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착관계에서 더 나아간 작은 사회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하니, 정말 그야말로 걷지도 못하는 아가들을 육아하던 시절이 언제였나 싶다. '분리불안'이라는 것을 걱정하며 엄마 몸에 붙어 있던 아이가 점점 기고, 걷고, 뛰며 엄마에게서 멀어져 가는 시간들을 지나왔다. 나의 친정어머니는 한국에서 그래도 여자들에게 최고의 직업이라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셨지만, 엄마가 나를 낳던 시절에는 지금처럼 복지가 좋지 않았다. 3개월 만에 다시 학교로 복직을 하신 엄마를 대신하여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그 애착관계가 되어주셨다. 어렸을 때는 몰랐지만, 커서 나의 성격과 함께 성장과정을 돌아보니 나의 '애착관계'가 그다지 단단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일찍부터 성당을 다닌 덕에, 종교적으로 의지할 수 있었던 것도 그나마 도움이 많이 되었던 것 같다. 워킹맘이 쉽지 않다는 걸, 지금 엄마와 같은 과정을 겪으면서 '아.. 그때는 엄마도 그런 사정이 있었구나...'라고 생각을 하는 것이지, 사실 내가 어렸을 때는 우리 부모님은 나보다 자기 인생이 더 먼저인 사람으로 늘 머릿속에 그려져 있었다. 주말이면 테니스나 골프 나가시기에 바빴고, 대화가 많이 부족했던 탓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는 나는 꼭 일을 관두고 내가 아이들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다. 남편의 외조 덕분에 그래도 나는 두 아이를 큰아이는 만 4세 둘째 아이는 만 2세가 될 때까지 내 손으로 키울 수 있었고, 그 사이에 아이들과 돈독한 관계를 쌓아 나갔다. 이 주춧돌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며 지금은 다시 일을 하고 있지만, 만나는 시간이 짧아지면 짧아질수록 관계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 부부는 'family-oriented(가족중심적)'인 편이라, 쉬는 날이면 늘 가족들이 다 같이 하는 일을 찾는 편이다. 모든 사람이 각각 다른 성장배경과 성격을 가지고 있겠지만, 어려서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가족문화에서 자란 나로서는 내가 결핍이라고 느꼈던 것들을 충족시켜 줄 만큼 참 행복한 문화이다. 그리고 이렇게 엄마와 아빠의 관심과 사랑 속에 자란 아이들은 밝고 자신감이 넘친다.
엄마와 아이와의 관계는 1:1이지만, 가족은 그야말로 작은 사회생활이다. 아들과 아빠, 딸과 아빠 또는 남매 사이의 관계에서도 울고 웃을 때가 있고 그때마다 다 같이 해결해 주려고 노력하다 보니 관계가 돈독해지는 것을 느낀다. 분명 내가 어렸을 때와는 좀 다른 대중적인 이미지 일 것이다. 내가 어린 시절에는 아빠는 퇴근 후 집에 들어와 신문이나 뉴스를 보고, 엄마는 밥을 차리며 아이들은 공부하고 있는 그런 가족의 모습을 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현재의 가족은 아빠와 엄마는 서로 오손 도손 식사를 준비하고 같이 차를 마시며 아이들도 그 주변에서 놀고 있다. 이런 '다 함께'하는 문화에서 아이들은 더 단단한 소속감을 느낄 수 있고, '가족'이라는 안정감 있는 울타리를 매일매일 느낄 수 있다.
내가 일을 나가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아이들에게 엄마가 일하러 가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었다. 둘째는 너무 어렸지만, 최소한 첫째는 엄마가 회사에서 돈도 벌고 공부도 한다고 이해하고 있었다. 그 돈을 벌어서 우리 맛있는 거 먹고 좋은 곳 놀러 갈 수 있다고 설명하니 간단하게나마 엄마가 나가는 이유를 알아주었다. 그리고 일이 끝나고 돌아오면 아주 많이 반가운 느낌을 표현하고 일하는 동안 너무너무 보고 싶었다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퇴근이 늦어 아이들이 자고 있으면 어쩔 수 없지만, 거의 매일 잊지 않고 지난 2년간 이렇게 하다 보니, 내가 걱정했던 것보다는 훨씬 덜 아이들과 멀어졌다.
얼마 전 장경화 바이올리니스트의 인터뷰 비디오들을 보다가, '일'과 '가족' 그 어떤 것도 잡지 못했다고 이야기하는 인터뷰를 보았다. 매사에 완벽을 기하는 분이기에 그 기준에는 분명 어떤 것도 잡지 못했다 하실 것이다. 나 역시도 내가 꿈꾸는 자녀교육의 이상향이 있기에 공감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지금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믿는다.
가족에 대한 믿음은 비단 부모가 아이들에게만 주는 것이 아니다. 아이와 함께 소통하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면서 부모도 살아갈 힘을 얻는다. 내가 가장 고심하는 과제 중 하나는 아이의 연령대에 맞에 어떻게 잘 풀어 설명을 할 것인지에 대한 것이다. 부부 사이처럼 어른대 어른이라면 솔직하게 상대방을 존중하는 말투로 문제를 이야기하고, 감정을 표현하고 잘 해결해 나갈 테지만.. 아이의 입장이라면 어른이 아니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아야 할 것이다. 모두들 사랑과 존중은 가정에 당연히 필요하다고 알고 있지만, 그것을 실천하기가 어렵다고 들 한다. 그 실천은 서로가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의 표현이 첫 발걸음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2년간 워킹맘으로서 아이들과의 애착관계를 여전히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올 수 있었던 힘도 역시 '소통'이었다.
내가 투자하는 것이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사업이든, 직업이든.. 하루라도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처럼 가정도 마찬가지이다. 부부의 관계, 자녀와 나의 관계도 엄마가 노력하지 않으면 돈독해 지기 어렵다. 가정도 매 순간 돌봄이 필요하다. 특히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우리 아이들은 그 변화에 맞추어 배려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엄마가 아이들을 잘 관찰하고 아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소통하며 매일매일 사랑을 전한다면 아이들 역시 엄마가 정성껏 돌보는 가족을 함께 돌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통과 함께 중요한 것은 '참여'이다. 첫아이가 만 5세가 넘어갈 무렵부터 집안일에 작게나마 동참하고 있다. 아침에 토스터기를 이용해 가족들 토스트를 굽는 다던지, 동생의 영어를 가르치는 일이다. 요즈음에는 제법 잘해서 다른 일들도 함께 하고 있다. 아이들이 참여하는 행위는 가족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의 일환이다. 즐겁게 놀이처럼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다면 모두가 즐거울 것이다.
어린 시절의 상처를 회복하고 아이를 낳고는 오히려 친정엄마와의 관계도 더욱 돈독해졌다. 엄마 역시도, 내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모르고 계신 부분도 많았다. 말씀은 안 하셨지만, 엄마 스스로 속상하셨던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모든 이에게 엄마가 필요하다는 말처럼, 내가 우리 가족을 위해 정성을 쏟을수록 나 역시도 의지할 엄마가 필요하다. 좋은 관계는 대대손손 가정을 행복하게 하는 것 같다. 내 아이가 정말 좋은 인생을 살기 위해서 좋은 학교를 보내고, 돈을 잘 벌 수 있게 해 주는 것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더 중요한 것이 가족에 대한 애정과 믿음이다. 인생을 살다가 힘들고 지치는 순간이 올 때도 늘 기대고 쉴 곳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그 인생을 다시 살아가게 끔 하는 힘의 원천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