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아닌 아이의 입장에서 스트레스를 이해하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스트레스는 정말 만 병의 근원인 것 같다. 사람 수보다 양이나 소의 수가 많은 뉴질랜드에 살면서 좋은 점이라면 사람 스트레스가 적은 것이었다. 물론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여기도 다 사람 사는 곳이니까.. 어찌 보면 한국과는 다른 종류의 스트레스 속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사람 스트레스'의 종류가 다른 것이다. 그래도 한국에서 살면서 아침에 눈 떠 사람들 바글바글 거리는 지하철을 뚫고 출근을 해야 하는 스트레스에 비하면 이 곳은 정말 여유가 넘친다. 코로나 사태가 발병하고 다른 나라들에 비해 늦게 퍼지고 빨리 가라앉은 것도, 전 국민을 자가격리시키기 이전에 이미 Social Distance (사회적 거리)가 넓어서 일 지도 모르겠다.
다른 나라에 살면서 느낀 스트레스도 이리 다른데 아이들이 느끼는 스트레스는 어른과 또 얼마나 다를까. 유아기를 좀 벗어나 개구쟁이 유치원 생이 되고는 아빠에게 호되게 혼이 나는 경우가 있었다. 키가 큰 아빠가 엄하게 소리를 치니 무서웠는지 갑자기 쉬야가 마렵다고 했다. 처음에는 우연의 일치인가 했는데, 좀 무섭게 혼나는 날에는 어김없이 화장실에 급히 달려가는 아이의 모습을 계속 보게 되었다. 그 혼나는 상황이 가져다준 스트레스가 아이를 급히 화장실에 가서 쉬를 하게까지 만들 만큼 크다는 것이 느껴졌다. 꼭 이러한 물리적인 반응을 직접 보지 않더라도, 우리는 대게 사는 것 자체가 힘들다고 하지 않는가? 육아를 하며 들었 던 말 중에 아가들은 먹고, 자고, 싸는 것도 스트레스라는 말이 있었다. 그래서 아가들이 울 때마다 방치하지 말고 달래줘야 한다고..
소변이 마려운 증상뿐 아니라 하품을 하거나 졸릴 때도 있었는데 그것도 스트레스의 일부인 것 같았다. 특히 한국어와 영어를 둘다 구사해야 하는 상황에서 큰 아이가 홈 스쿨링을 한참 하고 나서 또는 집에서 함께 푸는 문제지를 실컷 하고 나서 늘 졸려워 했다. 둘째의 경우도, 아직은 한국말이 한참 익숙하여, 유치원에 가면 꼭 오후 1시경에는 아이를 데리고 가야 할 것 같다고 전화가 오곤 했다. 하품을 하고 졸려하는데 아무래도 영어를 쓰려다 보니 아이가 힘들어 하는 것 같다고.. 어른들도 타지생활이 익숙치 않은데 아이들이라고 오죽할까..
아이에게도 감정이라는 게 있어서, 혼나고 나면 얼마나 좌절했는지, 얼마나 속이 상했는지, 얼마나 실망했는지가 눈에 보이곤 한다. 동생과 싸우고도 7살 큰아이는 침대에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나오지 않으려고 한 적도 많았다. 그래서 무조건 나오라고 안 그러면 혼난다고 협박을 하기보다는 기다렸다가, 아이가 괜찮아질 때 즈음 같이 산책을 나가거나 식사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물어본다. 많이 속상했겠다며 공감도 해주고.. 그러면 아이는 조금씩 입을 연다. 아직은 표현이 서투르지만 그래도 슬펐다거나 화가 났다거나 하는 표현을 쓰면서 자기가 느낀 감정을 설명한다. 그렇게 설명하는 것만으로도 아이의 마음이 조금은 풀리는 듯했다.
이렇게 관찰한 지 몇 달 뒤, 나는 아무래도 아이가 '스트레스'라는 것이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배우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어른도 마찬가지 이겠지만,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될 때가 있다. 좀 더 크면 엄마에겐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도 잘 말을 안 하려 들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부터라도 조금씩 습관을 가지면 내가 아이에게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 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동생과 싸우거나, 아빠에게 혼이 났을 때 또는 나와 직접 트러블이 있을 때 나는 항상 아이와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이야기하는 습관을 들였다. 처음에는 서투르다가도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들을 한국말로도 영어로도 익히면서 서로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리고 그런 나쁜 감정들은 품지 말고 날려버려야 하니, 기분 좋아질 일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철없는 엄마가 BTS의 아미라.. 안 그래도 흥부자인 첫째 아이는 BTS노래에 맞추어 춤추는 걸 좋아한다. 엄마와 같이 신나게 흔들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또 아이와 싸우는 날에는 엄마가 화해의 선물로 아이가 좋아하는 디저트를 만들어 주기도 하고.. 이런 소통의 방법은 아이뿐 아니라 엄마인 나의 감정을 풀어나가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아이가 힐링이 되는 모습에서 나도 힐링이 되고, 둘이 같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았기에 서로 관계도 돈독해지니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내 학창 시절을 돌아보면, 그저 수능에 맞추어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압박을 받았을 뿐 "나가서 좀 놀다 와~"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없는 것 같다. 분명 스트레스를 잘 푸는 지혜는 공부를 더 잘하게 하고, 아이를 더 지혜롭게 만들 수 있을 텐데.. 뇌도 쉬어 주며 회복을 해야 다시 돌아가는데.. 아무래도 내가 어린 시절에는 그저 시간을 아껴 공부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 강했던 것 같다. 물론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고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그저 밥 먹고 공부했다고 하니.. 하지만 시험을 몇 달 아니 단 1년 남겨놓았다면 그럴 수 있어도, 아이가 앞으로 살아가는 인생은 장기전이다. 마라톤 보다도 더 장기전이기에 마치 단기 마라톤 경기가 수없이 있는 트렉이랄까 아이가 언제 쉬어야 하고 언제 다시 뛰어야 하는지를 배우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다. '스트레스'라는 나쁜 감정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내보내는 데에도 부모의 지도가 필요하다. 어려서부터 습관을 들이면 더 수월할 것이도 EQ발달에도 도움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Q에는 'Self-Awareness'라고 있는데 자기의 상태를 스스로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다. 내 감정이 어떠한지 나의 몸상태 또는 정신상태가 어떠한지 스스로 아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이런 연습을 엄마와 함께 할 수 있다면, 아이가 커서 신체건강뿐 아니라 정신건강도 스스로 지킬 줄 알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스트레스'의 기준은 절대 어른의 기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엄마가 생각했을 때 별거 아닌 일 같아도, 아이의 입장에서 함께 공감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동생과 싸웠을 때도 "그런 거 가지고 왜 그래~"보다는 작은 일이라도 공감해주며 같이 해결해 보는 것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