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상황을 이해하는 법

솔직하게 쉽게 가족의 상황을 아이에게 설명하기

by 영어는케이트쌤

뉴질랜드에 온 첫 해에 우리 집에 험한 일 있었더랬다.


여자 혼자서 아이를 키운 중국인 집주인이, 아들 내외가 직장에서 호주로 발령을 받아 옮겨가자 처음으로 세입자를 구했는데, 그것이 우리 가족이었다. 집은 꾀나 깨끗했다. 아무래도 주인의 가족이 살다가 처음으로 세입자를 맞이하는 것이라 여러모로 괜찮은 집이었다. 가끔 집의 이것저것 손볼 때가 있을 때면 굳이 안 와도 되는 집주인은 가까이에 산다며 친절히 와서 도와주었다. 보통은 부동산에서 나와 일을 처리함에도 불구하고, 그 정도의 관심과 배려면 정말 친절한 편이었다. 영국인인 옆집 할머니 할아버지도 너무나 친절하고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즐겁게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는데, 어느 날 차고에 있던 차 타이어에 전부 펑크가 나고.. 그다음 주에는 하얀색인 나의 차에 빨간 페인트 칠이 한쪽면을 꽉 채우고.. 그다음 주에는 죽은 새가 우편함에서 발견되는 등 엽기적인 일들이 발생했다.


경찰에 신고를 하고 해결방법을 찾았지만, 경찰은 별로 도움도 되지 않았다. 심지어 처음에는 그저 동네 아이들 장난이라고만 하고 그냥 넘어갔다. 우리에게 이런 일들이 벌어질 때 즈음, 집주인은 호주 시드니의 아들 내외네 가있었다. 며느리가 아이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도와주러 갔다고 했다. 우리에게 이런 일이 한 달 가까이 일어나자, 집주인은 별도의 Notice(집을 비우기 2주 전 나가겠다고 이야기하는 것)를 주지 않아도 좋으니 어서 안전한 곳으로 이사하라고 했다. 마침 우리 가족도 다른 집을 알아보고 있었지만, 집이 그렇게 빨리 찾아질 리 없었다. 게다가 회사에서 웰링턴으로 발령이 난 상황이어서, 두 달 뒤면 어차피 그 도시를 떠날 참이었다. 친절한 친구들의 도움으로 친구 중에 한 명 집에 잠시 들어가기로 했다. 마침 방 4개 중에 2개를 세를 주었었는데, 사람이 없다고 했다.


뉴질랜드 신문과 방송 기자들은 우리 가족을 돕겠다며 인터뷰한 내용 토시 하나를 안 빼고 전문을 내보내었다. 신문 한 면을 꽉 채운 덕에 커뮤니티의 여기저기에서 함께 도와주겠다고 나섰지만, 우리나라와 달리 CCTV가 거의 없는 터라 그 엽기 행각을 벌인 범인을 잡기도 힘들었다. 이사 준비를 하던 그 주에 협박편지가 왔다. 그 집에서 떠나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편지. 2주를 주겠다고 했지만, 우리가 이미 이삿짐을 싸고 있던 터라 편지가 도착하고 이틀 만에 집을 옮겼다. 이사를 하기 하루 전, 집주인이 호주에서 돌아와 우리를 방문했다. 아무래도 본인의 전남편 짓인 것 같다고..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었다고 했다. 화가 나면 이웃의 차를 부수고 집을 망가뜨리는 사람이라 일찌감치 이혼했지만 14년 동안 죽여버리겠다며 쫓아다녔다고 했다. 15년 전에 이혼을 하고도 자유롭지 못했던 집주인이 안타까웠다. 접근 금지 신청이 되어있지만, 늘 찾아다니기 때문에 이사도 많이 다녔다고 한다.


우리가 이사하고 2주 뒤.. 정말 협박편지에 쓰여 있었던 것처럼 일이 터졌다. 다행히 우리 가족은 떠났지만, 집주인이 오전 8시에 출근하려고 버스정류장에 서있다가 봉변을 당한 것이었다. 우리 집 근처에 살고 있었던 집주인은 범인에게 위치를 들켰는지.. 주변을 맴돌던 범인이 출근하던 집주인을 칼로 여러 번을 찔러 그 자리에서 즉사하게 했다. 마침 주변에 있던 이웃들이 차를 타고 도망치려던 범인을 이웃들의 차로 가로막아 잡고 경찰이 체포해 갔다. 하지만 정말 엽기적이고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일들을 일어나 면서 나 역시도 내 정신이 아니었다. 일을 나가 있으면 집에 있는 가족들에게 범인이 해를 입힐까 노심초사하면서 직장에 있으면서도 하루에 몇 번을 전화를 했는지.. 단독주택이라 보안도 잘 안 되는 데다, 어린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나 역시도 혼자 살아갈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혹시나 밤중에 쳐들어 오기라도 할까 싶어 잠을 자지 못했다. 늘 피곤하고 힘들어하던 나, 그리고 남편과의 대화를 어깨 너머로 들은 첫 아이는 조심스럽게 와서 늘 질문을 했다. 당시 다섯 살에서 여섯 살 넘어갈 즈음이 었는데, 그래도 의젓하게 엄마를 걱정해 주었고, 아이가 와서 물어볼 때에도 나는 최대한 쉽게 설명해 주려고 노력했다. 자꾸 도둑이 들어오려는 것 같아서 걱정되어 엄마가 잠이 안 온다고.. 아이는 도둑을 물리치겠다며 장난감 칼을 들고 와 아이답게 반응했지만, 엄마가 왜 걱정하고 왜 힘들어하는지 최소한 이해하려고 했다. 잠 못 자는 시간들이 길어지자 나 역시도 지치고 예민해지고.. 몸이 성치 않았다. 그래도 최소한 이런 상황들을 아이에게 설명하니 아침에 침대로 와 피곤한 나를 깨우기보다 일어나기를 기다려 주었다. 아빠한테도 가서 "엄마가 도둑 때문에 걱정을 많이 해서 피곤하데요.."라고 엄마의 상황을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 이야기했다.


뉴질랜드는 포장이사가 엄청 비싸서 (인건비를 시간당 그리고 사람 수대로 받는다. 이사비용 + 추가 인건비) 짐을 최대한 직접 싸고 업체를 불러 운반만 한다. 부부 둘이서 짐을 싸기 어려워 첫째 아이 친구 집에 보내야 했다. 둘째는 아직 너무 어려서 아무것도 모르고 울기도 했지만 첫째는 엄마가 이삿짐을 싸야 해서 친구네에 간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리고 동생이 울 때 달래주었다고도 했다. 그런 기특한 모습에 눈물도 나고, 마음은 찡했지만 웃으면서 폭풍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래야 다음에 또 그렇게 해 줄 테니...


아이에게 조금 더 소통의 폭을 넓힌 계기는 사실 처음에 뉴질랜드로 넘어와 낯선 유치원에 아이를 처음 보낼 때다. 첫 한 달은 매일 밤 침대에 오줌을 쌌다. 아무래도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힘들어서 스트레스를 받은 듯했다. 처음엔 기저귀를 뗀 지 오랜만에 실수했다고 생각을 해서 혼도 내고 다시는 그러지 않기로 약속을 받았지만, 며칠이 지나니 보통일이 아니라는 것이 느껴졌다. 첫째 아이는 한국에서 어린이집을 다닐 때에도 (남자라 그런지..) 어린이 집에서 있었던 일을 그다지 깊게 설명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상황을 설명하게 하기보다는 단편적으로 어떤 일에 있어서 무슨 느낌을 받았는지 물어본다. 좀 더 대화를 해보려 하자 아니나 다를까 유치원에서 어떤 친구 때문에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함께 유치원 선생님을 찾아야 고민을 털어놓고, 선생님이 도와줄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이야기도 하고.. 그렇게 하나씩 함께 해결해 나가면서 아이의 '지도 그리기'는 고쳐졌고, 유치원 친구들 사이에서도 제자리를 찾아갔다. 처음에는 가기 싫어할 때도 있었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유치원에 가겠다고 먼저 이야기를 할 만큼 상황이 호전되었다. 그때부터 늘 아이가 더 편안히 털어놓을 수 있도록 남편과 함께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아이가 털어놓을 수 있도록 하려면 부모부터 솔직해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친구네 들어가 사는 한 달도 쉬운 일 만은 아니었다. 친구네 부부가 일을 나가기 때문에 집에 있는 대부분의 시간은 우리 가족뿐이 었지만, 혹시나 집에 있는 가구들을 망가뜨릴까 노심초사했다. 다행히 친구 부부가 우리 아이들을 너무 예뻐해 줘서 수월한 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소파 위로 뛰어나니거나 할 때면 가슴이 철렁할 따름이었다. 못 뛰어다니도록 무섭게 화를 내야 할 때도 가끔 있었지만, 첫째 아이는 그래도 말을 잘 들어주었다. 삼촌과 이모가 우리에게 잠깐 방을 내어주어서 고마운데 삼촌과 이모의 물건이 망가지면 우리가 정말 미안할 거라는 이야기를 최대한 알기 쉽게.. 내게 정말 소중한 장난감이 망가지면 슬픈 거랑 같다고.. 그리고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에게 서로 잘해줘야 잘 지낼 수 있다고.. 이렇게 이야기를 해줘도 또 금세 까먹고 다시 소파 위에서 점프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엄마가 입이 아프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계속 시도를 해보는 것이다.

이렇게 설득하는 과정에서 느낀 점은 내 머릿속에서도 아이에게 쉽게 설명하는 방법을 찾느라 고민을 하고, 말을 쉽게 하는 방법을 터득하면 아이와의 소통의 문이 열리고.. 아이가 이해하기 시작하면 아이가 공감하는 능력이 생기고 단순히 지식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어찌 보면 사는 데 지혜를 배울 수 있게 되고 여러모로 선순환이 된다는 것이었다. 앞의 EQ부분에서 언급했듯이, '공감능력'이나 '사회성'은 EQ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지식적인 공부를 하면서 IQ를 발달시키듯 EQ도 연습이 필요하다. 그 연습을 일찍부터 할 수 있다면 아이의 미래는 더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라고 믿는다.


아이들을 재우기 전에 나는 꼭 동화 3편을 들려주고 그 이야기에서 나쁘다고 생각하는 캐릭터와 좋다고 생각하는 캐릭터에 대하여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혹시 내 현실에 그런 친구가 있는지도 물어본다. 가족의 상황뿐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다면 아이는 더욱 지혜롭고 똑똑해질 것이다. 책도 책이지만, 내가 가장 도움을 받은 건 엄마 아빠가 처한 상황을 솔직하고 쉽게 설명을 해 주면 아이가 이해를 하고.. 거기서 오는 소통의 힘이었던 것 같다. 우리가 어렸을 때, 우리 부모님 세대는 "아이들은 몰라도 돼."라는 이야기를 자주 했던 것 같다.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라는 아이들이란 말이 있듯이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아이들도 보는 눈이 있고 생각이 있는데.. 그 부분이 무시당한 처사가 바로 '애가 뭘 알겠어..'라는 생각이 아닐까 싶다. 아이들도 인격체라는 눈으로 바라보면 그저 나와 같은 한 사람인데 다만 말이 서투르고 나보다 인생 경험이 많이 없을 뿐이다. 그렇게 아이의 눈높이에서 존중해주려고 노력하면 분명 소통은 수월해질 것이다.


상황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힘.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존중받고 소통할 줄 알게 된다면 정말 좋은 일이다. 아이에게 또 필요한 하나의 조기교육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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