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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Tree Jan 24. 2020

한복 입은 엄마도 그립다

구식 스타일의 늙은 엄마가 그립다

육 형제를 키우신 우리 엄마는 단정히 묶은 머리에 한복을 입고 고무신을 신고 자그마한 핸드백을 든 그런 모습이었다. 심지어는 뭔가 중요한 물건은 한복 속 바지 주머니에 넣고 옷 핀으로 단단히 고정시키시곤 했다.  우리 집 육 형제의 여섯 번째인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해서야 다른 모습의 엄마들을 보기 시작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내 눈에 보이는 친구들의 엄마는 꽤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화사한 원피스와 투피스를 입고 보글보글 파마 대신 뭔가 우아하게 보이는 볼륨 있는 머리 그리고 결정적으로 고무신 대신  예쁜 하이힐을 신은 그런 '젊은 엄마'였다.  비로도 원단의 한복을 입은 나의 '늙은 엄마'보다는 양장의 '젊은 엄마'들이 멋있어 보였다. 


그리고는 간단한 계산으로 육 형제의 막내인 나의 엄마와 둘 또는 세 형제의 첫째가 되는 내 친국의 엄마는 상당한 나이 차가 있고 살아온 세월도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젊은 엄마'가 있는 친구 집에 가면 집안 인테리어와 분위기도 다른 것 같았고 우리 또래를 더 이해해주신다는 것도 느꼈다. 그래서 나는 구식 스타일의 '늙은 엄마'에 짜증이 나곤 했다. 


나의 '늙은 엄마'는 관절염이라는 병으로 오랜 시간 거의 움직이지 못하고 집에만 계셨다. 지금이야 인공관절이라는 기술이 흔하지만 그 시절에는 별 뾰족한 수가 없었던 것 같다. 그런 엄마는 내가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목련꽃이 만발했던 어느 봄날에 돌아가셨다. 그리고 나는 결혼과 육아로 하루하루 바삐 살면서 엄마의 부재를 크게 느끼지 못했다. 

50이 가까워 오면서 나의 '늙은 엄마'생각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공부하고 결혼하고 큰 아들을 키우다 귀국하신 엄마의 말투와 행동에는 일본식 느낌이 있었고 특히 일본음식을 즐겨 드셨다. 내가 스스로 돈을 벌어 맛있는 일본 음식을 사드릴 수 있을 때 엄마는 이미 내 곁을 떠나신 후였다. 내가 한 번 근사하게 대접해드렸으면 좋았을 것을... 그리고 나이 먹어가면서 '살아가는 일'에 대해서 엄마와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이런 아쉬움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어느 날 마켓에 장을 보러 갔는데 야채를 고르면서 친정어머니로 보이는 분과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으며 서로 즐거워하는 모습이 가슴 저리게 부러웠다. 이즈음 해서는 엄마와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을 것 같은데 그런 엄마가 없다.   


한복 입은 나의 '늙은 엄마'도 몹시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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