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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urel Nov 22. 2023

우리 집 금쪽이

죽음을 기다리는 남자

“엄마다!!!!!”

     

주말이라 늦게 일어나 나오는 나를 보고 남편이 외친다.     


“내가 니 엄마냐..” 

    

예전엔 가끔 주말 아침에 김치볶음밥이나 오므라이스를 해주기도 했지만 부장님이 되고 나서부터는 그마저도 안 한다.     



그는 집밥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집밥만 먹는다. 

아침밥은 너무 이른 출근시간 때문에 안 먹고 가고 (회사에서 간단한 아침을 먹을 수 있지만 같이 나오는 계란이 싫다며 안 먹는다) 점심에 회사에서 주는 밥은 너무 짜서 먹을 수가 없단다. 그래서 하루에 한 끼 먹는 밥을 집에서 먹는 저녁으로 배를 채운다.     


결혼하고 한 달 뒤 큰아이를 임신하게 되었다. 워낙 연애기간이 길었고 어린 나이가 아니니 아이를 빨리 낳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결혼 전 건강검진에서 재검을 하게 된 남편이 신장 조직 검사를 하게 되었다. 입덧이 한창 심했던 임신 3개월 차에 검사를 위해 입원하게 된 남편은 2박 3일의 병간호를 굳이 나에게 맡겼다. 시어머님이 해주겠다고 하셨지만 그는 나를 선택했다. 밥냄새만 맡아도 헛구역질이 올라왔지만 검사 후 24시간 움직일 수 없고 누워만 있어야 하는 그의 대소변을 받아내야 했다. 게다가 집에서도 편하게 잠들기 어려운 임신 초기의 산모는 병원에 있는 보호자용 간이침대에서 이틀을 잘 수밖에 없었다.     


그 일을 시작으로 남편은 결혼 후 5년 동안 해마다 일주일 이상의 입원을 했다. 신장조직검사, 신장이식수술, 허리디스크 파열, 대상 포진 등등. 그가 그렇게 아픈 몸을 돌보는 동안 나는 아이를 키우고 집에서 부업을 하며 살아갔다. 물론 그는 신장이식수술 후 6개월 무급휴가를 제외한 시간에는 회사를 다녔고 돈을 벌어왔다. 그러나 그게 다였다. 그 시간 동안 아이를 키우고 집안일을 하는 결혼생활은 언제나 나 혼자였다. 그는 결혼 전과 마찬가지로 매주 일주일에 한 번 풍물패 동아리에 나갔고 동아리 사람들이 많이 사는 일산으로 이사도 갔다. 결혼 후 내내 항상 아픈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 건강이 나아진다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처음 하루 한 끼 식사를 하게 된 건 의사 선생님의 권유였다. 오래전 이식한 신장에 과체중은 무리가 갈 수 있으니 살을 빼라고 하셨다. 그때부터 그는 고기를 끊고 채식위주로 하루에 한 끼를 먹기 시작했다.     


전업주부인 아내의 입장에서 하루에 한 번만 먹는 밥을 집에서만 먹는 남편이 어떤 면에선 가엽기도 하고 한편으론 부담스럽다. 원래는 국도 안 좋아하던 사람이 부쩍 국이나 찌개를 찾고 고기는 안 먹겠다 하니 두부로 반찬을 하면 자기는 원래 두부를 안 좋아한다고 하고 (그러면 그동안 맨날 먹던 마파두부는 뭘로 만든 거니?) 

나물반찬은 손도 안 대면서 채식을 고집하면 도대체 어떤 반찬을 해야 할지 매일매일이 고난이다. 건강 생각한다면서 밥 먹고 나서 과자랑 사탕은 왜 그렇게 많이 먹는지.  내가 낳은 아들보다 더 말을 안 듣는다.


코로나 때문이었을까. 갑자기 몇 달 전부터 신장 관련 수치가 급격히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다시 이식을 생각해야 할 정도가 되어 버렸다. 게다가 신장 위쪽에 종양이 생겨서 다시 조직검사를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남편은 점점 자기가 곧 죽을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당연히 그 종양은 암덩어리이고.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보며 한숨을 쉬고 자기 없으면 어떻게 살라고 그러느냐고 했다. 그동안도 딱히..     


남편의 첫 이식은 감사하게도 시아버님이 도와주셨지만 이제는 나밖에 줄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하지만 늘 넉넉한(이제는 넘치는) 체중으로 살았던 사람이 갑자기 몇십 킬로를 빼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다. 한의원에서도 10개월은 해봐야 할 거 같다고 했다.     


살면서 여러 번, 불과 며칠 전에도 이기적인 그의 행태가 너무 꼴 보기가 싫어서 이제는 이혼을 하는 게 낫겠다 싶었는데 또 이렇게 아프다고 하니 하루라도 빨리 이식을 해줘야 해서 마음이 조급해진다. 신장이 나빠져서 그런지 빈혈수치도 높고 가끔 숨이 차다고 할 때면 나 때문에 건강이 나빠진 건 아닌데 (남편은 대학 때부터 엄청난 술꾼이었다. 아무도 그의 술 취한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나만 봤다) 처자식 먹여 살리느라 힘든 것 같아서 마음이 안 좋다.      


그래도 얼마 전에 만난 관상가 아저씨가 남편 수명이 길다고 하니 엄청 해맑게 좋아하던 남편이 2주 전부터 아침에 일어나서 따뜻한 물도 마시고 유튜브에 나오는 채소주스를 매일 먹어서 그런지 신장수치가 조금 좋아졌다. 기적이란 게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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