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트의 아트마켓 33
작품의 진위 감정에 대한 막강한 권위를 갖고 있는 기관들의 판정으로 인해 종종 논란이 일기도 한다.
마르크 샤갈(Marc Chagall)은 러시아 출신으로 작품 활동의 대부분을 프랑스에서 활약한 현대미술의 선구자로 일컬어지는 거장이다. 화려한 색채와 다양한 사조를 넘나드는 그의 아름다운 작품들은 미술을 사랑하는 많은 컬렉터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어왔다. 하지만 그만큼 위작도 많이 만들어졌는데, 전문가들에 따르면 특히 위작이 많이 거래되는 러시아에서는 아트 마켓에 나오는 작품의 90% 정도를 위작으로 볼 수 있다고 한다.
샤갈의 진작을 최종 판단할 수 있는 유일한 권위 기구는 프랑스의 샤갈위원회(the Chagall Committee)이다. 샤갈위원회는 샤갈의 두 손녀가 주축이 되어 운영하는데, 샤갈의 '저작인격권(droit moral; moral rights)'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다.
저작인격권에 대해서는 지난 호에서도 아래와 같이 소개한 바 있다. 저작인격권은 작가의 인격권이 그 작품에도 이어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베른협약의 정의에 따르면 저작인격권은 저작권의 재산권과 독립된 권리로, 재산권이 양도된 후에도 창작자가 작품의 저작자임을 주장할 수 있다. 또 작품과 관련해 작가의 명예와 평판에 해가 될 수 있는 왜곡이나 수정, 또는 훼손이 되는 모든 행위에 반대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3월 3일자 케이트의 아트마켓 2편 참조).
세계 각 국가들은 저작권을 포함한 지적재산권에 대해 조금씩 다른 법적 체계를 마련하고 있기 때문에 위작으로 인한 작가의 저작권 침해에 대한 대응도 상이하다. 특히 저작인격권을 중요시하는 유럽에서는 위작에 대한 처결이 보다 엄중하게 내려진다.
지난 2014년 영국의 한 컬렉터가 자신이 소유한 샤갈의 유화 한 점을 프랑스의 샤갈위원회에 감정을 의뢰했다. 소유자가 1992년 러시아의 유명 경매회사에서 일하던 아트 딜러에게서 10만 파운드(한화 약 1억 6천만 원)에 구입한 이 작품은 샤갈위원회로부터 위작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이후 위원회가 위작을 파기하기로 결정했고, 법원도 이를 승인했다. 프랑스 법률에 따르면 위작은 판사 앞에서 파괴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소장자는 그림이 위작이라 해도 자신의 자산이므로 돌려받기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시스템적으로 작품의 진위성을 최종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 기구를 마련한 체계는 분명 그 장점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판단에 이견이 있는 경우에는 대응이 어렵다는 단점도 존재한다. 더구나 다음의 사례와 같은 일이 발생한다면 위작의 파기 결과는 더 심각할 수 있다.
Photo: Uncle Alf via Wikimedia Commons/Public Domain.
2013년 반 고흐 미술관(Van Gogh Museum)이 새롭게 고흐의 작품으로 판명된 '몽마주르의 석양(Sunset at Montmajour)'을 공개했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는 네덜란드 출신으로 후기 인상주의의 대가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작품이 100여 년 동안 위작으로 간주되어 소유주의 다락에 처박혀 있었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이번에 작품을 고흐의 진작으로 확인 감정한 반 고흐 미술관이 바로 1991년 같은 작품을 위작이라고 감정했었다는 사실이 더욱 흥미롭다.
재감정을 마친 미술관은 20 년 동안 작품을 감정하는 기술이 빠르게 발달하여 새로운 조사와 과학적 분석 방법으로 이 작품이 고흐의 진작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로써 노르웨이 소장자의 다락 한 구석에서 먼지로 뒤덮여 잊힐 뻔한 대가의 작품이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다.
만일 미술관이 20년 전 위작으로 판정한 그림을 파기했더라면 고흐의 작품을 없애버리는 처참한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위작의 파기는 위작이 아트 마켓에 재진입하는 것을 막기 위한 처사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컬렉터들이 작품의 진위 감정을 망설이게 하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다. 그들의 재산적 권리 관점에서 보면 위작의 판매자로부터 구매 금액의 환급이나 배상을 받으려 해도 위작을 돌려주지 않으면 어려워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컬렉터들이 작품의 감정을 꺼리게 되면 아트 마켓에 위작이 유통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커지게 된다. 위작의 파기는 가짜의 아트 마켓 재진입을 어떻게 해서든 막아보려는 조처 중 하나이다. 하지만 소장자의 의사를 이처럼 철저히 무시하고 굳이 강제적으로 파기하는 것이 그리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위작의 시장 재진입을 막기 위한 방법은 파기보다는 덜 극단적인 조치로도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나머지 이야기는 다음 호에 이어 가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