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 뒷차가 내 차를 박았다. 고개를 돌려 카시트에 앉아 있는 아이에게 괜찮냐고 물었더니 아이는 의외로 아무렇지 않은 듯 괜찮다고 했다. 신호 대기 중 정차를 하고 있던 상태에서 박은 거라 아주 큰 충격은 아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뒷차 운전자는 사고를 낸 뒤 한참을 밖으로 나오지도 않고 가만히 있었다. 갑자기 화가 솟구쳤다. 나는 문을 열고 나가 뒷차 운전석 앞에서 소리쳤다.
“아니 차를 박았으면 나와서 사과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지금 저희 아이도 차에 타 있었다고요!"
뒷차는 택시였다. 예순 즈음의 아저씨가 운전석 문을 열고 나왔다. 그런데 아저씨가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다급하게 내뱉은 첫말이 무척 당황스러웠다.
“제가 원래 택시하던 사람이 아니고요. 교수였는데. OO대학교 OO과 교수였거든요."
사과를 요구하는 나에게 아저씨는 자신의 이력을 말하고 있었다. 자신이 교수였다는 말에 이어, 어느 고등학교, 어느 대학을 나왔으며(명문고에 명문대학교), 국회의원 출마도 했었다고 했다. 자신의 이력을 죽 나열한 뒤 아저씨는 브레이크를 제대로 안 밟은 것 같다며 그제서야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다. 덕분에 나는 도로 한복판에서 내 차를 박은 아저씨의 모든 이력을 알게 되었다.
아저씨가 나온 고등학교는 공교롭게도 내가 잘 아는 학교였다. 내가 졸업한 학교와 가까웠고 내 사촌동생, 중학교 동창들이 다녀서 가본 적도 있었다. 갑자기 아저씨가 낯설지 않게 여겨졌다. 어쩌면 그 순간, 이 아저씨도 역사가 있는 ‘한 인간’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같다. 하지만 그것뿐이었을까? 화가 묘하게 가라앉고 아저씨에 대한 인상이 바뀐 이유 말이다. 아저씨는 택시 운전사로 일한지 얼마 안 되었다고 했다. 나는 그때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아, 이 아저씨는 ‘그냥 택시 운전사’가 아니었구나.
차는 뒷범퍼가 좀 깨져 있었다. 택시회사 소속 운전사였던 아저씨는 회사에서 보험처리를 해줄 거라고 했다. 아저씨는 입사한지 얼마 안 돼서 그런데 잘 봐달라는 말도 했다. 무리한 보험 청구를 하지 말아 달라는 뜻이었으리라. 아저씨와 나는 연락처를 교환하고 헤어졌다.
집에 돌아가서 카톡 창을 여니 아저씨가 친구 목록에 떠있었다. 아저씨의 이름과 카톡 프로필 사진을 봤다. 아저씨의 말은 진짜였다. 아저씨가 국회의원에 출마했을 당시 선거운동 하던 사진이 프로필 사진에 있었다. 아저씨가 OO대학교 교수였다고 한 게 생각나 호기심에 아저씨 이름과 OO대학교를 검색해봤다. 진짜였다. 아저씨가 그 학교 교수진 명단에 있었다.
아저씨는 왜 처음 본 사람에게 자기 이력을 말한 걸까? 그리고 나는 아저씨의 이력을 듣고 왜 태도가 변했을까? 생각해보면 그 상황에서 자기가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같은 얘기를 하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 아닌가.
제가 교수였거든요. 제가 명문대를 나왔거든요. 어쩌면 아저씨의 그런 이력들은 일종의 무기 또는 방패(?)였던 것 같다. 자신에게 화가 난 사람, 자신을 무시하는 사람의 공격을 막을 때 쓰는. 아저씨는 내가 자신을 택시 운전사로만 판단할까봐 두려웠던 걸까? 아니면 억울했던 걸까. 자신은 더 대단한 사람인데. 사회적 지위가 높았던 사람인데.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지만 우리나라는 사회적 지위로 사람을 판단하는 사회니까.
나 또한 아저씨가 달리 보였다. 아저씨의 엉뚱한 대처는 효과가 있었다. 유교의 ‘사농공상’, 직업에 대한 귀천의식...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지만 나 또한 직업에 귀천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얼마 전 별세한 홍세화씨의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라는 책을 읽어 보았다. 홍세화씨가 빠리에서 택시 운전을 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 프랑스 사회와 한국 사회의 다른 점 등에 대한 소회가 담긴 책이다. 무려 95년에 출간된 이 책에서 비판했던 한국 사회의 모습은 아직도 여전하다. 한국에서 택시 운전을 하는 게 빠리에서보다 더 고된 이유에 관한 책의 한 구절이 있다.
“(빠리 사람들은) 택시운전사를 택시운전사로, 즉 그대로 인정했다. 이 말은 택시운전사인 내가 택시운전을 잘못할 때는 손님의 지청구를 들을 수 있으나 택시운전사라는 이유 때문에 업신여김을 당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간혹 건방을 떠는 손님에게 오히려 공손하고 친절하게 대하면 그는 곧 수그러들었다. 더욱 기고만장하여 나를 깔아뭉개려고 하지 않았다. 건방을 떨거나 치근대는 손님을 만난 한국의 택시운전사가 오히려 속으로 ‘좋은 게 좋다’하고 곱게 받아주거나 혹은 참고 넘어갈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한국의 택시운전사들은 아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홍세화,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중(p138-139)-
그래서였을까? 격앙된 내게 아저씨가 반사적으로 자신이 ‘그냥 택시 운전사’가 아니라고 한 것은. 그러나 사실은, 내 차를 박은 그 택시 아저씨야말로 택시 운전사를 폄하하는 사람이다. 그 아저씨는 택시 운전을 해서 먹고 사는 게 아니라 자신이 과거에 교수였다는 사실을 먹고 사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그 아저씨가 자기 이력을 늘어놓을 때 나 또한 “아 네, 그러시구나.” 할 게 아니었다. 이렇게 대답하는 게 맞았다.
“아 네, 그래서요?”
*다음Daum 지식토스트에 연재한 글입니다.
https://v.daum.net/v/yBZkT4N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