내가 진심으로 자기 생각을 높게 평가한다고 느꼈던 것 같다. 나는 유찬이와 헤어지기 전에 "선생님은 유찬이가 글도 잘 쓰고 정말로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라고 했는데 그건 아이를 어르기 위한 빈말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유찬이는 그 다음 주에 스스로 책을 읽어왔다. 그리고 수업 집중도가 현격히 높아졌다. 수업 마지막에는 웬일로 쓰기 싫다고 안 하고 군소리 없이 열의를 갖고 글을 썼다. 진심 어린 칭찬의 힘이 이렇게나 세다는 걸 깨달았다.




≪암탉 한 마리≫ 삽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