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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Tree Jan 15. 2020

  살다 보니 60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3절까지 들어준 미국 아이들

나는 대학입시를 치르지 않아도 된다는 친구들의 부러움을 받으며 1979년 한국을 떠났다.  그리고 채 일 년이 안 되는 치열한 준비기간을 무사히 넘기고 UCLA에 진학했다. 그 당시만 해도 한인 학생 중 '영어보다 한국말을 더 잘하는', '한국에서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학생이 많지 않았다. 이런 비슷한 형편에 한국 냄새가 폴폴 나지만 나름 스마트한 다섯 명이 뭉쳤다. 


우리 다섯 명은 저마다 전공이 달라서 그 넓은 캠퍼스 여기저기로 흩어져 강의를 들었지만 점심시간이면 어김없이 한 곳에 모여 우리말로 수다를 떨곤 했다. 그래도 힘든 공부, 서툰 영어, 먹고 싶은 한국 음식 그리고 왠지 모를 외로움으로 꽤나 지치는 날이 종종 있었다. 그런 날이면 우리는 기숙사 1층에 마련된 스터디 라운지라는 커다란 공부방 귀퉁이의 피아노방으로 달려가곤 했다. 그날도 초저녁 피아노방에 모인 우리는 언제나처럼 우리의 레퍼토리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눈이 큰 아이, 어디쯤 가고 있을까, 아침이슬, 마음 약해서....'를 있는 힘껏 불러대기 시작했다. 족히 한 시간 목청껏 부르고 벌건 얼굴로 피아노 방을 나오는데 '오 마이 갓'!  이미 스터디 라운지는 공부하는 아이들로 꽉 차 버렸고 모든 아이들이 동시에 우리를 쳐다봤다. 


우리는 마치 경찰에 붙잡힌 주부도박단처럼 얼굴을 가리고 후다닥 뛰어나왔다. 그런데 우리가 노래하는 동안 아무도 피아노 방 문을 두드리지 않았고 그들은 와일드 캣츠의 '마음 약해서'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3절까지 들어준 것이다. 지금도 그 스터디 라운지에서 공부하던 미국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우리를 위해 끝까지 참아준 것에 감사한다.  


내가 전공한 신문방송학과 Royce Hall 건물 


40년 전 기숙사 피아노 방에서 부르던 노래가 귓가를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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