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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May 09. 2023

선생님, 주식으로 돈 버는 건 나쁜 거예요?

노동하지 않고 생기는 소득은 다른 사람이 땀 흘린 노동의 대가를 가로채는 것과 다름없어요.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이 가난하지 않은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OOO(작가 이름)-


문제는 이 문구였다. 초등학교 4학년 아이들과 수업할 동화책의 첫머리에 이렇게 작가의 말이 적혀 있었다. 작가가 책 첫머리에 작가의 말을 부러 집어넣었다는 것은 그만큼 강조하고 싶다는 뜻이리라. 두 번째 문장은 누구나 동의하는 문장일 것이다. 하지만 첫 번째 문장이 걸렸다.


‘노동하지 않고 생기는 소득’은 말 그대로 ‘불로소득’이다. 국어사전에서는 불로소득을 ‘직접 일을 하지 않고 얻는 수익, 이자, 배당금, 지대 따위를 통틀어 이른다’고 정의하고 있다. 즉, 은행 예금 이자는 불로소득이다. 건물주가 임대료를 받는 것도 불로소득이고, 주식 배당금 받는 것도 불로소득이다. 범위를 넓혀 극단적인 불로소득의 예를 들자면, 조직폭력배가 상인에게 자릿세를 걷는 것,거지가 구걸해서 번 돈도 모두 불로소득에 속한다. 불로소득의 범위는 넓고 다양하다.  


작가가 말하는 불로소득이란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불로소득, 예금 이자, 주식 소득, 임대료 등을 뜻하는 걸 거다. 작가는 불로소득을 다른 사람이 땀 흘린 노동의 대가를 가로채는 올바르지 못한 돈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불로소득이 136조인 사회에서 누가 땀 흘려 일하고 싶겠나. 불로소득이 불평등을 심화한다. 불로소득이 나라 경제 망친다. 언론에서는 연일 불로소득의 문제점을 언급한다. 맞다, 문제가 있다. 심각하다. 이런 문제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게 아니다.


그런데 한편 지금 사회는 재테크 열풍이다. <세이노의 가르침>이라는 재테크 관련 서적이 몇 주 전부터 부동의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공공도서관에서는 장서불균형 심화로 더 이상 재테크 관련 희망도서 신청을 받지 않겠다고 한다. 주식이나 부동산, 가상화폐 등 투자 가이드를 자처하는 유튜버들이 구독자 몇십만 명을 이끌고 있다.


이러한 사회의 흐름 속에서,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불로소득은 나쁜 것이니 너희는 불로소득 얻으려고 생각지 마라. 땀 흘려 번 돈만 얻도록 해라.”라고 하는 것은 과연 올바른 교육일까?


책은 <전우치전>의 ‘한자경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동화였다. 전우치가 가난한 한자경에게 매일 한 냥씩 받을 수 있는 족자를 주는데 어느 날 한자경이 족자 속 고지기에게 백 냥을 가불해달라고 한다. 고지기가 안 된다고 해도 한자경은 물러서지 않고 결국 족자 속으로 들어가는데, 한자경이 족자 속으로 들어가 훔친 돈은 알고 보니 임금의 돈이었다. 한자경은 임금에게 곤장 백 대를 맞고 겨우 족자 밖으로 나오게 된다.


책 속 주인공 아이도 우연히 낯선 아저씨한테 족자를 받고 그 족자에서 날마다 만 원을 받는다. 받은 만 원으로 좋아하는 여자아이에게 줄 선물을 사거나 먹고 싶은 젤리를 사거나 하면서 돈을 쓴다. 그러던 어느 날 한자경처럼 아이가 족자에게 만 원이 넘는 돈을 요구한다. 아이도 족자 속으로 들어가게 되고 그동안 족자에서 받아왔던 돈의 출처를 알게 된다.


아이가 족자에게 받은 돈은 엄마, 아빠, 이웃의 돈이었다. 아이는 주변 사람들의 돈을 훔친 것과 다름 없었다. '노동하지 않고 생기는 소득이 다른 사람이 땀 흘린 노동의 대가를 가로채는 거'라던 작가의 말과 일맥 상통하는 부분이다. 왜 하필 족자에서 나온 공돈이 주변사람들의 돈이었던 걸까? 한자경이 백성들은 가난하고 임금만 부자였던 시절 임금의 돈을 훔친 것과는 완전히 다른 얘기였다. 임금의 재산은 백성을 수탈한 결과였기 때문이다.


작가는 불로소득을 얻는 것이 주변 사람들의 돈을 훔치는 것과 같다고 말하고 싶었던 걸까? 작가가 아이들에게 불로소득에 대한 죄책감을 심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로소득만을 바라고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태도는 분명 잘못된 것이다. 그렇다고 그게 바람직하지 않으니 너희는 아예 불로소득을 창출하지 마라? 는 또 아니다. 그건 시대착오적이고 무책임한 발언이다. 작가의 말은 금융에 대한 객관적이고 올바른 태도를 가져야 하는 아이들에게 잘못된 편견을 심어줄 소지가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수업 막바지에 한 아이가 이런 질문을 했다.


"선생님, 그럼 주식으로 돈 버는 건 나쁜 거예요?"


나는 아니라고 했다. 주식으로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경제 상황을 파악하고 투자하려는 회사의 성장을 예측해야 하는데 그것도 분명한 노력이라고 했다. “아, 네” 아이는 수긍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 부모님도 주식을 한다. 애초에 주식 시장의 존재 이유가 기업에 사업 자금을 공급하고 주식으로 기업의 소유권을 분산시키는 것 아닌가. 작가의 바람대로, “정직하고 성실한 노동자가 가난하지 않게” 되려면 정직하게 돈을 모아서 주식뿐 아니라 좋은 투자처를 찾고 자산을 만드는 게 이 시대에 현명한 일 아닐까? 금융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 자산이 많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과 영국에선 중고등학교 정규 교육 과정에 금융 교육을 포함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정규 교육과정에 금융 교육이 포함되어 있지 않고 우리나라 청소년의 금융 이해력 수준은 계속 낮아지고 있다고 한다.


나는 아이들이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현명하게 자기 길을 개척해 나갔으면 좋겠다. 금융 지식을 쌓는 것도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한 방법이다. 방점은 영리하게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면서도 더불어 살아가고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는 것에 찍혀야 한다. 한 아이가 작가의 말에 대한 질문을 했고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아이가 질문을 던져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편했던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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