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린에 관한 영화, <비커밍 아스트리드>
영화 <비커밍 아스트리드>는 아이와 함께 하는 삶을 긍정하게 만드는 영화다. 유부남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출산한 아스트리드는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아이를 위탁가정에 맡긴 채 회사에 다닌다. 주말마다 열네 시간 떨어진 곳으로 아이를 보러 다녔는데 나중에 위탁가정에서 더 이상 아이를 키워줄 수 없다고 하자 아이를 혼자 사는 집으로 데리고 온다.
하지만 보모가 엄마인줄 알던 아이는 아스트리드를 낯설어 한다. 어렸을 때부터 동생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며 작가로서의 재능이 비어져 나왔던 아스트리드는 아이와 가까워지기 위해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 이야기 중 하나가 ‘말괄량이 삐삐’다. 아스트리드에게 아이는 거의 모든 것이었다. 아스트리드는 아이와 눈을 마주치고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아이를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로 대한다.
영화를 보고 나의 육아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 이 영화를 봤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기가 태어나고 이삼 년 정도... 도무지 살고 싶은 대로 살 수가 없었던 나는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먹고 싶을 때 먹지 못했고 자고 싶을 때 자지 못했고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 가지 못한 적이 많았다. 아이가 우는 소리에 귀를 막았고 아이와 둘이 낮에 집에 있을 때 소서 소리를 들으면 목이 막힌 듯 갑갑했다. 폐인 같은 행색으로 목적지도, 목적도 없이 유모차를 끌고 동네를 돌아다녔다. 어느 날은 버스 정류장 벤치에 앉아 울었다. 하필 그 시각에 수리공이 정류장 천장을 고쳐야 한다며 나가달라고 해서 유모차를 끌고 다니면서 눈물을 흘렸던 날이 떠오른다.
나는 아무것도 이룬 것 없는 상태에서 아이를 낳아 아무 것도 못하며 도태되는 중이었다. 뭔가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아이를 기르는 일로 발목이 잡힌 듯했다. 까만 눈동자에 새하얗고 피부가 찹쌀떡 같이 쫀득한 아이는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아이와 함께 하는 삶에 기쁜 마음으로 머무르지 못했다.
아직 늦지 않았다고, 밖으로 나가서 너 자신을 실현하고 성공하라는 말들은 이상하게도 육아 중인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지 못했다. 나는 나의 삶과 아이를 분리해내려고 했다. 아이가 있지만 아이와 분리된 나만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나에게 필요했던 이야기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었던 것 같다. 아이와 함께하는 너의 삶을 소중히 여겨라, 그 삶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알아야 한다, 라는 내 삶을 긍정할 수 있게 하는 이야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아이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이야기를 지었던 아스트리드는 아이와 동화되는 삶을 살았다. 아이와 숲속을 산책하고 아이에게 먹일 스프를 끓이고 아이와 함께 재밌는 얘기를 하며 웃었다. 밖으로 나가 사회적 성취를 이루는 것도 멋지지만 그런 삶도 충분히 행복하고 가치있다는 것을 영화 <비커밍 아스트리드>를 보면서 깨달았다. 아이와 함께 하는 삶을 더욱더 사랑하고 싶다. 내 삶을 점점 아이와 어울리는 삶으로 꾸려나가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