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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Sep 08. 2023

사우나에서

사우나는 인내심의 실험장이 아닙니다. 무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Sauna is not a laboratory of patience.



첫 문장만 언뜻 보고는 청소하는 사람이 사람들이 하도 진상짓 해서 열받았나 했는데 끝까지 읽어보니 그 말이 아니었다. 나는 ‘사우나는 내 인내심의 실험장이 아닙니다’로 읽었던 거다. 사우나에서 바닥에 땀이 뚝뚝 떨어지는데 이를 악물고 버티는 할머니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사우나에 너무 오래 있지 마세요’를 이렇게 쓰다니... 사우나 이용 수칙 안내문이 오늘 내게 깨알 같은 웃음을 줬다. 


사우나에 가기만 하면 마주치는 여자가 있다. 그 여자도 나를 알아보는 눈치다. 나보다 나이가 조금 많을 것 같은데 그건 내 착각일 수도 있다. 모르는 사인데 하도 보니 아는 사이처럼 느껴진다. 가족이 아닌 타인 중에 요즘 가장 자주 보는 사람인 것 같다.


친하진 않은데 자꾸 보게 되는 사람이 시기별로 있는 것 같다. 요즘엔 사우나의 그 여자고, 몇 개월 전까지는 예전 헬스장의 한 여자 트레이너였다. 나는 다른 트레이너에게 피티를 받았고 사실 그 여자 트레이너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하지만 자주 마주치니 어느샌가부터 서로 인사를 하게 됐고 헬스장을 그만 둘 때는 그 트레이너에게 그만둔다는 얘기를 해야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왠지 오버인 것 같아서 관뒀다. 


얼마 전 사우나 건물 엘리베이터에서 사우나의 그 여자를 만났는데 아는 척 할 뻔했다. 맨날 알몸인 것만 보다가 옷을 입은 걸 처음 봤는데 그 여자도 내가 옷 입은 걸 보고 흠칫 놀라는 것 같았다. 


두 번째로 옷 입은 모습으로 마주친 건 사우나 카운터에서였다. 키를 반납하는데 그 여자가 카운터의 젊은 남자 직원한테 뭐라고 얘기한 뒤 "수고." 하며 급하게 자리를 떴다. 그 남자 직원과 친해보이지는 않았다. 남자 직원은 다른 손님에게도 그리 하듯 사무적 존대를 하는데 그 여자만 일방적으로 반말을 했다. 


그냥 젊은 사람한테 친근하게 반말하는 스타일인 듯. 나랑은 안 맞을 듯. 혼자 생각했다. 탕에서 자꾸 눈이 마주쳐서 말을 터야될 것 같은 무언의 압박을 느끼지만 앞으로도 계속 모르는 사이로 남아야겠다는 사소한 다짐을 했다. 모르는 사이인데 혼자 이러니 저러니 마음 먹는 것도 웃기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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